'유방암 파티'가 보여준 연예계의 '딴세상 감수성'

[이슈 인사이드 | 문화] 사지원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최근 열린 패션 매거진 W코리아의 ‘러브 유어 더블유(Love Your W) 2025’ 행사는 연예계의 ‘딴 세상 감수성’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겉으로는 유방암 인식 향상을 위한 캠페인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유명인들의 화려한 패션 이벤트에 가까웠다. BTS, 에스파, 아이브 등 K팝 스타를 비롯해 배우 변우석, 정해인 등 90여 명의 연예인이 참석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찬란한 조명 아래에서 정작 ‘공감’은 사라졌다.

패션 매거진 W코리아가 15일 유방암 인식 캠페인으로 진행한 ‘러브 유어 더블유(Love Your W)’ 행사에 대한 비판에 사과했다. 공식 인스타그램에서도 행사 사진이 모두 지워졌다.

유명 브랜드 협찬으로 노출이 많은 의상을 입은 스타들이 와인과 샴페인을 들고 잔을 부딪치는 장면은 자선 행사가 아닌 사교 파티로 보였다. 항암 치료로 인해 알코올을 마실 수 없고, 가슴 절제 수술 후 옷을 입는 데 어려움을 겪는 유방암 환자들의 현실을 보면 “이 파티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남는다. 유방암 인식 캠페인의 본질을 보여주는 메시지나 환우 인터뷰는 볼 수 없었고, 상징색인 핑크 리본을 착용하거나 드레스 코드를 맞춘 연예인도 극소수였다.


가수 박재범의 히트곡 ‘몸매’ 무대는 감수성 결여의 정점을 찍었다. 여성의 신체를 “니 가슴에 달려 있는 자매 쌍둥이 둥이”라 표현한 가사는 다른 무대에서는 단순히 19금 노래로 소비될 수 있다. 그러나 유방암 인식 캠페인 자리에서는 명백히 부적절했다.


논란이 확산하자 주최 측은 5일 만에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여론은 냉담했고, 일부 회계 내역의 불투명성도 지적됐다. W코리아는 이 행사를 통해 “20년간 총 11억원을 기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W코리아가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유방건강재단에 기부한 누적 금액은 3억1569만원에 불과했다. “캠페인에 참여한 기업이 재단에 직접 전달한 금액까지 합산했다”는 변명 역시 다소 궁색해 보인다.


대중과의 연결이 생명인 연예계에서 무심한 행보는 단순한 실수 이상의 파급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번 행사가 성사되기까지 매거진과 소속사 관계자를 비롯해 수많은 전문가가 관여했을 것이다. 누구 하나 리스크를 감지하거나 제동을 걸지 못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번 일을 해외 사례와 비교해 보면 더욱 아쉬움이 느껴진다. 속옷 브랜드 스킴스(SKIMS)의 모델로 발탁된 할리우드 배우 올리비아 문(Olivia Munn)이 유방암 수술 흉터를 드러낸 화보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끌어냈다. 지난해 4월 유방암 진단을 받고 양쪽 유방을 절제한 그는 팟캐스트에서 “이 화보를 본 여성들이 ‘나도 괜찮다, 나도 아름답다’고 느끼길 바랐다”고 말했다.


문은 촬영 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흉터를 가리려 하자 “이건 내가 싸워서 얻은 흔적인데, 왜 숨겨야 할까?”라며 오히려 공개를 제안했다고 한다. 이런 일화는 같은 상업 캠페인이라도 조금의 세심함과 진정성이 곁들여졌을 때 대중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지원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연예계의 감수성이 대중과 동떨어져 있음이 드러나 비난을 받은 사례는 이번 일에 그치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의 균형감과 상식을 요구하는 대중의 기준은 더욱 예리해지고 있다. K-콘텐츠의 영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지금 화려한 이미지 연출 이상으로 세심한 위험 관리가 필요한 이유다. ‘딴 세상 감수성’을 벗어나려면, 세련된 연출이 아닌 진심 어린 시선과 배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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