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학습데이터, 즉 저작권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생성형 AI기업과 언론사 간 분쟁 양상이 올해 급격히 부상한 AI 검색 등과 맞물려 변모하고 있다. 특히 이 같은 갈등이 본격화한 해외에서 반독점, 상표권, 크롤링 통제 등 다층적 법적 전략이 적극 구사되며 국내 언론에서도 보다 적극적인 대응 전략을 모색해야 할 때란 제언이 나온다.
10월31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간한 미디어이슈 리포트 제5호 <생성형 AI 관련 해외의 저작권 분쟁 사례와 과제>(이현우 언론재단 선임연구위원, 김선호 언론재단 미디어연구센터장)에 따르면 올 들어 미국 법원은 AI 학습데이터 관련 3건의 주요 판결에서 2건에 대해 AI 기업에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 2025년 6월, 캘리포니아 북부법원은 바츠(Bartz)와 앤트로픽(Anthropic PBC), 캐드리(Kadrey)와 메타(Meta)의 소송에서 대규모 언어모델의 산출물이 원저작물과 유사성이 없어 ‘변형적 이용’에 해당한다며 공정이용을 인정했다.
반면 델라웨어 법원은 톰슨 로이터(Thomson Reuter)와 로스 인텔리전스(Ross Intelligence)에 대한 판결에서 법률 정보 요약문을 검색형 AI 개발에 이용한 것은 원저작물의 시장 가치에 부정적 역할을 미친다며 저작권 침해를 인정했다.
이 과정에서 유의미한 지점은 AI 검색엔진의 부상에서 비롯된다. ‘제로 클릭’이 본격화되며 뉴스 소비 형태 뿐 아니라 언론 비즈니스 모델 전반이 위협을 받고 있는 반면, 검색 플랫폼은 사용자 체류시간 증가로 광고수익을 더 얻으며 플랫폼이 언론사 콘텐츠로 직접 수익화를 시도한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이에 언론사 소송 양상도 다양해지고 있어서다.
‘롤링스톤’과 ‘버라이어티’ 등을 보유한 미국 펜스케 미디어(Penske Media)는 구글 ‘AI 오버뷰’가 자사 기사를 무단 이용해 트래픽과 수익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소송(2025년 9월)을 제기했다. 구글이 검색 시장 90%에 달하는 지배력을 기반으로 언론사 콘텐츠를 대가 없이 활용하고 있고 이에 따라 제휴 수익이 3분의 1로 줄었다며 펜스케 미디어는 구글의 검색시장 지배력 남용에 관한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다. 유럽에서도 독립 퍼블리셔 연합(IPA)이 구글의 AI 요약이 언론사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준다며 EU집행위원회에 반독점 조치를 촉구하는 제소를 했다.
백과사전과 사전을 발행하는 브리태니커와 메리엄-웹스터는 퍼플렉시티를 상대로 상표권 침해 소송에 나섰다. AI 답변이 자사 콘텐츠를 허가 없이 복제하여 제공함으로써 자사의 웹사이트로 유입될 트래픽을 가져가고 있고, 특히 AI의 환각 현상으로 잘못 생성된 내용을 마치 자신들이 제공한 것처럼 오인시켜 상표권과 브랜드 차기를 훼손한다는 취지다.
일본 언론사들에선 기사 무단 크롤링 등을 근거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례가 나왔다. 요미우리, 아사히, 니케이 신문사는 퍼플렉시티가 자사 온라인 기사를 무단으로 크롤링했고 일본 저작권법상 복제권·전송권을 침해, 또는 크롤링 거부를 표시한 웹사이트의 코드를 무시하고 콘텐츠를 수집했고 잘못된 정보를 자사 기사 출처인 것처럼 제공해 평판 피해까지 발생시켰다고 주장하며 지난 8월 약 22억엔(한화 약 204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생성형 AI 등장 초기 언론사와 AI 기업간 법적 분쟁이 주로 저작권 침해에 집중한, 즉 AI 모델 학습을 위한 무단 데이터 수집이나 콘텐츠 복제를 중심으로 한 전통적 저작권 법리를 중심으로 전개됐다면 2025년 들어 다른 양상이 나타나는 모양새다. 저작권 침해란 단일 법리를 넘어 반독점, 상표권, 크롤링 통제 등 다층적 법적 전략을 구사하며 AI 플랫폼 기업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는 양상이 대표적이다.
보고서는 ‘언론사 연대를 통한 공동 전선 구축: 소송 전략 다각화’를 언론 대응 전략으로 제언했다. 언론재단은 “유럽에선 독립 퍼블리셔 연합이 EU 제소를 주도했고, 영국의 폭스글러브 같은 시민단체와 연계해 규제당국 압박을 전개하고 있다”며 “이런 연대 전략을 통해 비슷한 피해를 입은 언론사들이 힘을 합쳐 공동 소송을 내거나, 여러 관할에 동시다발적으로 다른 청구 취지를 제기함으로써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예를 들어 펜스케 미디어는 반독점을 위주로 소송을 냈고, 다우존스는 저작권으로, 브리태니커는 상표 이슈까지 망라하여 각기 다른 법리로 공격하고 있다. 이를 통해 어느 한 쪽이라도 법적 승인을 받으면 플랫폼에 제약을 가하는 전략적 이점을 확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규제 당국 활용’도 제시됐다. 법원 소송과 병행해 방송통신 규제당국에 호소하는 이중 전략도 전개되며 행정부 차원의 신속한 개입을 이끌어내려는 시도를 참고할만하단 것이다. 언론재단은 “미국 일부 주에서는 AI 콘텐츠 표시 의무나 저작권 규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언론사들은 정책 포럼, 공청회 등에 적극 참여해 여론 환기와 입법 압박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EU에서는 독립 퍼블리셔 연합이 저널리즘을 보호하기 위해 AI 요약 옵트아웃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AI 기업과 콘텐츠 라이선싱 계약’, ‘플랫폼과 수익 공유 모델 개발’ 같은 분쟁이 아닌 협업에 기반한 방안과 더불어 언론사 내재적으로 준비해야 할 지점에 대해서도 제안이 담겼다. 언론사들이 robots.txt 규칙을 세분화해 AI 크롤러별 대응 방침을 수립하고, 사이트 이용약관에 조항을 추가하는 등 ‘크롤링 통제 정책 강화’, 분쟁과 별도로 웹사이트 차원에서 AI 시대에 대응해 콘텐츠 표준화 및 최적화를 실행하는 ‘메타 데이터 전략 등이 적시됐다.
언론재단은 “기사 페이지에 구조화된 데이터를 꼼꼼히 넣어두면 검색엔진이 해당 콘텐츠의 제목, 저자, 출판사 정보를 명확히 인지하여 AI 요약에 출처를 보다 정확하게 표기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원문 요약본 제공이나 Q&A 리스트를 기사와 함께 제공해 AI가 가져가야 할 핵심 내용을 언론사가 주도적으로 제시하는 실험도 수행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AI가 임의로 기사를 요약하며 발생하는 오류를 줄이고 동시에 요약결과에 언론사 브랜드와 맥락이 남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언론재단은 “이런 노력들은 거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우리가 허용한 형태로만 콘텐츠를 쓰라는 메시지를 주는 한편, 최악의 경우 AI가 틀리게 요약해서 브랜드 이미지가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자구책이기도 하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