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기자 대상 교육에서 질문을 하나 받았다. 취재 요청을 할 때는 불응하거나 회피하다가 나중에 가서야 소송이나 조정으로 반론보도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악의적인 경우에도 반론보도를 해야 하냐는 것이다. 기자의 문제의식에 공감했고, 그 난감함 역시 충분히 이해됐다. 그렇다고 해서 반론권 행사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는 없는 일이어서 ‘권리남용의 법리’에 대한 설명으로 답변을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 후 우연히 취재 요청에 불응하거나 회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요지는 이렇다. 취재 요청을 해오는 기자에게 말을 해도 그 말이 왜곡 없이, 자신의 취지대로 보도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언급도 있었다. 기사 마감 1~2시간 전에 취재 요청 메일을 보내왔는데 이런 것도 과연 취재로 볼 수 있는지, 내 의견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그저 요식행위에 불과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취재원들의 반론을 듣기 전까지 나는 질문한 기자의 말에 설득되었고 취재 요청에 불응하거나 회피하는 사람들을 비겁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반론을 듣고 보니 문제가 조금 다르게 보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내가 본 것은 일종의 회피 현상으로, 나는 이것을 ‘취재 회피’라 명명하고 싶다.
취재 회피의 원인은 다양할 텐데, 문제는 기자와 취재원 양측 모두 상대방에게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기자는 취재원의 악의를 원인으로 꼽았고, 취재원은 기자의 진정성 없는 취재 태도와 그것이 초래한 불신에서 원인을 찾았다. 문제 해결을 위한 접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일단 언론의 입장 내지 태도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먼저, 취재 회피라는 현상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 취재 요청을 하면 취재원이 마땅히 취재에 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기자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취재에 응할 의무를 부여할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취재에 응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어디까지나 전략적인 선택 사항에 불과하다. 취재에 응하는 것이 자신에게 득이 된다 생각되면 응하는 것이고 아니면 회피할 수 있다. 취재 요청에 응하면 운이 좋았다 여겨야 한다. 취재에 응하지 않는다고 해서 취재원을 비난한다면 오만한 자세다. 필요에 따라 체포·구속과 같은 강제수사로 전환할 수 있는 수사기관의 출석 요구에 대해서조차 사정이 있으면 불응할 수 있고, 진술을 거부할 수도 있다. 하물며, 기자의 취재 요청에 불응한 당사자를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
취재 회피로 아쉬운 사람은 취재원이 아니라 기자 자신이다. 흔히 반론권 행사 내지 반론 게재를 보도가 이루어진 후 당사자 피해 구제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사후적 조치 정도로 여긴다. 그러나 반론, 즉 사건 당사자의 말을 듣고 입장을 확인하는 일은 취재 과정에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과정이다. 취재(取材)가 무엇인가? 문자적으로는 재료 혹은 글감을 수집하는 일이겠으나 기자에게 있어 취재의 본질은 사실을 확인하고 검증함으로 진실을 추구하는 데에 있다. 그러니 사건 당사자의 입장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은 취재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뜻이다. 기사의 완결성을 위해서라도 사건 당사자에 대한 취재는 생략하거나 보도 이후로 미뤄서는 안 된다. 이는 마치 유죄를 입증할 만한 다른 증거가 아무리 차고 넘쳐도 당사자, 즉 피의자 조사 없이 수사를 마무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취재 회피 현상 앞에서 기자들은 다시금 신뢰의 가치를 생각해야 한다. 2024년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디지털뉴스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언론의 신뢰도는 31%로 조사 대상국 중 비교적 낮은 편에 속한다. 일부 언론학자들은 뉴스 회피를 지나 뉴스 소멸을 걱정한다. 뉴스 소멸이라니 과도한 우려라고 생각하지만, 언론에 대한 신뢰가 하락하고 있다는 것은 비교적 명백해 보인다. 취재 회피 역시 뉴스 회피와 큰 틀에서 같은 흐름은 아닐까 싶다.
하여, 다음 기자 강의에서 같은 질문을 받게 된다면, 그때는 이렇게 되물어야겠다. “기자님은 정말, 그 사람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나요?”라고 말이다. 취재를 회피한 취재원은 말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침묵으로써 더 중요한 메시지를 언론에 던진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