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경영 위기 극복을 목표로 구성한 미래성장위원회가 인력 감축안을 협의 없이 추진해 구성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송신소 송출센터 통합, 지역총국 인공지능(AI) 아나운서 도입, 성우 인력 감축 등 부작용이 우려되는 정책을 졸속 추진해 방송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KBS 내부에선 “단기적인 성과 도출에만 몰두한 정책”이란 비판이 이어졌다.
◇인원 감축 추진, ‘법적 절차 무시’ 지적
KBS 미래성장위원회는 2월21일 사장 직속 기구로 출범해 경영 위기 극복을 목표로 긴축안을 마련했다. 해당 긴축안은 수익 다변화 등 수입혁신방안과 함께 인건비 절감 등 대책을 담은 비용혁신방안으로 구성됐다. 이러한 내용이 담긴 미래성장위 추진 실적은 10월29일 KBS 이사회에 보고됐다.
문제는 긴축안에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로자참여법)’에 따라 노사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 포함돼 있음에도 노사 간 대화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측은 “사측이 1분기 노사협의회에서 미래성장위 구성 및 운영 경과를 보고했을 때 해당 사항이 협의 안건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지적했고 사측도 동의했다”며 “이후 2분기 노사협의회에서 미래성장위 진행 과정을 물었을 때 ‘진행된 게 없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그래서 논의가 흐지부지된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사회 보고 안건으로 갑작스럽게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사측이 “유관부서와 수차례 논의했다”는 주장을 이어가자 KBS본부는 “그렇다면 어떤 회의에서, 누가 참석했고, 어떤 의견이 반영되었는지 즉시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비용 절감에 ‘방송 안정성 훼손’ 우려
KBS 내부에서는 미래성장위가 마련한 비용절감안이 근시안적 수준에 머무른 데다, 방송의 안정성을 해친다는 비판도 나온다.
미래성장위는 본사 내 통합송출센터를 마련해 남산, 소래, 화성 등으로 나뉘어 있는 수도권 송신소 송출센터를 통합하기로 했다. 송신소를 관할하는 관제와 시설정비 업무 중 관제 업무를 원격으로 전환하면 연간 약 8억4500만원을 절감할 수 있다는 취지다. 교대근무 인력은 28명에서 16명으로 줄어든다. KBS측은 “24시간 경비 인력이 상주해 재난에 대한 초동 대응이 가능하다”며 “무인화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정훈 언론노조 KBS본부 조직국장은 “‘초동 대응’은 단순 신고나 물리적 진압이 아닌, 송신기 절체·전원 복구 등 고도의 기술 조작을 수반하는 것”이라며 “교대 인력은 본사 근무로 전환되고 경비 인력은 전문 교육이나 권한을 부여받지 않아 야간과 휴일에는 실질적으로 재난에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진다”고 반박했다.
제작비 감축을 위해 지역(총)국 주말 라디오뉴스에 AI 앵커를 도입하겠다는 계획 역시 성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AI 앵커는 지역민방에서 지난해부터 도입을 시작했지만, 속보 전달과 방송 실수 대응이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JIBS 등 앞서 AI 앵커를 도입했던 지역민방에서 이를 폐지한 사례도 있다.
전속 성우 선발 인원을 8명에서 4명으로 감축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반발이 나왔다. KBS본부 소속 KBS 전속성우들은 10월29일 성명을 내고 “장기적으로는 외부 프리랜서 성우 섭외가 불가피해져 회당 출연료 상승으로 이어지게 된다”며 “당장 눈에 보이는 예산 절감 효과를 위해 장기적인 비용 증대와 콘텐츠 품질 저하를 감수하라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내부 반발에도 불구하고, KBS는 이사회가 비공개로 진행 중이던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KBS가 3년만에 처음으로 내년에 균형 수지 예산을 편성하기로 했다”며 “내년 예산편성계획에 따라 KBS는 5년 만에 흑자전환에 나서게 된다”고 밝혔다.
공웅조 KBS본부 지역부본부장은 “직원들과 소통하며 장기간 토론을 거쳐서 문제점을 보완할 대책을 찾아야 했다”면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만들겠다는 욕심에 감축안을 밀실 추진한 것”이라 비판했다.
KBS같이노동조합 역시 같은 날 성명을 내고 “경영은 숫자로만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며 “사측은 이 사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인력 철수 후 발생 가능한 시나리오와 대응책에 대해서 직원들과 충분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