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이해, 정보… 자살예방보도 위한 세 가지 열쇠

한국기자협회·생명존중희망재단 '2025 사건기자 세미나'

‘죽고 싶은 사람이 정말 많은 나라’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자살에 대해 “사회적 재난”이라며 범부처 대책을 주문할 정도로 한국의 자살 문제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유튜브, X(옛 트위터) 등 SNS로 퍼져나가는 자살유발정보, 조회수만이 목적인 자극적인 유명인 자살 게시물은 이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다. 어느 한 가지 원인으로 규정할 수 없는 한국의 자살 문제를 정말 해결할 수 있겠냐는 회의감마저 나오는 수준이다. 기자들로선 좋은 ‘자살 예방’ 보도는 무엇인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취재를 해나가야 할지 고민이 어느 때보다 깊어졌다.

'2025 사건기자 세미나'가 5일 제주 오션스위츠 제주호텔에서 열렸다. 사진은 두 번째 발제 후 토론 중인 참석자들. (왼쪽부터) 황성규 인천경기기자협회 회장, 김동욱 한국일보 기자, 권영철 오픈미디어정책연구소 고문, 이상미 EBS 기자, 황태연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이사장. /한국기자협회

한국기자협회 주최로 5일 제주 오션스위츠 제주호텔에서 열린 ‘2025 사건기자 세미나’에선 “자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난제라고만 보지 말자”며 자살 예방 보도에 힘써온 기자들의 경험담이 공유됐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과 함께한 이번 세미나엔 전국의 언론사 사건팀 기자 등 70여명이 참여해 자살 예방을 위한 취재·보도 노하우를 전하고, 자살보도 방식에 대한 고민, 현장의 딜레마를 공유했다.

이날 발제를 맡은 김소영 동아일보 기자는 수년간 현장에서 틈틈이 고민하고 취재한 결과, 좋은 자살 예방 보도 조건이 ‘희망’ ‘이해’ ‘정보’ 세 가지라는 나름의 답을 찾았다고 했다. 사회 곳곳 자살 예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웃의 이야기, 자살 고위험군은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정보도 함께 담은 <죽고 싶은 당신에게> 인터뷰 시리즈 보도로 2023년 3분기 생명존중 우수보도상을 수상한 김 기자는 이외에도 정책 기사 등 다수의 관련 기획을 보도했다.

김 기자는 자신이 제시한 키워드 중 ‘희망’에 대해 “자살 고위험군도 잘 살아가고 있다는 사연을 기사로 적극적으로 소개를 하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자살 고위험군이 일상을 잘 살아가고 있다는 내러티브가 담긴 보도가 실질적으로 해당 보도를 본 사람들의 자살 생각을 유효하게 감소시킨다는 내용의 해외 연구를 접했기 때문이다. 또 우울증, 불안장애,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질환 등에 대한 낙인, 편견으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자살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데, ‘이해’ 키워드가 담긴 기사를 통해 이런 것들이 질병이고 치료가 가능한 영역이라는 점을 반복해서 알려주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했다.

무엇보다 자살 위기 상황에 처한 사람들, 또 이들을 지켜보는 가족, 지인들을 위한 ‘정보’ 키워드 기사를 통해 김 기자는 독자들의 자살 예방 정보에 대한 니즈가 굉장히 높다는 점을 체감했다. 김 기자는 “호주에 사는 독자분이 ‘한국에 있는 가족이 위기 상황에 처한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검색을 하다 제 기사를 찾게 됐다’며 급하게 연락이 온 적 있어 해당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을 연결해드리기도 했다”며 “생각보다 사람들이 위기 상황에서 어디로 전화를 해야 되는지, 돈이 없는데 어딜 가면 무료로 상담을 받을 수 있는지 모른다는 걸 취재를 하며 많이 느꼈다. 실질적인 정보를 주는 보도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관련 기사를 쓸 때 세 가지 키워드 중에 최소한 하나라도 포함을 시키려 의식적으로 노력을 했다. 기자들 각자가 생각하는 좋은 자살 예방 보도의 기준, 조건을 정해보고, 그에 맞는 포맷의 보도를 시리즈로 해보는 것도 기자 개인에게 굉장히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영 동아일보 기자가 5일 '사건기자세미나'에서 '자살 예방을 위한 보도' 발표를 하고 있다. /한국기자협회

자살 유가족 등 자살 예방 보도를 할 때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당부도 전했다. 김 기자는 “보통 기사를 쓰기 전 취재원에게 미리 공유해 주지 않는 게 큰 원칙이긴 하지만 이런 기사는 유족께 항상 미리 보내고 혹시라도 마음에 걸리거나 시간이 지나 후회가 될 것 같은 내용이 있다면 가감 없이 말해달라고 한다”며 “이분들의 마음을 보호하려고 하는 나름의 절차를 꼭 거친다는 점도 공유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기자는 “취재를 해보니 인상적인 건 많은 전문가들이 우리나라 자살 예방 정책은 이미 완성도가 높다고 한 것인데, 문제는 실제 현장에서 매끄럽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라며“각 지역마다 자살예방센터,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있는데 현장 대응의 최전선에 계신 분들이시니 애로사항이나 고충을 들으면 정부가 마련한 정책을 실제로 현장에서 작동할 때 생기는 문제들을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보도준칙 지키면서 보도효과도 높이려 고민

기자협회와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자살 사건은 가급적 보도하지 않는다”를 첫 번째 원칙으로 한 ‘자살예방 보도준칙 4.0’를 발표한 바 있다. 발표 이후 이어진 토론에선 보도준칙을 최대한 지키면서도 기사를 효과적으로 전해야 하는 기자들의 고민, 자살 사건을 보도하는 현장 기자들의 딜레마도 공유됐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의 <자녀 살해 후 자살: 비극을 기록하다> 기획에 참여했던 김동욱 기자는 자살이 포함된 제목, 사례를 전달하는 내용 묘사 등으로 인해 기사가 나갈 때까지 조마조마한 마음이 컸다고 했다. 이번 보도 과정에서 한국일보 기자들은 전문가들의 자문을 거치면서 지면 아래마다 ‘이 기사는 범죄 수법의 묘사를 최소화한 대신 사건에 연루된 이들의 심리와 회복 과정에 초점을 뒀다’는 기사 가이드를 넣기도 했다.

김동욱 기자는 “우리가 쓰려는 내용 대부분이 어떻게 보면 보도 준칙에 정면으로 어긋났다고 볼 수 있다. 제일 어려웠던 건 사례를 전달하는 방식이었는데, 부모가 어떻게 그 지점까지 몰렸는지 드러내야 구조적 원인을 볼 수 있다고 봤다”며 “‘자살 보도는 가급적 하지 말라’는 취지는 공감되지만 구조적 원인의 보도를 회피하게 되는 순간도 찾아올 수 있다. 과거 좋은 선례의 기사 소개, 설명도 같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5일 제주 오션스위츠 제주호텔에서 열린 '2025 사건기자 세미나'에 참여한 기자들이 단체촬영에 임한 모습. /한국기자협회

토론에선 현장 기자들의 ‘보도 가치가 있는 사망자 신원 공개’, ‘기자들을 대상으로 쓴 유서 공개’ 문제 등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고민도 나왔다. 자살예방 보도준칙 4.0 제정에 참여했던 유현재 서강대 교수는 “이번 보도준칙 자체는 이건 되고, 이건 안 돼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기자들이 자살 예방을 위한 주체와 같은 편이 되게 하는 원리이고 이제는 질적 판단의 영역이라는 생각”이라고 전제하며 “기자들이 보도를 하며 고민해 주신 것만으로도 굉장히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보도준칙을 마련할 때 회의장에선 ‘남은 분들에 대한 예의’, ‘남겨진 사람은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며 유서 공개 관련해 “유가족이 키를 쥐고 있다고 생각한다. 유가족 보호가 가장 첫 번째라는 우선순위를 가지고 취재를 해나가는 게 맞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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