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물살.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제공하는 뉴스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빅카인즈를 활용해 ‘행정통합’을 키워드로 뉴스 검색 연관어 분석을 한 결과를 보면, 광주전남, 대구경북, 대전충남, 주민투표, 여론조사 같은 키워드 사이에 어색한 단어가 발견된다. ‘매우 심한 물살’이라는 의미이지만, ‘타다’라는 동사를 만나면 ‘일이나 논의 따위가 빠르게 진행되다’는 의미의 관용구가 된다. 주로, ‘행정통합이 급물살을 탔다’는 식으로 사용된다.
1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설치를 위한 특별법’이 ‘급물살’을 타고 국회를 통과했다. 바야흐로 지방 주도 성장의 단초가 될 통합특별시 탄생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통합시장을 선출한 후 순차적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다. 그런데 이렇듯 중차대한 일이 ‘급물살을 타고’ 이뤄지는 게 맞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아가 이렇게 탄생할 통합특별시가 ‘지방 주도 성장’을 가능하게 할지 의문을 품는 사람도 거의 없다.
무슨 말인가? 행정통합이 지금처럼 뜨거운 감자가 된 배경에는 ‘국가 주도’가 있다는 말이다. 배경을 보자. 앞서 언급한 빅카인즈 분석은 지방 주도 성장을 내건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6월4일부터 올 3월7일까지 분석한 결과다. 이를 6월4일부터 12월4일까지(전기)와 12월5일부터 3월7일까지(후기)로 나눠서 다시 분석하면 흥미로운 결과가 확인된다.
12월5일 충남타운홀미팅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대전·충남 통합 논의가 일고 있고 법안도 발의된 것으로 아는데, 바람직하다고 본다”며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에 힘을 실었다. 지지부진하던 행정통합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급반전됐다. 대전충남 지역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이 행정통합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거다. 실제로 기간을 나눠 연관어 분석을 해보면, 전기엔 없던 급물살 키워드가 후기부터 등장한다.
대통령의 언급 전까지만 해도 지지부진하던 행정통합 추진이 대통령의 언급으로 정부·여당의 태도에 변화를 주고, 급기야는 1월16일 20조원 재정 지원을 포함한 인센티브 발표까지 이르며 정점을 친다. 대전충남과 전남광주의 통합 추진이 급물살을 타도 남의 집에 난 불 같은 태도를 보이던 대구경북이 부랴부랴 행정통합 열차에 올라탄 것도 이때다.
이 정도면, 국가 주도로 지방 주도 성장이 추진되고 있다고 말해도 틀렸다고 하긴 어려울 거 같다. 대통령 관심이나 정부 인센티브 지원이 잘못됐다는 걸 말하려는 건 아니다. 지방 주도 성장을 기조로 내건 대통령이 그 핵심 정책이랄 수 있는 행정통합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고, 정부 차원에서 이를 돕기 위한 인센티브도 줄 수 있다.
문제는 타이밍이고, 방법이다.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방법으로 정부가 개입하면 ‘지방 주도’를 추동하는 마중물이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정부만 남고 지방은 사라진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전남광주통합특별법 제정 후의 과제를 짚는 보고서를 통해 “직접적인 이해관계자인 지역 주민과 기초자치단체와의 상향적인 의사결정이 아닌 국가와 광역자치단체 주도의 하향적인 방식으로 추진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평했다. 정부의 개입으로 행정통합 자체가 하향식으로, ‘국가 주도’로 추진됐다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재명 정부 출범 전부터 간헐적으로 진행되던 행정통합은 지역 내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데 실패하면서 지지부진하게 진행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정책이 작은 지역의 소멸을 더 가속화할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를 설득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과정은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이때 함께 설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지, 어느 날 갑자기 20조원이라는 ‘급물살’을 터뜨리는 것은 아니었다. 매서운 물살은 지역 속 지역의 우려를 휩쓸어 묵살케 했고, 20조원이라는 상금을 향한 오징어게임으로 정책을 변질시켰다.
물론 아직 결론이 난 건 아니다. 행정통합이 진정한 지방 주도 성장이 되기 위해선 중앙 정부가 돈보다 아까워하는 권한의 이양이 제대로 선행되어야 한다. 통합특별시 아래에 기존 시·군과 자치구를 그대로 유지하는 구조를 택하면서 생긴 기관별 기능과 권한의 불균형을 해소해야 하고, 지속가능한 재원 마련 방안을 모색해야 하며, 막강한 권한을 휘두를 특별시장에 대한 충분한 견제 장치도 보완해야 한다. 지금이 진짜 지방 주도 성장의 모멘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