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생존을 위한 한국 언론의 연대는 불가능한가

[언론 다시보기] 이현우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

최근 영국에서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BBC, 파이낸셜 타임스, 가디언, 데일리 텔레그래프, 스카이 뉴스가 ‘SPUR(언론사 사용 권리 기준, Standards for Publisher Usage Rights)’라는 공동 연합을 결성한 것이다. 평소라면 한 테이블에 앉기 어려운 조합이다. 가디언과 텔레그래프는 정치적으로 정반대 스펙트럼에 위치한 경쟁 매체다. 보도 방향도, 독자층도, 지향하는 가치도 다르다. 그럼에도 이들이 손을 잡은 이유는 단순하다. 인공지능(AI) 기업들이 자사의 콘텐츠를 무단으로 학습하고 요약·대체하는 상황에서, 개별 언론사로서는 도저히 맞설 수 없다는 냉정한 현실 인식이 이념의 차이를 넘어선 것이다.

SPUR는 전 세계 언론사 리더들이 연대해 독창적인 저널리즘 보호를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BBC 홈페이지

컬럼비아 저널리즘 리뷰(CJR)의 에밀리 벨은 이 연합의 의미가 단순한 뉴스 저작권 수익 문제를 넘어선다고 주장한다. 그는 SPUR가 책임 있는 AI 사용을 위한 가이드라인 수립, 라이선스 계약의 갈등 감소, 그리고 언론이 AI 산업과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되찾으면서도 흐름에 뒤처지지 않겠다는 복합적인 목표를 품고 있다고 분석한다. 나아가 그는 저널리즘이 “다원성과 독립성에 본질적으로 반하는 구조로부터 스스로의 독립성을 정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언론의 AI 대응은 기술 종속 극복과 독립성 확보의 문제이지, 단순한 수익 협상 테이블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SPUR는 이미 영국을 넘어 전 세계 언론사를 회원으로 영입해 글로벌 연합으로 발전시키겠다는 목표를 공식화하고 있다. 하나의 국가 단위 연대가 국제적 표준 설정 운동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언론의 현실은 어떤가. 한국 언론은 이미 오래전부터 네이버·카카오라는 거대 플랫폼에 트래픽과 수익 구조를 깊이 의존해 왔다. 포털이 사실상 편집 권력을 행사하는 구조 속에서 개별 언론사의 브랜드는 약화됐고, 뉴스는 균질화됐으며, 독자와 언론사 사이의 직접적인 관계는 점점 희미해졌다. 여기에 생성형 AI 기반의 요약 서비스까지 가세했다. 네이버의 AI 브리핑 기능은 기사 원문을 읽지 않아도 핵심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고 내세운다. 독자 입장에서는 편리함이지만, 언론사 입장에서는 클릭을 잃는 것이다. 취재와 보도에 들어간 비용은 고스란히 언론사가 지불하면서, 그 결과물이 만들어내는 가치는 플랫폼과 AI 기업이 나눠 갖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콘텐츠를 생산하는 주체가 유통 구조에 이중, 삼중으로 종속되는 악순환이 심화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언론이 SPUR 같은 연대를 구성할 수 있을까. 낙관하기 어렵다는 것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진영 논리에 따라 깊이 분열된 언론 지형, 포털 및 광고주와의 개별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경쟁 본능, 오랜 시간 누적된 매체 간 불신은 연대의 조건을 근본적으로 어렵게 만든다. 벨이 SPUR 가입 자격을 논하며 “기술적 권위주의의 확산에 편승하는 언론사”와 “저널리즘 보호에 진정으로 투자하는 언론사”를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했듯이, 한국에서도 연대의 전제 조건은 명확하다. 개별 매체의 수익성 확보에 앞서 저널리즘의 공공적 가치 보장이라는 최소한의 공통 인식을 공유하는 매체들이 먼저 손을 맞잡아야 한다. 그 합의 없이 이해타산만으로 뭉치는 연대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이현우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AI가 뉴스 콘텐츠의 생산·유통·소비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지금, 개별 대응의 한계는 이미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SPUR는 거창한 이상의 산물이 아니었다.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던 언론사들이 공동의 이해관계 앞에서 냉정하게 선택한 실용적 연대였다. 한국 언론에도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그 냉정함이다. 이념과 진영의 차이를 잠시 내려놓고, AI 시대 저널리즘의 지속 가능성이라는 공동의 과제 앞에 함께 설 수 있는가.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하느냐가 한국 언론의 미래를 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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