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되어 보이는 외관의 석조 건물엔 여느 건물과 달리 깃발 2개가 걸려 있었다. 툭 터진 공간을 통과하자 안뜰이 보였고, 앞편 건물과 이어진 또 다른 건물이 나타났다. 안내받은 대로 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쪽 구석 스탠드에 종이신문이 다발로 놓여 있었다. 이곳은 독일 뮌헨의 파울 하이제 거리에 자리한 프레스하우스다.
1912년 건립된 이 건물엔 ‘뮌헨 메르쿠르’와 ‘tz(티체트)’ 편집국이 있고, ‘이펜미디어(IPPEN.MEDIA)’가 있다. 이펜미디어는 독일 최대의 디지털 네트워크 중 하나로 지역 및 전국 단위 미디어 브랜드를 아우르고 있다. 80개 도메인 중 50개는 뉴스 웹사이트로, ‘뮌헨 메르쿠르’, ‘프랑크푸르트 룬트샤우’, ‘HNA’, ‘크라이스차이퉁’, ‘베스트팔렌 안차이거’ 등이 있다. 기자 2000명이 하루에 2000~4000개 기사를 발행하며 매달 2700만명의 독자에게 도달한다고 한다.
이펜미디어는 인공지능(AI) 활용에 선도적인 미디어 기업이다. 7월14일(현지 시각) 기자와 만난 마르쿠스 크날 이펜미디어 편집국장은 “독일의 다른 언론사들도 AI를 적극 도입하고 있지만, 이펜미디어는 높은 혁신성 덕분에 크게 주목받고 있다”며 “독일 및 유럽 전역에서 저널리즘에 AI를 철저하고 적극적으로 적용하고 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AI로 지역 저널리즘 한계 극복
이펜미디어는 AI 힘을 빌려 미디어 업계의 틀을 깨는 변화에 나섰다. 대표적인 사례가 선거 보도 자동화다. 이펜미디어 기술팀과 AI팀은 바이에른주 지방선거가 치러진 3월8일 밤과 이튿날 새벽 사이에 기사 4200개를 자동으로 발행했다. 크날 국장은 “바이에른주에는 2000개의 지방자치단체가 있다”며 “동시에 치러지는 지방의회 선거와 단체장 선거 결과를 담으려면 4000개의 기사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선거 기사 자동화는 지난해 2월 독일 연방의회 총선 때 처음 선보였다. 당시에도 AI가 1000개 이상의 기사를 생성했다.
AI가 생성한 기사는 지역 정당별 득표율과 당선자, 이전 지방선거와 비교해 득표율과 투표율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지역에 대한 일반 정보가 들어 있다. 특별한 것은 이전에는 그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소도시나 시골 마을의 선거 결과가 담겼다는 점이다. 인구 몇천 명의 작은 마을 주민들도 ‘우리 동네에서 이 의원이 뽑혔구나’, ‘어느 정당이 몇 표를 얻었구나’ 같은 내용을 기사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대도시나 주요 도시 선거 결과에 집중하는 언론사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한 번에 수천 개의 기사를 작성하는 것은 AI 없이는 불가능하다. 크날 국장은 “선거 후 하룻밤 사이에 5000개의 기사를 발행할 수 있는 편집국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기자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부가적 가치를 창출한 것”이라고 했다. 그가 6월 초,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열린 세계뉴스미디어총회에서 “지난 20년간 지역 언론사들에 이보다 더 좋은 시기는 없었다. AI가 그 이유다”라고 한 발언과 맥이 닿아 있다. AI 기술을 통해 지역 저널리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얘기다.
◇AI 자동화 기사 오보 가능성 0%
AI가 생산한 기사의 이면엔 사람이 존재한다. 기사 자동화 과정 전반에 인간의 통제와 검토가 깔려 있다. 아키텍처를 설계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사람이고 전체를 점검하는 것도 사람이며 발행 단추를 누르는 주체도 사람이다. AI가 기사를 쓰면 오보가 날 수도 있지 않을까. 크날 국장은 오보 발생률 0%라고 자신했다. “선거는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로 완벽해야죠. 수많은 품질 관리와 교차 검증을 거쳤고, 발행된 기사들은 사실상 오류가 없었습니다. 오류가 발생한다면 원천 데이터 자체가 잘못된 것이지 시스템의 오류가 아닙니다.”
이펜미디어의 AI 활용은 로컬 저널리즘과 맞닿아 있다. 뉴스 브랜드만 50개가 모여 있는 이펜미디어는 네트워크로 묶여 있다. 네트워크 핵심은 뮌헨에 있는 온라인 기반 중앙편집국이다. 중앙편집국은 전국적이며 국제적인 뉴스를 생산해 네트워크로 연결된 지역 언론사에 제공한다. 일종의 뉴스통신사 역할이다. 중앙편집국에는 40여명이 일하고 있으며 연방의회와 연방정부 정책, 경제, 국제 등 전 국민적 관심사를 취재한다. 지역 언론은 자신들이 뿌리를 두고 있는 현지 이슈를 밀착 취재한다. 중앙편집국은 지역 언론사 편집국과 실시간 소통하고 공유한다.
네트워크에 소속된 대부분 매체는 지역에 근거지를 두고 있다. 지역 뉴스, 특히 다른 언론사와 차별화된 지역 단위 맞춤형 정보를 주민들에게 제공한다. AI 도움을 받아 작은 시골 마을의 선거 결과를 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펜미디어는 기자 본연의 취재에 집중하기 위해 AI를 활용한다. 현재도 경찰 보도자료나 소방·구급 관련 알림 기사는 자동으로 발행된다. 그간 기자들이 단순히 받아적은 기사들인데, 자동화되면서 기자들은 현장 취재와 분석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서 정보가 나오면 AI가 기사를 자동으로 발행한다. 하르디 호이어 중앙편집국 스태프 총괄 및 콘텐츠 네트워크 책임자는 “경찰, 소방서, 시청 등에서 관련 정보가 수신되면 AI가 모든 핵심 팩트를 추출하고 텍스트를 구성해서 적절한 이미지를 매칭해 기사를 만든다”고 했다. “예전에는 이메일함으로 보도자료를 받으면 그걸 열어 텍스트를 복사한 뒤 CMS에 붙여 넣고 다듬어 사진을 찾는 방식이었죠. 이제 그 과정은 전부 생략됩니다. 사람이 텍스트를 복사하거나 이미지를 찾을 필요도 없죠. 완벽한 자동화입니다.”
◇AI 활용 다음 단계, 에이전틱 RAG
이펜미디어는 AI가 활용된 사실을 투명하게 공개한다. AI가 쓴 모든 기사 아래에 ‘이 글은 당사의 편집 품질 기준에 따라 인공지능을 활용해 작성되었습니다. 당사가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당사의 AI 가이드라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투명성 안내 문구를 포함한다. 호이어 책임자는 “EU AI 법안 시행에 따라 투명성 안내 문구는 훨씬 더 직관적이고 또렷하게 전면에 노출될 예정”이라고 했다.
이펜미디어는 단신, 단순 선거 결과 집계에 AI 비중을 계속해서 늘리되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 정보 수집, 기사 생산, 배포에 이르는 전 과정이 AI로 작동하는 ‘엔드투엔드(End-to-End) 파이프라인’ 구축이다. 기사 자동화의 질적 전환을 이루겠다는 구상인데, AI가 단순히 선거 결과만 나열하는 것을 넘어 지역의 복잡한 배경과 갈등도 읽어내는 기사를 생성한다는 의미다. 크날 국장은 “이미 큰 골격을 갖추었다”며 “다음 단계는 에이전틱 RAG(검색증강생성)를 도입해 기사의 심층성, 차별성, 독창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마르쿠스 프란츠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에이전틱 RAG 시스템의 핵심 역할을 아카이브 검색이라고 했다. 프란츠는 “언론사로서 우리만의 독보적인 강점은 과거 수많은 사건을 취재하고 보도해 온 방대한 정보 아카이브”라며 “인간 기자의 노동력이 비싸고 한정되어 있어 과거 자료를 일일이 찾는 데 한계가 있었지만, 에이전트가 아카이브를 자율검색하고 판단을 내려 그 결과를 기자에게 제공하거나 기사 작성에 직접 활용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그는 “에이전틱 RAG 시스템은 아카이브에서 필요한 과거 자료를 완벽히 조사하는 비서 역할을 하고, 기자는 창의적이고 가치 있는 취재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고 했다.
이펜미디어는 2025년부터 ‘지역 언론의 날(Local Journalism Day)’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지역 언론사들이 독자들에게 지역 저널리즘의 가치와 중요성을 알리는 캠페인이다. 지난 5월에 열린 제2회 대회는 독일 전역에서 100개가 넘는 지역 언론사가 참여했고, 다채로운 현장 행사와 캠페인이 펼쳐졌다. 이펜미디어는 국제뉴스미디어협회(INMA)와 협력해 지역 언론의 날을 국제 연대 행사로 확대할 방침이다. 크날 국장은 “전 세계적으로 지역 언론이 큰 재정적·구조적 압박을 받고 있다”며 “독자들과 다시 소통해야 하며 AI가 이에 대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한국 언론사나 한국기자협회 차원에서 참여하면 좋겠다”고 했다. 세계 지역 언론의 날은 2027년 5월5일에 개최된다.
뭔헨=김성후 선임기자 kshoo@journalist.or.kr
수습기자, 넉 달만에 기사 AI 자동화시스템 구축… 2분이면 기사 1개 생산
우리가 집을 지을 때 디자인을 설계해서 공사에 들어가는 것처럼 이펜미디어의 선거 보도 자동화도 일정한 AI 프로세스를 거쳐 시스템이 구축된다. 당연히 그 과정에 사람이 개입한다. 사람은 보도의 전체 구상을 잡아 어떤 순서로 기사를 작성해야 하는지 AI에 지시하고 기사가 생성되면 검토한다.
안나 알렉산드라 홀 이펜미디어 AI팀 수습기자는 3월 실시된 라인란트팔츠주 주의회 선거 결과를 AI가 자동으로 생성하는 시스템을 혼자서 구축했다. 홀은 “AI를 보조 도구로 바이브 코딩을 활용해 코드를 짰다”면서 “이전에 AI 관련 배경지식이 전혀 없었다. 이곳에서 4개월 만에 이 모든 것을 배웠다”고 강조했다.
7월14일(현지 시각) 이펜미디어 사무실에서 홀은 눈을 반짝이며 워크플로우 도구 ‘N8N’을 사용해 기사를 자동 작성한 과정을 설명했다. PPT 화면에 ‘코드 노드’, ‘AI 노드’, ‘머지 노드’ 등 생소한 용어가 등장했다. 이해하기 어려워 하는 걸 눈치챘는지 홀은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며 “기자가 선거 관련 기사를 쓸 때 어떤 정보들을 포함할지 일정한 구조와 순서를 구상하듯 똑같이 진행된다”고 했다.
기사 자동화 시스템 워크플로우는 공식 데이터 수신에서 시작한다. 홀은 이를 ‘트리거(발동 조건)’라고 했다. 선거로 예를 들면 선거 공식 웹사이트에 개표 결과가 공개되는 순간이 트리거가 된다. 트리거가 당겨지면 모든 프로세스가 자동으로 진행된다. 코드 노드가 연쇄 발동돼 득표 데이터를 전달받고, 지난 선거 데이터를 담고 있는 다양한 노드들을 지난다.
다음은 AI 에이전트가 코드 노드가 가져온 복잡한 데이터를 읽고 기사를 자동으로 작성하는데, 여기엔 홀이 작성한 프롬프트가 들어 있다. 홀이 헤드라인, 본문에 들어갈 내용, 지난 선거 데이터를 처리하는 방식 등 기사의 핵심 알맹이를 지정하는 셈이다. 기사 작성이 끝나면 이미지가 추가된다. 해당 지역 대표 사진, 독일 주요 정당의 상징색을 반영한 득표율 막대그래프, 선거 지도, 영상이 본문과 자동으로 결합된다. 다음으로 수집된 다양한 정보를 하나로 합쳐 기사를 만드는 과정인 ‘머지 노드(Merge Node)’ 단계를 거친다. 홀은 “수많은 인턴기자가 제각각 다른 파트에서 조사해 온 자료를 한데 모아 완제품 기사를 만들어내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그렇게 생성된 기사는 기자의 검토와 승인 과정을 거쳐 발행되고 이후 발행된 모든 기사는 해당 링크와 함께 스프레드시트 표에 기록된다.
홀은 “저희 워크플로우는 전체 개표 결과가 나와야 작동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며 “라인란트팔츠주 주의회 선거의 경우 당일 자정 직전에 당선자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주의회 최종 의석 배분이 공표되는 새벽 3시30분까지 기다려야 했다. 중간에 라인란트팔츠주 통계청 링크 일부가 작동되지 않은 변수도 있었지만, 코드를 빠르게 수정하고 데이터를 직접 입력해 해결했다. 데이터가 갖춰지면 기사 1건당 약 2분 정도 소요된다”고 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