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지역 신문사인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가 경영난을 겪던 시기, 지역 내 백만장자였던 게리 렌페스트는 이 신문사를 인수했다. ‘필라델피아의 대표 지역 언론이 없어지면 이 도시는 너무나 큰 손실을 입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인수와 함께 설립된 렌페스트 저널리즘 연구소(The Lenfest Institute for Journalism)는 디지털 전환을 위한 지원 및 후원에 집중했다. 그 결과 필라델피아 인스콰이러는 현재 디지털 유료 구독자 12만3000여명, 신문 독자 4만여명을 보유한 매체로 발돋움했다. 가브리엘 에스코바르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편집국장 겸 부사장에 따르면 과거 매출의 80%를 차지하던 광고 수익이 현재 10~20%로 줄고, 구독 수익이 80%를 차지하는 비즈니스 모델 역전 현상이 일어났다.
미디어의 ‘비즈니스 자립’을 돕는 데 집중하고 있는 렌페스트 연구소는 이제 필라델피아뿐만 아니라 생존 위기를 겪는 모든 미국 지역·중소 매체를 지원하고 있다. 그간 미디어의 디지털 전환을 위한 여러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했지만, 이제는 인공지능(AI)을 비즈니스에 접목시키는 일도 중요해졌다. 2024년부터 운영 중인 ‘AI 펠로우십’(Lenfest AI Collaborative and Fellowship)은 연구소의 주요 프로그램 중 하나다.
직접적 재정 지원이 아닌, AI 엔지니어(펠로우) 채용을 지원해 2년간 미디어 조직 내부에 배치시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특징이다.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의 후원으로 마련된 이 프로그램을 통해 지원받고 있는 미 지역 언론사는 10여 곳이다. 시애틀 타임즈, 보스턴 글로브,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등이 AI 펠로우와의 협력을 통해 회사별로 사정에 맞는 새 비즈니스 창출을 위한 AI 도구를 출시했다.
펠로우 채용 지원, AI 기업과의 협력, AI를 활용한 비즈니스 창출 등의 방식이 역시 경영난을 겪고 있는 국내 지역 언론사에도 가능할 수 있을까. 7월1일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사옥 내 위치한 렌페스트 연구소에서 AI 펠로우십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는 트리스탄 로퍼 지역 프로그램 총괄을 만나 그 가능성을 물었다.
로퍼 총괄은 “AI 펠로우는 완전히 제로에서 ‘우리가 어떤 문제를 도와드리면 될까요?’라고 묻는 것부터 시작했다. ‘우리가 가진 이런 아이디어들이 있으니 당신들은 이걸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라며 “조직 내부로부터 필요한 니즈를 직접 발굴하는 것인데, 일하는 현장 직원들의 필요에 의해 주도된다는 것이 이점”이라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이 탄생한 건 테크 기업과 언론사 등이 함께한 한 행사장에서였다. 로퍼 총괄은 자신이 연구소에 재직하기 전 일이라고 전제하며 “그 행사는 ‘데모크라시 데모 데이(Democracy Demo Day)’라고 불렸던 것 같다. 거기서 오픈AI와의 파트너십이 성사됐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대화의 초점이 ‘미디어 비즈니스를 개선하기 위해 AI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맞춰졌는데, 어떤 면에선 미디어 산업에서 AI를 논의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본다. 기사를 직접 생산하거나 기자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등의 민감한 문제를 건드리지 않기 때문”이라며 “대외적 이미지 관점에서도 오픈AI에 매력적으로 다가갔던 것 같고, 이미 사회공헌팀이 있는 마이크로소프트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한편으론 렌페스트 연구소가 본래 뉴스룸이 사업 측면에서 좀 더 지속 가능하고 생존할 수 있는지를 탐색해온 덕분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2년간 프로그램 운영에서 긍정적인 AI 비즈니스 혁신 사례에 대해 로퍼 총괄은 시애틀 타임스와 보스턴 글로브 등을 꼽았다. 시애틀 타임스는 ‘잠재 광고주 발굴 및 맞춤형 광고 제안서 생성 AI’를 만들었다. 로퍼 총괄에 따르면 이 도구는 기존엔 광고 거래가 없고 심지어 지역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기업을 즉각 찾아냈고, AI로 맞춤형 제안서를 작성해 보내자 곧바로 실제 광고 계약을 성사시켰다.
보스턴 글로브는 광고주들에게 브랜드 이미지가 손상되지 않는 보도에만 기업 광고가 자동으로 노출되도록 필터링하고 매칭하는 AI 도구를 구축했다. 보스턴 글로브는 매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를 대대적으로 취재 보도한다. 마라톤 특별 취재 섹션을 운영하려면 대규모 기업 광고를 유치해야 하지만, 큰 난관이 있었다. 광고주들이 과거 큰 비극이었던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 사태를 연상시키는 기사 바로 옆자리엔 자신들의 브랜드 광고가 노출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에서 보스턴 글로브는 AI가 기사 맥락을 추론해 마라톤 관련 보도 중 폭탄 테러와 같은 어둡고 기업 이미지에 부정적인 요소가 없는 기사에만 기업 광고가 매칭돼 노출되도록 제어해 주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로퍼 총괄은 “광고주들에게 브랜드 이미지가 손상되지 않는 안전지대라는 명확한 보증을 제공해 신뢰를 구축했고, 이를 통해 더 많은 광고를 성공적으로 판매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렌페스트 연구소는 이번 프로그램 외에도 AI로 인한 제로클릭 등 언론사 웹사이트 트래픽 위기에 대한 타개책도 마련 중이다. 뉴스룸과 1인 미디어 및 인플루언서 간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매칭하고 후원하는 ‘뉴스 크리에이터’ 지원 사업이다.
로퍼 총괄은 “펠로우십 프로그램보단 규모가 작지만, 신뢰할 수 있는 기성 언론사의 저널리즘 콘텐츠를 막강한 파급력을 가진 크리에이터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전달하는 차원”이라며 “언론사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결과적으로 젊은 독자층의 홈페이지 트래픽 유입 및 새로운 디지털 매출 파이프라인을 기성 언론사로 끌어올 수 있도록 연결해 주려는 시도”라고 했다.
로퍼 총괄은 무엇보다 중요한 건 혁신 사례의 “공유”라고 강조했다. 현재 프로그램을 지원 받는 매체보다 더 작은 소형 지역 언론사로의 기술 이식도 시급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렌페스트 연구소가 펠로우들을 정기적으로 소집해 사례를 공유하도록 하고, 컨퍼런스 등을 통해 그들이 개발 중인 프로젝트와 혁신 사례들을 홍보하는 이유다.
로퍼 총괄은 “프로그램을 설계할 때 강력하게 원한 건 각 언론사가 현장에서 학습하고 깨달은 지식들이 지원받는 한 곳의 조직 내부에만 고이지 않고 외부로 확산하도록 보장하는 것”이라며 “중대형 언론사들은 이미 자체적인 기술 인력이나 전담 테크 팀을 보유하고 있지만 소형 지역 언론사들은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 다음 프로그램 기수에선 인프라가 훨씬 취약하고 규모가 작은 소형 지역 언론사들을 지원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