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시장으로 ‘머니 무브(자금 이동)’가 일어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려스러웠던 건 보험 해약이 눈에 띄게 늘어난 점이었다. 국내 3대 생명보험회사의 올해 상반기 해약환급금은 13조원에 육박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1% 폭증한 규모다. 보험을 중도에 해약하면 대부분 납입한 보험료보다 적은 돈을 돌려받는다. 손해를 감수하고 보험을 깬 사람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코스피가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에 미래를 위해 쌓아둔 돈까지 증시에 앞당겨 쓴 셈이다.
청년들의 빚투(빚내서 투자)는 더욱 눈에 밟혔다. 6월 말 기준 20·30대 주식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4조2000억원에 달했다. 무려 1년 반 만에 2.4배로 불어났다. 아직 벌지 않은 미래 소득을 당겨다가 상승장에 베팅한 것이다. 결국 부모에게 손을 벌리거나, 손실을 메우기 위해 추가 차입에 나서는 등 곤경에 빠진 청년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주식시장이 오르는 것 자체를 경계할 이유는 없다. 자금이 생산적인 기업으로 흘러가고 기업 가치가 높아져 투자자가 그 과실을 나눠 갖는 것은 자본시장의 본래 기능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부동산이나 예금에 묶여 있던 가계 자산이 자본시장으로 이동하는 것은 한국 경제가 바라던 변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미래 자산을 헐어 현재 이익을 좇았다는 사실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최근 급락장이 뼈아픈 건 미래를 담보로 한 선택의 청구서가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기 때문이다.
코스피 급등이 남긴 가장 큰 상흔은 어쩌면 돈을 벌기 위해 감수해야 할 시간의 무게를 가볍게 보게 된 점일지 모른다. 몇 달 만에 주가가 수백 퍼센트씩 오르고 주변에서 월급 몇 달 치를 벌었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매일 출근해 급여를 받는 일은 상대적으로 초라하게 느껴질 수 있다. 성실하게 일하고 저축해 자산을 쌓는 과정은 답답하고 느린 길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청년층은 이런 초조함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월급을 모으는 속도보다 집값과 자산 가격이 오르는 속도가 빠르다는 경험을 이미 여러 차례 했기 때문이다. 투자하지 않으면 뒤처지고, 빚을 내서라도 시장에 올라타야 한다는 불안감이 커진 배경이다. 이런 경험이 반복될수록 노동이 자산 형성의 출발점이라는 믿음은 현실과 동떨어지게 느껴질 수 있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논란의 본질도 크게 보면 다르지 않다. 투자자 선택권을 넓힌다는 명분으로 도입됐지만, 자산 형성의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헛된 기대를 키운 측면이 있다. 짧은 시간 큰돈을 버는 일이 평범해지면서 조급해진 투자자들이 부나방처럼 돈을 태웠다. 문제는 자산 쌓는 데 기대되는 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위험까지 작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급락장에서 반대매매가 급증하면서 레버리지 상품은 오히려 그 위험을 압축해 한꺼번에 드러냈다.
시장은 언제든 다시 오를 수 있고 손실도 언젠가는 만회할 수 있다. 하지만 자산을 불리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을 대신해 주는 지름길을 찾기란 대단히 어렵다. 이런 사실을 외면한 채 증시로 돈이 몰리는 걸 정책 성과로 포장하며 투자 참여를 부추기다시피 한 정부와 정치권의 낙관론은 결국 책임을 묻는 거센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 낙관을 믿고 뛰어든 이들이 감당할 고통을 생각하면, 시장의 골이 더 깊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