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표방송 사각지대 '우리동네 시·군의원'… AI 더했더니

[지역 속으로] 6·3지선 AI 개표방송 제작기
조진영 KBS청주방송총국 기자

4월, 평소 잘 알고 지내던 한 시의원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개표방송에 안 나와요. 그래서 선거 날은 일찌감치 집에 가서 잡니다.” 웃자고 한 말인 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니 정말 그렇더군요. 지방선거 개표방송에서는 도지사, 교육감, 시장·군수까지만 다룹니다. 도의원과 시·군의원 개표 상황은 안 나옵니다. 지방선거 개표방송인데 정작 우리 동네 개표는 볼 수가 없는 겁니다. 편성 시간은 정해져 있고 사람과 돈은 늘 모자라니 어쩔 수 없다고들 했습니다. 개표방송의 빈칸이었습니다.

조진영 기자가 노트북을 활용해서 실시간 개표방송을 하고 있다. 노트북 화면은 유튜브 송출화면이고, 뒤쪽에 있는 화면은 OBS라는 중계 프로그램이다. /조진영 제공


◇유튜브에 AI를 더하면?
다른 방송사들은 어떻게 하는지 물어봤습니다. 광역의원 개표를 다룬 곳이 더러 있었지만,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숫자를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옮기는 방식이었습니다. ‘사람 없이 돌아가게 하면 되지 않을까?’, ‘유튜브에 인공지능(AI)을 결합한다면?’ 상상력이 발동했습니다. 뜬금없는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KBS청주 보도국에서는 3월부터 로컬 뉴스 헤드라인 음성을 AI로 만들어 쓰고 있었거든요. 욕심이 생겼습니다. 편성 시간 걱정이 없는 유튜브에서, 데이터만 넣으면 AI가 알아서 중계하는 방송을 만들어보자.

◇투입 인력 3명, 남은 시간 3주
먼저 선관위 홈페이지에서 18대 대선 시간대별 개표 엑셀 파일을 내려받아 생성형 AI에 넣고 물었습니다. 이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들어온다 치고 화면을 만들어 읽어줄 수 있냐고요. 일주일쯤 씨름하니 후보별 득표율이 시간대별로 바뀌고 아나운서 음성이 그 숫자를 읽어주는 간단한 프로그램이 나왔습니다. 다음날 보도국 회의에서 시연하자 격려와 함께 여러 제안이 쏟아졌습니다.


문제는 덩치였습니다. 대통령 선거는 선거구가 하나지만, 이번 지방선거에서 충북 지역 선거구는 94개, 후보만 349명이었습니다. 혼자서는 어림도 없었습니다. 지역 대학 컴퓨터공학과를 찾아가 산학협력을 요청했고 학생 2명이 합류했습니다. 저를 포함해도 투입 인력은 단 3명. 투표일까지는 고작 3주가 남았습니다. 화려한 그래픽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후보자 사진을 내려받아 배경을 날리고 크기를 맞추는 일만 해도 꼬박 이틀이 걸렸습니다. 개표 시작 직전까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끝에 ‘자동 개표방송 프로그램’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궁금한 건 ‘마지막 한 자리’
돌아가는 방식은 단순합니다. 선관위가 공표하는 실시간 개표 데이터를 컴퓨터가 받아옵니다. 그 숫자로 선거구별 화면 한 장을 자동으로 만듭니다. 남녀 AI 아나운서가 번갈아 읽습니다. 유튜브로 내보냅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충북을 청주, 북부, 중부, 남부 4개 권역으로 나눠 라이브 4개를 열었고, 라이브마다 선거구를 전부 도는 데 1시간 안팎이 되도록 큐시트를 짰습니다.


가장 많은 고민 끝에 만든 건 ‘마지막 당선권 경쟁’ 화면입니다. 서너 명을 뽑는 시·군의원 선거에서 승부는 1등이 아니라 마지막 한 자리에서 납니다. 그래서 당선권에 걸린 두 후보를 크게, 나머지는 작게 넣었습니다. TV의 16대 9 화면 비율도 버렸습니다. 메인 화면은 4대 3으로 압축해 가독성을 높이고, TV에서 하단 스크롤로 흐르던 의회별 판세 등은 우측에 배치했습니다.

◇AI 방송에서 오보를 막으려면
AI 자동 개표방송에서는 예측 모델을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시·군의원은 수십 표로 당락이 갈리고 재검표도 흔합니다. 실제로 이번 충주시장 선거는 개표 막판에 120여 표차로 뒤집혔습니다. 예측을 붙였다면 밤새 오보가 났을 텐데 막은 겁니다. 비례대표처럼 법정 계산식으로 당선인이 정해지는 경우만 예외로 뒀습니다.


그래도 남는 오류에 대비해 AI가 만든 화면과 음성은 방송 직전에 사람이 한 번 검수하기로 했습니다. 문제가 보이면 해당 화면을 빼고 방송하거나 TV 수중계로 넘기도록 설계했습니다. 밤새 세 사람이 모니터를 지키며 AI의 환각 증상을 관리하기로 했습니다.


방송은 선거 당일 오후 8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쯤까지 자동으로 돌아갔습니다. 청주권만 12시간31분, 4개 권역을 합치면 약 40시간입니다. 홍보라고는 정치인과 출마자들에게 문자 수백 통 돌린 게 전부였는데도 새벽까지 시청자 수가 안 꺾였습니다. 정당 사무실과 후보 캠프들이 AI 개표방송 화면을 켜놓고 밤을 새운 겁니다. 방송이 끝나고 “선거 결과를 구석구석 알려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습니다. 이의를 제기한 시청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조진영 KBS청주방송총국 기자.

◇다음 빈칸을 찾습니다
이번 선거 날, 제게 아이디어를 주었던 시의원은 밤을 새웠습니다. 그리고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자기 이름이 불리는 개표방송이 처음 생겼으니까요. AI를 도구로 각자의 위치에서 빈칸을 찾아 채우는 일, 이제 모든 기자의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모델을 청주에만 두지 않으려 합니다. 저와 같은 고민을 하고 계신 선후배 기자님들이 있다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마지막으로 개표가 끝날 때까지 이틀 밤 꼬박 새워 가며(정말 한숨도 못 잤습니다) 함께해 준 국립한밭대 컴퓨터공학과 박천음 교수 연구팀(이현정·정인재)과 낯선 실험을 이해해 준 보도국 선후배들께 감사드립니다. 무모할 수도 있는 새로운 시도를 응원하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신 박영춘 청주방송총국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앞으로도 AI가 채워야 할 다음 빈칸을 찾아볼 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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