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주장] 2003년 한국, 기자들의 자화상

요즘 언론의 상호 비방전을 보며 민망해 하는 기자들이 많다.

공중파 방송사들은 경쟁적으로 미디어 관련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매주 신문을 ‘비판’하고 있다. 방송사에서 주로 비판의 도마 위에 올리는 언론매체들은 이른바 ‘조중동’ 3개 신문사다. 방송사들의 종이신문 비판은 집요하고 끈질기다. 방송사들은 드물게는 서로에게 칼날을 겨누기도 한다.

방송사가 이렇게 대대적으로 보수언론을 비판하다보니 그들도 미디어면을 크게 확대해 대응한다. A라는 신문이 B라는 방송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 B방송은 반드시 두 세배로 A신문을 비판한다. 그 반대의 경우도 물론 있다. 그러나 방송사 강도와 신문의 강도는 그 영향력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시각도 있다.

언론매체간의 상호비판은 필요하다.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언론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도 건전한 상호비판이 필수적이다. 그래야만 언론은 균형감각을 유지한 채 눈을 부릅뜨고 권력의 남용을 비판하고 감시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한국 언론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을 가리켜 과연 건전한 상호 비판이라 할 수 있을까.

건전한 상식을 가진 국민들이라면 대체로 고개를 돌릴 것이다. 한국 언론은 이미 비판의 금도를 넘어 원색적인 비난과 일방적인 비방, 그리고 폄하의 과잉으로 치닫고 있다. 치졸한 자사 이기주의, 권력 유착을 통한 영향력 확대 등 불순한 의도가 틈입한 결과다.

한 언론계 인사는 얼마 전 기자협회 창립 37주년 기념식에서 “한국은 현재 요상한 언론 환경에 처해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그가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작금의 언론 상황을 보면 굳이 부연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과거 권력의 언론탄압이 자행될 때도 일부 한국 언론은 주판알을 튕겨왔다. 힘을 합쳐 맞서는 게 아니라 권력의 탄압으로 경쟁사가 타격을 입기를 은근히 기대한 결과일 것이다. 세계 언론단체에서 한국 언론 상황을 우려하는 성명서를 내도 제3자처럼 태연자약한 게 한국 언론계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언론계의 상호 비방전은 언론계 안팎에 커다란 부작용을 낳고 있다. 하나는 언론 본연의 임무 중의 하나인 사회통합 기능을 언론 스스로 저버리고 있다는 비판이다. 언론이 사회갈등을 봉합하고 치유하는 것이 아닌 갈등을 확대 재생산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현실을 언론 종사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가.

다른 하나는 언론사들간의 비방전이 가열되면 될수록 국민의 언론에 대한 신뢰는 떨어지고 종국에는 언론종사자들에 대한 신뢰도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사회 여건의 변화로 기자들의 직업적 자긍심과 자부심이 떨어지고 있는 마당에 언론계 스스로 제 얼굴에 침 뱉기식의 낮 뜨거운 싸움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이런 상황이니 언론계 출신 고위공직자가 자신의 입신 출세를 위해 후배 기자들을 매도하는 참담한 일까지 벌어진다.

지금 한국언론이 해야 할 일은 언론의 신뢰와 기자들의 자긍심을 회복하는 일이다. 이는 언론 본연의 기능에 충실할 때만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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