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착해도 '선'은 넘지 않아

영·미·일 사례.. '사회적 안전판' 마련이 관건

"정치인과 기자들 간의 친분관계는 매우 개인적이다. 한마디로 맘 통하는 사람끼리 '끼리끼리' 짝을 짓는 것이다. 지방지 기자는 해당 지역구 의원들과 각별한 친분관계를 맺는다. 또 신문사 기자들의 경우 소속사와 정치 노선이 같은 정치인들과 주로 교분을 맺고 있다."



영국 정치권과 정치부 기자(소위 로비기자) 간의 관계를 파헤친 '뛰는 로비기자 나는 언론플레이'(이현주 KBS 기자 지음, 중앙M&B 발행)의 한 대목이다. 이 책에 따르면 영국의 정언 유착관계는 내각의 정책 결정 과정을 외부에 곧바로 노출시키지 않는 영국의 '비밀주의' 관행에서부터 출발했다. 정치권의 취재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근본 때문에 '로비기자'들은 정치권의 눈 밖에 나지 않도록 노력해왔고, 정치권은 이런 '로비저널리즘'의 속성을 이용해 언론플레이 기법을 세련화시켜왔다.



이러한 영국의 정언 관계는 우리 정부, 국회, 총리실의 그것과 비슷해 보인다. 아니, '언론 문건'의 작성-전달-사태 부풀리기까지 모두 도맡아 정국 혼미의 원인을 제공한 우리 언론현실과 비교해 보면 오히려 정해진 '룰'을 넘지 않는 영국의 정언유착이 더 나아 보인다. '정언 유착' 관행은 정치권-언론 관계에 있어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인 것일까?



정언유착의 양상은 정치문화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어느 나라에서나 나타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안정된 사회일수록 정언유착에 대한 사회적 안전판이 튼튼하다는 점이다.



우리 언론에 영국식 기자단 관행을 심어놓은 일본의 경우, 소위 '당 기자'라 부르는 정치부 기자들은 정치인과 아예 동고동락하는 관계지만 이해관계에 의한 흥정은 없다. 동경 특파원을 지낸 이준 조선일보 경제부 기자는 "일본 기자들은 우리 이상으로 정치인과 가깝고 때로 대변인 역할까지 하지만 '언론 문건' 사태처럼 정국을 뒤흔드는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는다"며 "내각책임제로 정치권력이 분리되어 있어 절대권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상하원 의원 공천권이 정치권에 없기 때문에 정언 간 정치적 이권 거래가 일어나지 않는다. 심지어 뚜렷한 정치적 편향을 보이는 칼럼니스트라 해도 그것으로 인해 이권을 얻지는 못한다. 워싱턴 특파원을 지낸 박인규 경향신문 국제부 차장은 "미국에서도 정치인, 언론인 간 직종 이동이 종종 있지만 이로 인한 이권 거래는 없다"며"우리의정치문화와는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뛰는 로비기자&'를 쓴 이현주 KBS 경제부 기자는 "영국의 로비저널리즘 연구자들이 공개브리핑 등 미국식 시스템을 찬양하지만 미국 역시 숨겨진 정보소스에 의한 언론플레이가 심해 대안이 없긴 마찬가지"라며 "인터넷 같은 뉴미디어가 폐쇄된 정보와 정보원을 해방시키고 사회 투명성이 높아지면 정언, 경언유착 시스템은 자연히 사라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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