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이 '봉'인가?
구조조정 '1순위', 징계인사 처리부서로 전락
'논객' '오피니언 리더' 명성 사라져 격세지감
김창남 기자 kimcn@journalist.or.kr | 입력
2005.02.16 09:45:32
시대흐름과 매체환경 변화에 따라 논설위원에 대한 위상이 요동치고 있다.
과거 논설위원이라고 하면 그 신문사를 대표하는 ‘대논객’으로서 하나 자랑거리였으나 90년대 말 조선 중앙 등 일부 언론사를 중심으로 소장파 위원들이 영입되면서 예전과 다른 변화의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또한 최근 언론 전반에 불어 닥친 장기 불황도 논설위원들의 위상 변화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히 일부 신문사의 경우 경영압박이 가중되면서 다른 부서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령과 임금이 높은 논설위원들이 ‘관습법’처럼 구조조정 1순위가 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논설위원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 구조조정 기간 동안에는 후배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전언이다.
실제로 한겨레는 지난 1, 2차 희망퇴직을 통해 논설위원실과 콘텐츠평가실 위원들 8∼9명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희망퇴직을 신청하기도 했다.
최근 논설위원으로 퇴사한 한 언론인은 “신문사가 어렵다보니 ‘인건비 절감’과 ‘물갈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 사측이 논설위원실을 직·간접적으로 압박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신문의 신뢰성을 제고하는 측면에서 경험이 많은 논설위원들의 전문 지식과 경험을 살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런 문제의식은 지엽적인 것일 뿐, 오히려 다매체·다채널 시대의 매체 변화 속에서 논설위원실의 기능과 역할 변화는 ‘시대 조류’라는 시각도 있다.
이는 과거와 달리 각 분야의 전문가가 많이 양성되고 이들에 대한 매체들의 문호 개방이 더욱 확대되면서 논설위원들의 ‘의제설정 기능’이나 ‘오피니언 리더로서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축소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논설위원실과 편집국간 상시적인 ‘수평적 인사이동’도 위상변화에 한 몫 했다는 평가다. 과거 논설위원실은 여러 부서를 거친 고참급 기자들의 ‘공간’이었으나 이런 벽이 허물어지면서 과거와 같은 위상이 사라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일부 논설위원들은 자신들의 위상과 관련, ‘빛나다’는 뜻에서의 ‘현직’(泫職)이 아닌 ‘한직’(閑職)으로 보고 있으며 스스로를 ‘기자가 아니라 필경사(筆耕士)’로 낮춰 부르는 등 자괴감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한 논설위원은 “개인의 소신과 회사 방침이 충돌할 때 회사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회사의 사시에 맞출 수밖에 없다”며 “이 때문에 많은 논설위원들이 사설보다는 기명 칼럼을 더 선호한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처럼 논설위원에 대한 위상과 인식이 낮아지면서 심지어 일부 신문사들은 간부급 기자가 물의를 일으킬 경우 편집국에서 논설위원실로 인사조치하는 경우가 많아 논설위원실이 명예롭지 못한 인사발령을 소화해주는 곳으로 전락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언론계에서는 신문이 타 매체와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사설 및 칼럼의 중요성이 대두될 수밖에 없으며 이런 점 때문에 향후 논설위원실의 기능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는 게 중론이다. 아울러 회사 측도 단기적 ‘인건비 절약’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논설위원들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세종대 허행량 교수(신문방송학과)는 “사회 자체가 다양화·전문화되면서 논설위원들이 제시하는 의제설정기능이 약화됐다”면서 “그러나 저널리즘 본령을 위해선 사설과 칼럼에 대한 전문성이 확보되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각 언론사가 인재육성을 위해 얼마만큼 이들에 대한 투자의지가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