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생활 10년, 여기자 생활 10년"

여기자 세미나 참관기




  이은정 기자  
 
  ▲ 이은정 기자  
 
내가 1995년 1월 경향신문사에 입사했으니 올해로 만 10년이 되었다. 언론사 우리 동기들이 1994년말 입사 군번인 것을 감안하면 이제 `12년차'라고 말하는 연조이다.



우리가 언론사에서 여자임을 강력하게 느낄 때가 아마도 초년병 시절과 나중에 간부급으로 승진할 때인 것 같다. 입사 2~3년차 후배들을 보면서 나는 10년전 경찰 기자 시절, 타사 여기자들과 함께 생활고와 인생고(?)를 토로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느 새 기자 생활에 익숙해져 버렸는지 나는 그런 감정들에 무뎌져 있었고 `여기자로서의 나'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단순히 머리나 식히고 오자는 생각으로 참여했던 이 세미나는 결과적으로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기회가 됐다.





◇기자 사회에서 여기자의 존재=세미나에 참석한 여기자들은 “데스크가 별로 안 좋아하는데 눈치보며 왔다” “데스크가 비 와서 비행기 안 뜰 거라고 하더라”는 말을 전했다.



아마도 요즘처럼 제작 환경이 나쁘고 일손이 부족할 때 하루나 이틀 자리를 비운다고 하니 선뜻 내켜하는 데스크는 별로 없으리라. 거기다 대부분 남자들인 데스크들은 여기자 세미나에 대해 `참가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라는 생각을 먼저 하는 것 같다(데스크의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윗 사람들의 시큰둥한 반응은 여기자들에게 상처가 된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특히 올해는 일간스포츠의 여기자 전원 해고 사태가 있었던지라 여기자들의 단결 의식이 더 높아져 있었다. 각자 소문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실제 얘기를 들어보니 더욱 황당했다. 해고 자체도 문제지만 해고 기준에 배우자와 부양가족 유무가 각각 20%씩, 40%나 차지했다는 것이다. 기자란 원래 비판 의식만큼은 확실한 집단이 아니던가. `여기자는 무조건 잘릴 수밖에 없는 기준 아니냐'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이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웬 10년전 시츄에이션이냐'는 항의가 이어졌다.



자연발생적으로 일간스포츠 기자들의 파업을 돕자는 모금함이 만들어 모금운동을 벌였다. 또 이 자리에 모인 여기자들만이라도 의견을 모아 발표문을 만들자는 제안이 나왔고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아마도 우리가 만든 선언문(일명 `서귀포 선언문'이라 이름붙였다)이 나의 체험기와 별도로 지면에 소개되리라 본다.





◇정보를 준 강연들=강연은 모두 4개였다. 첫날은 신병휘 SK 커뮤니케이션스 싸이월드서비스 그룹장이 `디지털 및 개인 미디어의 변화 흐름과 전망'을 발표했다. 둘째날은 손지애 CNN 서울특파원이 `외신기자와 한국취재 24시'를, 한송이 원장(한송이 클리닉)이 `언론활동과 건강'을, 또 고명진 뉴시스 사진영상국장이 `영상사진 교육'에 대해 발표했다.



손지애 국장은 외신 기자의 실생활과 뉴스 취재과정을 자세히 설명해주어 외신 기자들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었다. 바쁜 기자 생활 중에 딸을 셋이나 키우고 있으며 모유 수유를 위해 전방에까지 모유수축기를 들고 다녔다는 에피소드는 우리를 놀라게 했다. 그는 또 “회사 생활뿐 아니라 개인 생활에서도 욕심을 많이 내라”고 주문했는데, 욕심을 많이 부릴수록 달성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는 설명이었다.



한송이 원장은 여성들이 조심해야 할 질병과 건강관리법을 얘기해주었다. 하루에 술을 한잔씩 마시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술을 안 마시는 여성에 비해) 1.1배가 늘어나며 4잔을 마실 때는 4.4배가 늘어난다는 `무서운' 정보도 주었다. 다들 4잔 이상 마시는지 갑자기 분위기가 싸~ 해졌다.



고명진 국장은 가족의 소중함을 사진으로 남기라는 충고를 했다. 또 디지털카메라의 성능은 가격과 비례한다, 300만화소급 이상이면 신문용으로 충분하다, 요즘 800만화소급도 50만원대에 구입할 수 있다는 설명과 홈쇼핑이 가장 싸더라는 실용적인 정보도 주었다.



아마도 2박3일동안 60명이 넘는 기자들을 `관리'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자들은 모임 시간을 엄수하는 성실성과 부지런함으로 모든 일정을 가볍게 소화해냈다. 세미나에 대해서는 `유익한 시간이었다'는 말과 `2% 부족했다'는 평가가 엇갈렸다. 후자가 연조 높은 여기자들의 멘트였으므로 주최측이 이 의미를 새겨주기 바란다.





◇여기자들끼리 모이면 뭐하고 놀까=여기자들은 출입처나 부서에서 회식이 있으면 미리부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다. 술자리에서 남자 기자들에게 밀리면 안된다는 생각과 뭔가 강력한 `포스'를 발휘해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켜야 된다는 부담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여기자들끼리 모일 때는 이런 심리적 압박이 느슨해지고 자유로와진다.



둘째날 저녁은 여기자들의 끼가 무한히 발산된 시간이었다. 전국에서 뽑혀온 `선수'들의 내공은 장난이 아니었다. 술이면 술,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못하겠다고 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역시 내공은 연조에 비례했다.



구수한 광주 사투리로 입담을 자랑한 광주지방의 모 기자, 목을 휘감는 새 기법의 러브샷(마주 보고 팔을 상대방의 목 뒤를 돌려 술을 마시는 자세. 얼굴을 비빌 듯이 맞대야하므로 파트너를 보고 시행 여부를 결정하기 바란다)으로 기자협회장을 한방에 보내버린 강원지방의 모 기자, 언론사 생활을 오래 하려면 꼭 배워야만 할 카리스마였다.



또 미스코리아 출신의 여기자로 소문만 들었던 한 방송기자의 실체(?)를 확인한 기회이기도 했다. 우아한 원피스 자락을 흔들며 70년대 유행한 `파도여~'(제목 : 무인도)를 외치던 그 매력은 정말 글로 전달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기자협회장 이상기 선배는 혈혈단신으로 참가해 여기자들과 일일이 술을 마시는 괴력(?)을 과시했다. 이 많은 여기자들을 거느리고(?) 술 먹는 일이 어디 흔하겠는가. 혹시 차기 기자협회장 선거에 입후보하는 사람이 없어 곤란해지면 이 체험기를 다시 한번 보도해주기를 바란다.



이 모든 장면들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해 아쉽다. 그러나 영상으로 남은 기억보다 머리 속의 기억이 더 강하고 더 아름다우리라. 한 10년후쯤에 다시 여기자 세미나에 참석해 오늘의 기억을 되살리고 싶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