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라는 여의봉
나는 정치권과 언론, 학계에서 가짜뉴스라는 말을 쓰는 것에 대해 일관되게 반대해 왔다. 가짜뉴스라는 단어가 지칭하는 실체는 다면적이고 모호함에도, 입에 착착 감기는 그 맛 때문에 한 번 쓰기 시작하면 도무지 다른 것으로 대체되지 않는 전염성과 선동성이 있다. 가짜뉴스를 규제해야 한다는 국민 설문조사를 한다면 결과가 찬성 100%에 가깝게 나온다 해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가짜뉴스가 무엇인가라고 질문한다면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원들조차 저마다 다른 답을 내놓을 것이다.모호하지만 여의봉 같은 신통력을 발휘하는 가짜뉴스라는 단어를…
코카콜라와 한국언론
유명한 이야기. 펩시 챌린지 슬로건을 앞세운 펩시콜라가 1984년 슈퍼마켓 시장점유율에서 코카콜라를 2%포인트 앞섰다. 2차대전 직후 60%가 넘던 코카콜라 시장점유율은 25%까지 급락했다. 이에 코카콜라는 1985년, 단맛을 더한 뉴코크(New Coke)를 출시했다. 앞서 13개 도시 19만여명 소비자조사에서 60%가 기존 코카콜라보다 뉴코크를 택했다. 선풍적 인기를 누릴 줄 알았다. 그런데 출시 이틀 동안 3만1600통의 항의전화가 쏟아졌다. 항의단체까지 생겨 미 전역에서 코카콜라를 돌려달라는 시위가 벌어졌다. 결국 코카콜라는…
트랙 바깥의 비진학자
흔히 시험은 달리기 경기에 비유되곤 한다. 경기 결과에 따라 순위를 매기고 그 순위가 평생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많은 게 걸린 경기로 말이다. 새로운 일을 구할 때도, 심지어 대학거부를 해도 학창시절에 몇 등급이었는지 질문을 받는다. 우리 사회는 어디서든 요구하는 학벌을 스펙이며 자격이라고 부르지만, 그 사회는 이미 학벌 중심 사회라 학벌 외에 다른 상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달리기 경기는 공정하지 않다. 애초에 달리는 개인들이 제각기 다른 환경과 자원을 가졌다. 누구는 달리기 연습에 매진할 수 있었지만 누구는 생계
한국과 일본의 '천황' 호칭
한국에서 가끔 일왕의 이름이 뭐였죠?라는 질문을 받는다. 바로 답할 수 없으면 일본인 맞아요?라고 의아한 표정을 하는데 사실 일본에서는 천황의 이름이 언론에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한국언론에서는 아키히토 일왕 나루히토 일왕이라고 하지만 일본에서는 주로 천황폐하(天皇陛下)라고 하고 어느 천황인지 구별이 필요할 때는 헤이세이 천항(平成天皇) 레이와 천황(令和天皇)처럼 연호를 붙이는 게 보통이다.그런데 내가 아사히신문 기자였던 당시 천황에 관한 기사를 쓰면 꼭 항의 전화를 받았다. 천황 폐하에 높임말을 안 썼다는 것이다. 내가 알아서
OTT 시대의 언론사
프레이밍 브리트니가 화제다. 미디어 폭력과 딸에 대한 아버지의 과도한 통제가 미국 팝 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삶을 어떻게 왜곡시켰는지 고발한 다큐멘터리다. 제작사는 뉴욕타임스(NYT). 지난해부터 60분짜리 장편 다큐물을 The New York Times Presents(뉴욕타임스가 제공합니다)라는 시리즈 명 아래 선보이기 시작했는데 이 작품은 그 6번째다. 감독인 사만다 스타크(Samantha Stark)는 다큐가 될 만한 NYT 기사를 골라 뉴스룸과 협업하는 사내 다큐 제작 책임자다. 탐사 보도 기반 다큐를 제작하는 경우 취재
포털에 청탁금지법을 적용하자
나는 만 20년 동안 언론계에 있었다. 포털의 뉴스서비스 역사와 대략 비슷한 기간이다. 이 기간 동안 포털과 언론, 정치권이 벌인 난장판을 기억하고 있다. 포털규제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그 난장의 역사를 다시 한번 짚어본다.2007년 이명박 대선캠프의 진성호 뉴미디어 팀장은 네이버는 평정됐고 다음은 손봐야 한다고 발언해 큰 논란을 불렀다. 2012년 새누리당은 부정적인 여당 기사에만 볼드체로 표시된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2013년 새누리당 산하 여의도연구원은 대형포털을 언론의 범주에 넣어 뉴스 편집권을 제한하거나 언론사에 전적
직업윤리 상실의 시대
정치 참여 선언도 하지 않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변인이 사퇴했다고 하는데, 황당하다. 그 주인공이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이라는 사실은 이 블랙코미디의 대미를 장식한다.이제 직업윤리의 상실은 한국형 정치드라마의 필수요소가 되었는데, 언론이 약방의 감초로 매 순간 등장한다는 것도 특징이다. 검찰총장이 검수완박을 핑계로 직을 던지고 대선 출마를 간보기하는 현실은 직업윤리의 파탄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검찰총장의 정치적 사퇴를 범이 내려온다에 빗대며 포장하기 바빴던 보수언론은 마찬가지로 현직을 던지고 캠프로 직행하는 논설위원의 사
기후 정상회담 보도가 아쉬운 이유
지난달 31일부터 이틀간 동대문 디지털 플라자(DDP)에서 진행된 P4G 서울 정상회의가 끝났다. 국내에서 처음 진행된 환경 관련 다자 정상회담이었던 만큼, 주요 언론사에서 기사들이 쏟아졌다. 언론에서 기후변화 소식을 많이 다뤄줬으니 그걸로 된 걸까.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집권 1년차인 2021년은 기후외교에서 주요한 해다. 1년 내내 굵직한 기후 외교회담들이 포진돼있다. 그 중간에 위치한 P4G 정상회담을 앞두고, 지난 6년간 멈춰있는 한국의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NDC)가 상향될 것이란 희망 섞인 기대도 나왔다. 그도 그럴
'좋은 언론'과 '좋아하는 언론' 사이
수습기간을 막 지난 졸업생이 찾아와 공들인 기사와 트래픽이 터질 기사 사이에서 무엇을 써야할지 매일 고민한다고 하소연했다. 며칠씩 발품 팔아 취재한 기사의 조회수는 낮은데, 이슈가 되고 있는 사안을 제목 일부 바꾸고 조금 살붙여 기사를 쓰면 트래픽이 터질 것을 아는 상황에서, 많이 읽을 기사를 쓰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 신입 기자의 고민은 그만의 것이 아니다. 한 가족의 비극인 것은 분명하지만, 한강 대학생 사건이 그다지도 자주 기사가 된 이유를 기자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다.공들인 기사와 트래픽이 터지는 기사 사이에서의
워싱턴포스트를 보며…
매일 신문을 보면서 주목할 기사에 형광펜을 긋는다. 그런데 지난5월13일치4매정도짧은기사에형광펜노란색이가득했다.워싱턴포스트의첫여성편집국장기사(중앙일보 김선미 기자)였다. 눈길이머문곳이많았다.1.1월말부터새편집국장을물색했다: 5월11일발표했다. 국장찾기에석달이상을들였다.한국언론사들은 암묵적으로정해놓기도하지만,때론1~2주일만에후닥닥해치우는경우도많다.비교됐다.2.샐리버즈비(55)신임워싱턴포스트편집국장은직전까지 AP통신편집국장이었다:우리와는채용시스템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지만, 다른언론사현직국장도 후보로 둔다는 게 인상적이었다.3.버즈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