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싫어하는 말을 할 수 있는 권리
공영방송(公營放送)의 사전적 정의는 공공의 복지를 위하여 행하는 방송으로 국가나 특정 집단의 간섭을 막고 사회 각층을 대표하여 편집 편성권의 자율성을 보장하고자 독립된 운영을 하는 방송을 의미한다. 영어로는 Public broadcasting이라 하는데, 유독 한국에서는 이 개념을 공영이라 하여 공적으로 경영[公營]한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민주주의, 경제 같은 개념들이 일본의 근대를 거치며 한국에 정착된 개념이란 사실을 안다면, 한국에서 공영방송 또한 일본식으로 공공방송이라 쓰거나 해외처럼 공공 서비스 방송 또는 공적 서비스 방송이
돌고 돌아서 다시 징벌적 배상제라니
22대 국회가 문을 열자마자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법안이 제출됐다.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언론의 악의적인 보도로 인격권이 침해되면 손해배상금을 실제 손해의 3배까지 책정할 수 있도록 하고, 정정이나 반론, 추후보도를 원 보도와 같은 지면에 같은 분량으로 게재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 들어갔다. 6개월로 되어 있는 언론중재법에 따른 소송 제기 기간을 2년으로 늘리는 내용도 있다.몇 가지 기본적인 사항부터 짚어본다. 언론에 대한 소송에서 원고승소율이 낮다는 자료를 제시했는데, 승소율 낮은 것이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연금개혁으로 돌아보는 언론의 역할
일간지 현장 기자였던 2016년에 남몰래 추진하던 출판 프로젝트가 있었다. 회사에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출판사를 섭외했다. 출간 시기는 2017년 중반으로 계획했다. 책의 내용은 박근혜 정부의 공약이 대부분 지켜지지 않았다는 빼곡한 취재이자, 정책 검증이었다. 대선을 앞두고 출간되면 자연스레 화제를 모으고, 정책 보도의 중요성을 환기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현실은 달랐다. 갑작스런 탄핵 정국으로 조속히 원고를 마무리하지 않으면 출판을 접겠다는 출판사의 경고를 받았고, 부랴부랴 원고를 마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서 탄
권력과 그 주변인들
1783년 당시 프로이센에서 계몽운동을 대변하던 베를린 월보를 통해 계몽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이 제기됐다. 이듬해 이 잡지에 자주 기고하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가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이란 글을 게재했다. 칸트는 계몽이란 다른 사람의 안내 없이는 자신이 이해한 바를 쓰지 못하는 미성숙에서 벗어나는 일이라고 답한다. 칸트는 당시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이 자기 삶에서, 더하여 공동체의 삶에서 중요한 사안에 관한 판단을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거나 미루고 있다고 보았다. 만약 그 판단의 대상이 공공의 일이라면 정치 엘리트들에게 의존하는
윤석열 대통령에 비해 기자들의 준비는 부족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이 끝났다. 그리고 기자들의 자질 문제가 거론됐다. 당연한 일이다. 윤 대통령은 410총선 참패에도 국정 전환은 없다고 여러 차례 공언해 왔다. 기자회견을 통해 윤 대통령이 달라진 모습을 보여 줄 거란 국민의 기대는 애초부터 없었다. 반면 언론은 달랐다. 보수언론들마저 윤 대통령을 향해 기자회견을 주문해 왔다. 21개월 만에 기자들의 질문을 받게 된 대통령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기자들의 행보는 다른 때보다 주목받을 수밖에 없던 행사였다. 하지만 기자들의 질문은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이…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잘못된 갈등 구도와 언론의 책임
4월24일, 반복적으로 폐지 논란에 시달리던 충남학생인권조례가 최종 폐지됐다. 26일에는 서울시의회가 인권권익향상 특별위원회와 본회의에서 각각 서울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의결했다. 우리 언론은 이를 보도하면서 갈등 구도를 통해 이 사안을 설명하는 경향을 보였다. 먼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갈등을 부각하고 있다. 사실 정치인의 말이 가장 중요한 보도 출처가 되는 현재의 언론 환경에서 주요 정치인의 논평이 있다면 보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당 간 갈등 구도를 부각할 경우 이 조례가 무엇을 위한 것이고 어떤 것을 보호하
펜 기자와 인공지능 글쓰기
누군가 직업이 무엇인지 물어볼 때 학생 가르치는 일을 합니다라든지 연구하는 사람입니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가끔 글 쓰는 사람입니다라고 이야기하는 때도 있다. 자신의 직업 정체성을 명확하게 이야기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가끔 직업에 관한 정체성을 고민할 때 더 뉴요커(The New Yorker) 저널리스트 애보트 조셉 리블링(Abbott Joseph Liebling)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그는 글을 더 잘 쓰는 사람보다 더 빨리 쓸 수 있고, 더 빨리 쓰는 사람보다 더 잘 쓸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실력에 자
당신은 이번 선거에서 쓸 만한 질문을 던졌는가
선거가 끝났다. 선거를 앞두고 신문사나 방송사는 총선 보도를 위해 부서를 개편하고, 인력을 확충하며 불철주야 노고를 아끼지 않는다. 선거가 끝나면 회식을 하고 휴가도 보내준다. 언론인 여러분, 고생 많으셨다.선거 직후에 읽은 여러 칼럼 중 기후운동가 김현우 선생이 올린 모두 텃밭으로 가자라는 글이 와 닿았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칼럼을 공유하며 당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린 코멘트가 마음에 들었다. 좋은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은 밭을 원망하는 말이다. 그렇다고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고 하기엔 너무 쉬운 이야기고. 어쨌든 총
드디어 총선 끝… 언론 제도 밑그림부터 새로 그려야
이제 확성기 소리는 끝났다. 하지만 정치권의 승패와 상관없이 언론의 몰골은 말이 아니다. 현직에서 적절한 유예기간을 두지 않고 바로 정치권으로 넘어가는 문제는 여야 모두에서 반복됐다. 비판 보도를 향해 징벌적 손해배상제 주장으로 맞서는 것도 낯익은 모습이다. 선거방송심의위원회까지 총선 기간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며 논란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이번 선거방송심의위가 내린 결정들은 앞으로 법적 평가는 물론 끊임없이 공론장에 불려 나와 평가받을 것이다. 심의 과정에서 나온 위원들의 발언들도 마찬가지다. 비판을 무릅쓰고 그런 선거방송심의위를…
공천 파동과 언론의 책임
제22대 총선 뉴스에서 가장 많이 접한 단어는 아무래도 공천이 아닐까 싶다. 윤석열 대통령의 875원 대파 발언 이전까지 양대 정당의 뉴스들은 온통 당내 주류와 비주류, 혹은 대통령과 한동훈 비대위원장 간의 공천 갈등으로 뒤덮였다. 선거를 불과 일주일여 앞둔 시기까지도 공천된 주요 인사들의 비위에 관한 보도가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결국 공천이 선거 보도의 시작과 끝인 셈이다.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인 빅카인즈에서 검색어 공천이 들어간 기사가 2024년 3만2209건(4월1일 현재)에 달하고, 공약 2만1258건보다도 1만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