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내기 기자들의 어리바리한 얘기 담았어요”
시작은 최규화 기자였다. 편집부 후배인 김지현 기자가 그의 꼬임에 넘어갔고 취재부에서 일하던 이현진, 이주영 기자가 최종적으로 영입됐다. 부서도, 성별도 다른 네 명의 기자가 모인 이유는 글이었다. 남의 이야기 말고 우리 이야기, 풋내기 기자이자 어리바리한 사회 초년생들이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들을 솔직히 써보자는 생각에서였다. 2012년 5월5일, 오마이뉴스 기자 4명은 상암동 근처 순대국집에서 1차를 끝내고 2차로 간 조개구이집에서 개불과 소주를 앞에 두고 의기투합했다. 팀명은 난지도 파소도블레. “오마이뉴스가 자리한 상암
내일신문 변호사 출신 기자 3인방의 각오
“변호사가 기자 명함을 갖게 됐다고 전혀 다른 분야로 전직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로스쿨의 취지도 여러 분야의 법조인을 양성하는 데 있죠. 활동적이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사무실에 앉아 의뢰인을 맞이하고 서류를 보는 일이 답답했다. 그 찰나 ‘기자’라는 기회가 찾아왔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인 내일신문 신동화·송은경·장윤정 기자는 이제 언론인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다.내일신문은 법조 전문기자를 양성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변호사를 기자로 채용하고 있다. 전문기자의 고품질 기사를 통해 언론 산업의 위기를 벗어나겠다는…
“축구가 좋아서 자격증까지…심판 존중 문화 만들어졌으면”
유치원 때부터 축구를 좋아했다. 축구경기를 보는 것도, 직접 축구를 하는 것도 좋아했다. 한 학년에 두 반 밖에 없는 충남 서산의 작은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다른 학교와 정기전 비슷한 축구경기를 만들어 공을 차곤 했다. 그 열정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도 이어졌다. 붉은악마 충남 서북부 지회장을 맡아 응원을 이끌며 축구에 대한 열정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바로 김형준 한국일보 기자의 얘기다.그러나 그에겐 항상 거슬리는 구석이 있었다. “대한민국이 또 애매한 판정에 졌다”며 심판 탓을 하는 해설진들이었다. ‘애매한 판정’이란 단어
“자연과 어우러진 전원생활, 함께 해보실래요?”
“당신은 여기서 사는 게 행복해?”아내의 한마디가 기억 속에 잠자고 있던 ‘옛 꿈’을 끄집어냈다.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전셋값을 내며 아파트에서 사는 것보다 여유로운 전원주택 생활을 누리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경향신문 김정근 사진부 기자(부장)가 연재하고 있는 ‘전셋값 3억으로 내 집 마련 ‘6개월 작전’’시리즈는 이 한마디로 시작됐다.그는 걸어서 15분이면 출퇴근이 가능한 편리함의 중독에서 벗어나 전원생활의 꿈을 좇기로 했다. “전원주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돈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인터넷도 살펴봤지만
“선택과 집중·부서 협업 극대화…차별화된 콘텐츠로 승부수”
지난달 30일 취임한 김창균 조선일보 신임 편집국장은 편집국의 새 ‘선장’으로서 종이신문 앞에 놓인 높은 파고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김 국장은 선택과 집중 등을 통해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의 격랑을 헤쳐나간다는 구상이다.김 국장은 지난 8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신문 시장 안에선 자신감을 가질 수도 있지만 미디어 시장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조선일보의 위치도 안심할 수 없다”며 “전체 미디어 시장 안에서 조선일보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확고한 위치를 지킬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면서 지면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조선
“전통 언론 따라가기보다 우리만의 특별함 내세우겠다”
“새로운 출발선에 선 기분입니다. 언론환경의 거센 변화 속에서 15년을 달려왔는데 더 부지런히 바퀴를 돌리지 않으면 앞서나갈 수 없습니다. 이제 지향점이 분명한 언론으로 나아가야죠.”이데일리가 창간 15주년을 맞았다. 창간기념일(10월5일)을 며칠 앞두고 만난 남궁덕 이데일리 편집보도국장의 표정엔 자신감이 묻어났다. “벤처 러시시대에 출범한 이데일리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적용해 속보를 내보냈습니다. 온라인 언론환경의 선두주자였죠. 8년 전엔 케이블방송 이데일리TV를 시작했고 3년 전부터는 오프라인 신문도 발행하고 있어
“데이터 저널리즘, 액셀부터 시작하세요”
“선·후배 기자들한테 항상 얘기하는 게 액셀부터 시작하라는 말이에요.”김태형 KBS 데이터 저널리즘 팀 기자가 공개한 데이터 저널리즘의 ‘비기(秘器)’는 단출했다. 가장 기초적인 툴을 다루는 것부터 시작하다보면 조금씩 좋아진다는 얘기였다. 싱거웠다. 일부러 감추고 안 가르쳐 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올해 1월 아시아 탐사보도 총회에 다녀온 그가 방송기자연합회 게시판에 남긴 참관기를 보니 탐사보도 총회 프로그램 중 하나에 당당히 액셀이 포함돼 있는 것 아닌가. 액셀을 배우면 퓨전 테이블,
“초보 엄마들과 육아 어려움 공유했죠”
육아가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저출산 극복과 보육정책 강화를 운운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출산의 고통만 견디면 될 것 같았다. 기자가 되고 1년여 후, 가족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날 때까지도 육아가 두렵진 않았다. 하지만 막상 아기를 낳고 나니 기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육체적인 고통뿐 아니라 외로움과 서러움이 복받쳤다. 해외로 떠난 가족들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너무나 사랑하는 아이와 함께 있지만, 점점 내 자신을 잃어가는 모습이 한없이 슬펐다. 1년3개월간의 출산·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한 그는 육아일기를 연재하기 시작
“경향신문만의 콘텐츠 누구나 어디서든 찾게 하고 싶어”
경영이유로 처우개선 회피 안해자리에 적합한 사람 쓰는 게 원칙쓰고 싶은 것 마음껏 쓰는 신문편집권 관여는 앞으로도 없을 것콘텐츠·조직·시스템 혁신안 준비직원 직무분석 끝나면 곧바로 실천독립언론 위해서도 경영안정 중요전시사업 등 안정적 수익방안 구상인터뷰 시간이 충분치 않아서 약속 장소에 조금 일찍 도착했다. 회의가 끝나면 곧바로 인터뷰할 요량이었다. 웬걸, 회의 참석자들은 좀처럼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오가는 이야기에 귀를 세웠지만 간혹 웃음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결국 임원회의는 시간을 꽉 채우고 말았다. 이동현 사장은 앉자마자 “
“국내 문화 콘텐츠 보존 환경 열악, 80년대 영화도 원본 찾기 힘들어”…
뉴미디어에 자리를 내준 종이신문처럼 한 때 ‘광풍’이 불었던 블로그 역시 역사의 뒤안길에 서 있다. 분명한 것은 블로그가 있었기 때문에 SNS 문화가 확산됐다는 점이다.최연진 한국일보 산업부장은 ‘파워 블로거’로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산증인 중 한 명이다. 그가 2004년부터 영화 등을 소개하는 블로그 ‘달콤한 인생(wolfpack.tistory.com)’을 시작한 이유는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만을 위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다.최연진 부장은 “학창시절부터 ‘주말의 명화’ 등 영화 보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고 지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