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3명으로 시작…100억원 매출 중견 언론사로
헬스조선 임호준 대표는 기자들의 ‘인생 이모작’ 모범사례로 손꼽힌다. 직원 3명으로 2006년 창간한 헬스조선은 이제 매출 100억원대 직원 수 70여명에 달하는 기업으로 우뚝 성장하며 신문의 신규 수익구조 창출의 대표적인 모델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임 대표는 지난 1991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1995년부터 건강-의학전문기자로 일하다 2006년 헬스조선을 창간하면서 자리를 옮겼다. 만 7년5개월째 대표로 일하고 있다. 헬스조선 창간은 수익다각화와 더불어 임 대표 본인의 도전 차원에서 시작됐다. “
“분열과 대립 끝내는 통합의 역사를 위해”
1986년 대학에 입학했을 때 세상은 그가 몰랐던 역사로 가득했다. 학우들의 분신자살사건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핏빛으로 물든 5월 광주를 보며 역사에 절망했다. 단일 사건으로는 건국 이래 최대인 1288명이 구속된 ‘10·28 건대 항쟁’에도 연루돼 의정부교도소에 수감됐다. 대학생활과 사회부 기자 초년병 시절 그의 머릿속에는 이런 실존적 고민이 지배했다. 그런 그에게 1991년 김지하 시인의 ‘죽음의 굿판을 걷어 치워라’라는 외침은 생소함을 넘어 “이해불가&rdqu
“기자 사명에 큰 책임감…사회고발 보도가 꿈”
처음 기자가 되겠다고 했을 때 세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한번 튀어 보려고 조선일보 시험 보냐”는 비아냥거림도 들었다. 소속사에서조차 그의 도전을 말릴 정도였다. 그러나 그의 가슴 속에 ‘기자 조정린’에 대한 꿈은 서서히 자라나고 있었다. 조선일보 필기시험 탈락, 이후 TV조선 인턴기자 2개월, 그리고 지난해 9월 TV조선 수습공채 기자 입사로 결국 꿈은 이루어졌다.그는 제법 촉망받는 연예인이었다. 조 기자는 2002년 ‘팔도모창가수왕’으로 연예계에 데뷔해 MBC…
“언론 역사는 언론인들의 정신적 지주”
“나는 죽을지라도 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동포를 구하라.”37살의 영국인 배설은 머나먼 이국땅에서 짧은 생을 마치며 이 한마디를 남겼다. 마지막 유언을 통해 그가 왜 한국에서 신문을, 구한말 항일언론으로 일컬어지는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일제 치하라는 엄혹한 시절에 ‘신문’이야말로 한국을 구할 수 있다는 유일한 매체라는 외침이다.한국 언론역사 연구의 대표 학자로 꼽히는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가 ‘대한매일신보와 배설’을 출간했다. 지난 1987년 발간
“일방적 리드도, 지나친 의존도 하지 않겠다”
영화 ‘여인의 향기’의 명장면을 떠올려보자. 자살을 결심한 맹인 퇴역 장교 프랭크 슬레드(알 파치노)는 묘령의 여인 도나(가브리엘 앤워)와 탱고를 춘다. 부드러운 현악의 선율에 남녀가 손을 맞대고 서로 밀고 당기는 스텝과 회전은 상대에 대한 신뢰와 호흡, 그리고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동아일보 첫 여성 노조위원장인 이지은 기자는 ‘두 개의 심장과 세 다리로 추는 춤’이라는 표현으로 출사표를 던졌다.“탱고는 언뜻 보면 남녀가 알파벳 A처럼 서로 기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역동적 ‘맨 파워’가 아시아경제의 힘”
아시아경제신문이 새로운 출발선상에 섰다. 지난 2011년 대주주의 무리한 사업 확장 등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어온 아시아경제는 지난해 9개월간 법정관리를 받는 등 수많은 굴곡을 지나왔다. 하지만 지난 1월 방송송출 서비스 회사인 KMH에 인수되면서 돌파구를 마련했다. 최근에는 유상증자로 부채를 정리하는 등 경영 정상화에 힘쓰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지난 2월 새롭게 선임된 박종인 편집국장은 “(앞으로가) 기대되면서도 어깨가 무겁다”고 밝혔다.박 국장은 취임 첫날부터 기자들에게 ‘차별화’를…
“온·오프 구분 없애야 진정한 뉴스룸 통합”
“우리가 생산하는 것은 매체가 아니라 ‘콘텐츠’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온·오프라인의 통합 역시 콘텐츠의 통합이다.”지난 22일로 취임 한 달이 지난 한겨레 유강문 편집국장의 고민은 ‘콘텐츠’에서 출발한다. 지면 개편이라는 말 대신 ‘콘텐츠의 혁신’이라 일컫는다. 그는 “어떤 콘텐츠를 만들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에서부터 한겨레의 변화를 찾는다.이미 모든 신문들이 절감하는 신문의 위기를 타개할 방책도 콘텐츠에
‘임신 중 암 발병’ 불행을 축복으로 바꾸다
“가슴에 ‘C’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세상으로 나아간다. 암 환자였다는 낙인이다. 그래도 나는 그 ‘C’를 ‘Cancer’ 대신 ‘Can’으로 바꿔 생각하려 한다. 살아남았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축복이니까.”한국경제신문 이미아 기자가 이 달 ‘엄마는 행복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를 출간했다. 암 환자로 지냈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이 기자는 올해 2월 투병생활을 마치고 회사에 복직했다. 2010년 9월…
“보수·진보 아우르는 유연성으로 신문위기 돌파”
“신문 콘텐츠의 유료화, 신문과 방송의 미디어 융합 뉴스룸 완성. 이 두 가지 과제가 우리 앞에 엄중하게 놓여있다.”강효상 조선일보 편집국장은 지난달 27일 신임 편집국장으로 취임한 데 대해 “중압감을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조선일보가 종합일간지 가운데 유일하게 유가부수 100만을 넘는 1위(135만부, 2011년 ABC 자료)를 기록하고 있지만, 신문의 쇠락 현상에서 조선일보도 예외일 수는 없다.강 국장은 “뉴욕타임스나 월스트리트저널은 온라인을 통한 유료콘텐츠 사업이 성공을
‘무너진 공정방송’ 절규하던 그 기자…진정한 독립언론 꿈꾼다
프랑스 68혁명의 상징인 파리의 도심 바리케이드 뒤의 키스하는 연인처럼, 베트남전의 상징인 네이팜탄의 굉음에 울부짖는 소녀처럼, 한국 언론사의 역사적 상처인 YTN사태에도 모든 이의 가슴에 문신으로 남아있는 상징이 있다.“방송 잘 하자고, 제대로 뉴스해보자고 한 게 이런 겁니까. 제 젊음을 바쳤습니다. 이 회사에….”2008년 7월17일 열린 YTN 임시 주주총회. 구성원들이 한사코 반대했던 대통령 후보 특보 출신 사장이 둔탁한 의사봉 소리와 함께 탄생하던 날. 최기훈 기자는 흐느끼며 단상의 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