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 대신 언론에 맥주 권하는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419혁명 기념사는 놀라웠다. 그 일부를 그대로 옮기자면 허위선동, 가짜뉴스, 협박, 폭력 선동, 이런 것들이 진실과 자유로운 여론 형성에 기반해야 하는 민주적 의사결정 시스템을 왜곡하고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거짓 선동과 날조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이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행세를 한다면 이런 거짓과 위장에 속아서는 안 된다는 당부까지 덧붙였다.이는 탈진실의 시대 중 병리적 증상 중 하나로, 탈진실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나 세력이 자신에게 비판적인 세력을 오히려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이는 현상이
인공지능 학습을 위한 뉴스의 가격
브로콜리는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굳이 내 돈을 주고 사고 싶지는 않다. 뉴스도 브로콜리와 같다. 과거에는 뉴스 기사를 단품으로 구매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모든 독자는 신문이라는 코스 요리를 주문했고 브로콜리가 포함된 요리도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 이후 다양한 단품 요리가 등장했다. 정치인의 유튜브, 독서토론 팟캐스트, 연예인의 인스타그램 같은 단품 요리에 익숙해진 소비자가 보기에 언론사의 코스 요리는 너무 비쌌다. 언론사는 더 이상 코스 요리를 판매할 수 없게 되면서 수익이
언론사 포괄임금제의 진짜 문제점
하긴 이렇게 질문하는 저도 포괄임금제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네요.포괄임금제에 대해 취재하고자 전화로 인터뷰를 요청한 기자가 통화를 마무리하며 건넨 말이다. 20분가량 이 제도에 대한 문답 과정에서 포괄임금제가 정말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했지만 정작 본인도 이 제도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는, 자조적인 목소리다.정부의 노동시간 개악을 둘러싼 핵심 쟁점 중 하나인 포괄임금제는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사업장에서 사용자의 임금 계산 편의를 위해 법이 아닌 대법원 판례를 통해 허용되기 시작한 편법적인 제도다. 연장, 휴일 근로 등이
기후정의와 언론
벌써 여름이 왔나 싶다가도 얼마 못 가 외투를 집어 든다.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 한파, 폭우 등으로 우리는 전에 없던 생소한 경험을 하며 살아간다. 사회의 변화와 현상에 늘 촉수를 세우고 있는 기자들은 기후 문제가 심상치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기후는 사람을 죽이고 살린다. 2017년 수습기자 시절, 연이은 폭염으로 거리에서 폐지 줍던 어르신이 길가에 쓰러져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그때는 지병이나 연령 같은 개인의 특성을 알아보는 데 집중했다.안타깝게도 그 사건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번에는 비닐하우스에서…
'좋은' 언론규제법은 없다
기원전 59년경에 로마제국 원로원에서 악타 디우르나(acta diurna)를 처음 발행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실물이 없어 기록으로만 추론하지만, 처음엔 벽보이다가 차츰 문서로 발행되었다 한다. 그때로부터 대략 2080여년이 지났으니 신문의 역사는 정말 오래다.초창기 관보인 악타 디우르나에는 원로원 결정사항과 황제 근황을 실었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시민을 위해서 광장에서 읽어 주기도 했다. 그러나 차츰 원로원보다 황제의 권위가 커지면서 관보에는 황제를 옹호하고 민심을 현혹하는 허위정보와 선전 글귀가 가득해졌다. 다행히 시장에서는
불가피한 오보, 피했어야 할 오보
모든 권리는 어느 정도 남용될 수밖에 없으며 표현의 자유는 특히 그러하다. 미국 헌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임스 매디슨의 말이다. 틀린 말을 너무 강하게 통제하려 들면 표현의 자유가 본질적으로 침해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언론에 오보 책임을 물을 때도 무조건 사실과 다른 보도를 했다고 책임을 묻지는 않는다.한국에서도 일정한 경우 언론의 오보 책임을 면제해주는 원칙이 확립돼 있다. 언론이 사실이라고 믿었고 그렇게 믿은 데에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오보가 나도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다. 상당한 이유를 인정받으려면 보도가 일정 수준 이
조정훈이 던진 '월 100만원 가사도우미'란 어그로
미래에도 유지될 언론의 핵심 경쟁력은 무엇일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누군가 감추고자 하는 문제를 드러내는 역할이다. 챗GPT가 개발되는 과정에서 유해 콘텐츠를 걸러내는 작업을 케냐의 노동자들이 시급 2달러도 되지 않는 급여로 수행했고, 그들이 이 일을 하면서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했으며 심리적 트라우마에 시달린다는 타임지의 보도가 올해 초 나왔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고도화되어도 은폐된 진실을 밝혀내기는 어렵고, 중이 제 머리는 더욱 못 깎는다. 힘을 가진 자에 대한 견제는 미래에도 언론의 몫이다.또 다른 핵심 경쟁력
익명 보도, 언론이 '카더라 통신'이 되는 순간
지난 3월7일 데일리안은 제목에 단독을 달고 서울시 관계자를 인터뷰한 기사를 내보냈다. ([단독] 서울시 행정갑질? 표적수사? 시비 지원사업 관리감독 당연다음주 공공일자리 실사) 탈시설 관련 정책 사업에 대한 서울시의 갑작스러운 감사에 전장연이 표적수사라며 반발하자,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를 익명으로 인터뷰한 것이다. (관련 기사 : 서울시, 전장연 압박하며 탈시설 조이기 본격화)탈시설은 중증장애인이 수용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과 평등하게 살아가는 정책을 말한다. 비장애인은 태어날 때부터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삶이 자연스
정의 없는 전환
어떤 정치공동체 내에서, 혹은 서로 다른 정치공동체 간에 아주 중대하고도 심각한 인권 위반의 유산이 내려온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정치학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분야를 전환적 정의(transitional justice)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2차 대전의 사례로 본다면 독일과 유대인 공동체 간에 관계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전환적 정의를 이해할 때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이런 정의가 요구되는 이유인데, 바로 중대하고도 심각한 인권 위반에 대한 치유 때문이란 점이다. 관련 연구자 모두가 동의하는 일치점이 있다면, 전환적 정의
저널리즘 집어삼키는 인공지능
새로운 인공지능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달 버즈피드(Buzzfeed)의 최고경영자 조나 페레티(Jonah Peretti)는 인공지능이 언론사의 편집과 경영에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버즈피드는 오픈에이아이(OpenAI) 기술 기반 인공지능으로 독자를 위한 개인화된 퀴즈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저널리즘에서 활용방식을 탐색하던 세마포(Semafor)의 기자는 인간이 작성한 기사의 비문과 오타를 점검해달라는 요청에 수정사항과 이유를 제시하는 인공지능이 무난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