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대중지를 허하라
우리나라 신문의 이상한 점은 모두가 권위지를 표방한다는 것이다. 대중지라는 타이틀을 기꺼워하지는 않더라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한데, 도대체가 모두가 정론지(正論紙)요 ‘최고의 신문’이다. 영국의 경우, 다양한 권위지와 중급지, 대중지들이 매일매일 천만이 넘는 독자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영국의 중급지와 대중지는 자기네 신문이 그렇게 분류되는 것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신문 시장의 세분화는 다양한 독자들을 신문이라는 매체로 끌어들이는 효과적 유인으로 기능한다. 물론 우리에겐 스포츠신문이 있었다. 그러
“무엇이 됐다”는 뉴스의 시대착오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1960~70년대 공항출입 기자를 경험했던 한 선배가 생전에 식사자리에서 구수하게 들려주던 공항 특종 무용담이 생각난다. 당시 공항 출입 기자들은 국내에서 보기 힘든 특이한 외모의 외국인의 입국을 먼저 보도하기 위해 특종 아닌 특종 경쟁을 했다는 것이다. 무려 2미터가 넘는 벽안(碧眼)의 서양신사 모씨가 오늘 오후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다는 식의 기사들이 당시 공항출입 기자들의 단골 특종기사가 됐다는 얘기. 요즘의 공항출입 기자의 특종은 어떤 것일까. 오랜 세월에 걸쳐 국제공항을 통해 입국 또는 출국하는 사람들
인터넷시대의 방송, 존재의 가벼움
방송은 라디오시대 때나 TV시대 때나 매스미디어로서의 대중조작의 위험성으로 인해 항상 우려와 경계의 대상이 되어 왔다. 소수의 정보공급자에 의해 대다수 대중이 이를 일방적으로 수용하게 되는 구조와 행태는 소위 게이터키퍼인 방송에 의해 여론이나 대중문화가 좌지우지되는 것을 막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만큼 까다로운 규제나 가치척도가 방송부문에 적용되어 왔다. 2007년 상황은 어떠한가? 이번에 아프칸 인질사태와 학력파동을 다루는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전자의 경우, 초기의 정부의 어설픈 대응만큼이나 방송의 대응도 어
“우리 도와준 언론이 어디 있어?”
한나라당 경선이 끝난 후 이명박 대선후보의 최측근인 이재오 최고위원은 22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우리를 도와준 언론이 어디 있습니까. 유독 특정언론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려고 하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구요”라고 했다. 또 한 패널이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줄서기 비슷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하자 “몇몇 언론은 줄서기가 아니라 줄서놓은 걸 깨버렸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한 미디어 비평매체는 “일부 언론들이 위장전입에 대해서는 “경선 후보를 사
아프간 테러와 언론의 국익 보도
아프가니스탄 한인 피랍 및 피살 사건은 21세기 세계화 시대를 사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충격과 우려와 당황, 절망, 분노와 같은 복잡 미묘한 감정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이를 보도하는 우리 언론 또한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 불만족스럽고 혼돈스럽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번 사건과 관련한 우리 언론 보도는 우선 신속-정확-사실 보도를 해야한다는 강박은 있으되 그럴 만한 능력이 안돼 답답했다. 언론은 또한 언론보도가 어찌됐든 피랍자 조기 석방에 도움을 줘야할 터인데, 정작 지금과 같은 보도방식이 인질 문제 해결에 어떤…
한국신문과 일본신문
얼마 전 일본의 주요일간지를 인터뷰하기 위해 도쿄에 다녀왔다. 요즘 엔화 가치가 떨어져서 너도나도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고 하는데, 그런 한가롭고 팔자 좋은 여행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어쨌든 나 역시 도쿄 물가에 그다지 마음 졸이지 않고 지낼 수가 있었다. 90년대 초반, 도쿄에 살았던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이 새로운 상황이 못내 신기하기조차 했다. 일본의 톱 3를 차지하고 있는 요미우리, 아사히, 마이니치 등을 인터뷰하러 가면서도 별로 주눅이 들지 않았다. 한결같이 인터뷰 일정을 잡기가 매우 까다로웠기에, 도쿄을 향하면서 인터
언론과 포털은 적인가
포털사이트 뉴스 서비스가 수 년간 한국언론을 좌우하면서 축적된 두 쟁점은 언론의 자생력과 포털의 영향력에 대한 이슈이다. 우선 언론사가 생산하는 콘텐츠는 시장과 이용자들로부터 각별한 가치를 갖는가 아니면 차별성없는 진부한 스토리로만 채워지고 있는가 등 언론과 그 콘텐츠의 경쟁력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멀티미디어 서비스 환경으로 전환하고 있는 미디어 시장에서 특히 신문기업은 사활을 건 몸부림을 치고 있지만 정작 콘텐츠의 질은 답보상태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포털사업자들이 언론사 콘텐츠의 수준을 고민하는 아이러니도 연출되고 있다.…
대통령과 언론 ‘위선의 미덕’도 없었다
세계 최대의 격년제 현대미술 축제인 베니스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올해 주제는 ‘감각으로 생각하기-정신으로 느끼기’라고 한다. 감각과 정신의 고유의 영역을 교차해서 엮어 놓은 개념이 흥미롭다. 따지고 보면 마음으로 생각하고 머리로 느끼는 현상은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요즘 후보 검증 문제로 시끄러운 대선 상황에서 유권자들이 특정 후보지지 과정에서도 마음으로 생각하기 현상이 발동된다. 즐겁고 희망찬 감정을 유발하는 후보는 이념이나 정책적 지지도 쉽게 이끌어 내지만, 권태나 혐오, 불안감을 일으키는 후보
100년만에 처음 오는 기회
최근 한국 언론은 좌절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문제, 한나라당 대선주자 검증문제, 범여권통합문제, 교육부와 대학의 대치문제 등에 관한 새 소식을 전하는데 바쁘다. ‘신문’이 새 소식을 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언론’의 입장에서는 지난 것이라도 보다 본질적인 것은 가끔 다시 천착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7월을 맞아 북한에서는 7·4 공동성명 3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는데 남한에서는 그런 행사가 없었으며 언론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7·4공동성명은 치열
기자님과 기자놈
이십수년 전, 내가 고민 끝에 신문방송학과를 가겠다고 하자 아버지가 말렸다. 기자는 좋은 직업이 못된다는 것이었다. 기자가 되기보다는 언론에 대해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어쨌든 ‘기자놈들’과 가까이 해서 별로 좋을 게 없다고 탐탁지 않아 하셨다. 아무도 바깥세상에 대해 속시원히 말해주지 않던 시절, 신문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어른들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었던 내게 기자란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고 어느 정도의 자기희생이 따라야 하는 무척이나 중요한, 그렇기에 충분히 존경할 만한 그런 직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