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시기의 한국언론
선거가 다가오면 마음이 무겁다. 평소에도 ‘정치 드라마’ 기사들을 높은 비중으로 쏟아내는 언론들이, 더욱 극성스럽게 선거에 목을 맬 것이라는 게 예상되기 때문이다. 2년 주기로 대선, 총선, 지방선거가 되풀이되는 한국 사회에서 선거 시기마다 뜨겁게 달궈지는 이슈들은 각 정당과 정치인들의 행보를 둘러싼 것이다. 국민들은 언론의 보도를 통해 정당정치판이 어떻게 재편되는지, 후보자들의 지지도를 비롯해 정치인들 주위로 어떤 사건들이 일어나는지 연속드라마를 보듯 지켜본다. 선거는 물론 중대한 사안이다. 그러나 선거 시기
후보검증의 주체
대통령 선거전이 갈수록 치열해 지고 있다. 한나라당 내 후보간 검증 논쟁은 과거 선거에서 보기 힘든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경쟁 당이 아닌 같은 당 후보들에 의해 상호 네거티브 이슈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명분상으로는 도덕성 검증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랫동안 그리고 전략적으로 준비된 한나라당 두 후보진영의 캠페인 전략으로 보인다.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여론 지지도에서 선두를 달리던 이명박 전 시장의 지지율이 다소 하락했다고 한다. 비에 맞으면 옷이 젖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한나라당 후보
‘독재자의 딸’이 한국의 지도자 될 수 있나?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일 참여정부평가포럼에서 한나라당 집권가능성을 우려하고 그 당의 대선주자들을 공박했는데 중앙선관위는 7일 이를 공무원의 중립의무를 규정한 선거법을 위반한 것으로 결론짓고 대통령에게 중립의무 준수를 요청했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선거법 제9조의 모호성과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자기발언의 정당성을 주장함과 아울러 수구세력과 보수언론이 민주개혁을 방해하고 있다고 계속 몰아붙이고 있다. 노대통령은 직설적 언사로 자주 구설수에 오르고 있으며 그 덕에 참여정부의 인기는 바닥을 치고 있다. 이번에도 그는 법을 거스르지 않고도 그
장애인의 자존심 꺾는 언론
6월1일 인터넷언론네트워크가 주관한 “사회적 소수자와 대안미디어의 역할” 정책워크숍에 참석해서 ‘소수자를 위한 저널리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태곤 함께걸음 편집장은 장애인 미디어가 봉착한 어려움들에 대해 설명했다. 함께걸음은 1988년 창간한 월간지로 최근에는 인터넷 매체로도 접할 수 있게 됐다. 이외에도 장애인 미디어는 인터넷 신문 에이블뉴스와 위드뉴스, 주간 장애인복지신문, 장애인신문과 부정기적으로 발행되는 저항하라, 보이스 등 인쇄매체가 있다. 방송은
‘기자실통폐합’ 선한 의지인가?
‘기득권 집단의 권력 해체’로 요약되는 참여정부의 개혁전선은 우리사회의 거의 모든 전문직 영역과 경제적 기득권 계층에 걸쳐 있다. 이런 국정 전략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 이론적 토대는 인터넷과 같은 상호작용적 커뮤니케이션 기술에서 기대되는 ‘정치 매개집단의 약화론’에 있는 것 같다. 대중매체 시대에는 정치 전문가나 이익집단, 그리고 엘리트들이 정치커뮤니케이션의 자원을 장악하고 있다. 그렇기에 대의제 민주주의체제에서 대통령의 선출은 국민투표로 이루어지지만, 임기 중에는 국회와 정치
5·16의 참뜻 - 산업화인가 반통일인가?
최근 한국의 학계와 언론에서는 4·19와 5·18은 민주화를 이루었고 5·16은 산업화를 가져왔다는 논리가 통용되고 있다. 4·19나 5·18이 민주화를 촉진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5·16의 덕으로 산업화가 됐다는 것은 잘못된 말이다. 우선 5·16 군사반란 주역들의 소위 ‘혁명공약’자체가 민생고를 해결하고 자주경제를 재건하겠다는 정도의 목표를 세웠지 외자도입으로 산업화를 이룬다는 거창한 꿈은 꾸지도 않았다. 그들이 뒤집어엎은
특종이란 무엇인가
언론인들에겐 특종에 대한 욕심이 있다. 자신의 보도가 다른 사람들의 보도와 차별화된 가치를 갖게 되길 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언론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사가 특종을 건졌다며 선전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으며, 언론인들 사이에서도 ‘어떤’ 매체의 ‘누구’ 기자가 ‘무슨’ 특종을 냈다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런데 과연 특종이란 무엇인가. 언론사들과 언론인들이 각자의 머리에 담고 있는 특종에 대한 상(想)은 일치하는 것일까. 특종은 언론이 지향하
기사(騎士)와 기자(記者) 사이
function __ffdd_getFrameName() { try { return window.frameElement.tagName; } catch(e) { return e.number&0xFFFF; } return ''; } 얼마 전부터 게으르게 읽고 있는 ‘중세 이야기’라는 책을 보면, 중세 시대 기사(騎士)는 기자(記者)와 비슷한 면이 많았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기사는 칼을 들었고, 기자는 펜을 들었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둘 다 사회적 공명심과 공적 책임과 윤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조승희 사건과 민족주의 논쟁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말이 있다. 버지니아공대에서 32명을 살해하고 자살하는 끔찍한 일을 저지른 범인이 한인 1.5세였다는 보도에 우리 모두는 너무나 놀랐다. 그리고 혹 인종적 보복을 받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도쿄대지진(1923년), 만보산사건(1931년), LA폭동(1992년) 등 해외동포들이 집단학살이나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정부와 국민에게 세 번이나 깊은 조의를 표했다. 또 정부는 조문사절을 보내려했는데 미국의 만류로 그만두었다. 이곳 미주동포들도 여러 곳에서 희
버지니아공대 참사와 언론의 국가주의
버지니아공대 총기참사를 접했을 때, 실로 엄청난 인명피해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한편, 이제는 미국 사회도 총기사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데 사회적 합의를 이룰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한국언론에 비친 이번 사건은 가해자의 국적이 어디냐에 처음부터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그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는 걷잡을 수 없는 국가주의적인 면모를 보여줬다. 주미 대사와 대통령이 나서서 사과에 가까운 발언을 한 것이나, ‘한국인으로서 미안하다’는 여론이 조성된 것이나, 같은 선상에서 볼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