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보도 이래서는 안된다
국내외에서 쏟아지는 북한의 미사일발사 관련뉴스를 보노라면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북한의 미사일발사가 쇼킹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저변에 깔려있는 국제정치, 지정학적 본질을 보지 못하고 들어난 겉 모습만 전달하는 데 급급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일부 언론에서는 목적성이 분명한 일부 외신들을 검증도 하지 않은 채 맹신하며 오히려 확대·왜곡하는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다. 특히 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이해당사자국 앞에서 우리끼리 싸우는 모습만 부추기며 보도, 적전분열 양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북한문제에 대한 뉴스는 국제적 이슈이기
신문을 위한 신문법으로 재개정해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신문법과 언론중재법의 합법성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조선일보사와 동아일보사는 무려 수십건에 달하는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헌재는 고작 3건에 대해서만 위헌 및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특히 헌재는 이번 결정으로 신문법과 언론중재법의 기본 취지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신문사의 경영자료 신고의무 조항(16조)과 신문·방송 겸영을 금지한 조항(15조2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고, 언론사가 고의나 과실이 없어도 정정보도를 하게 하고 보도의 피해자가 아닌 제3자도 시정권고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은 역시 합헌
신문법, 헌재의 역사적 결정을 기대한다
바로 내일이다. 국민의 힘으로 군사정권으로부터 19년 전 6.29선언을 이끌어냈던 날이자 ‘신문법’과 ‘언론중재법’ 일부 조항을 문제 삼아 조선·동아일보 측이 낸 헌법소원에 대하여 헌법재판소가 최종 결정을 하게 될 역사적인 날이다.그동안 헌재 구두변론에서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조항은 몇 가지로 요약 된다. 신문산업의 시장지배적 사업자 기준(1사 30%, 3사 합계 60%)이 공정거래법 기준(1사 50%, 3사 합계 75%)과 비교하여 평등한가, 신문사의 유가부수 광고수입 등 경영 자료를 제출하도록 하는 게 부당한 영업권 제재인가,…
월드컵 보도 이대로는 안된다
언론이 월드컵축구대회의 열기를 주도하고 있다. 공중파 방송은 온통 월드컵 특집 일색이고, 신문도 한국팀 경기 결과를 호외로 낼 정도로 수많은 지면을 월드컵으로 도배하고 있다.이런 쏠림 현상은 다른 나라 언론에 비해 분명히 광적이다. 하지만, 선진국들은 그렇지 않은데 왜 우리만 이렇게 호들갑이냐는 식의 비판엔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 겨레의 공동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은 우리 나름대로의 특성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그럼에도 이 시점에서 우리 언론이 몇 가지 성찰할 점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일보의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한국일보는 한때 한국의 간판 신문이었다. 그런 한국일보가 벌써 10년째 어려움을 겪고 있다.무엇 때문인가. 신문시장의 경쟁격화 등 외부적 요인만으로 돌리는 것은 무리다. 한국일보 대주주인 장씨 일가의 족벌경영과 갈등, 투명하지 못한 경영, 조석간 동시발행 등 경영판단실수로 멍든 것이다. 특히 대주주의 정밀하지 못한 공격적 전횡이 경영부실을 좌초한 측면이 크다. 이 땅의 진실한 저널리스트로서 꿈을 갖고 한국일보에 입사한 많은 기자들 이 한국일보를 떠났다. 최근 3년 사이에만 70명 가까이 떠났다. 복지수준은 갈수록 떨어지고 월급도 제
5·31지방선거가 남긴 것
5·31 지방선거가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유권자들은 정부·여당의 미숙한 국정운영과 갈팡질팡한 정책에 대해 가차없는 심판을 내렸다. 진보·개혁세력에 대한 엄중한 경고의 의미도 담겨 있다.이번 선거를 통해 개혁세력에게 교훈을 주고, 반성하는 계기가 된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번 선거는 결과적으로 몇가지 심각한 문제를 남겼다.첫째, 선거의 성격이 ‘여권에 대한 심판’으로 규정되면서 지방자치 본래의 취지가 무색해졌다. 한나라당은 광역단체장 16명 중 12명, 기초단체장 2백30명 중 무려 1백55명을 당선시켰다. 광역의원
‘박근혜 테러’와 빗나간 저널리즘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소위 보수 신문의 빗나간 저널리즘을 언제까지 봐야 하는가? 최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피습 사건을 다루는 이들 신문들의 태도에서 우리는 그 질기고 질긴 정치적 편향성과 그에 따른 저널리즘 유린 행위를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보수 신문들은 사건 초기부터 범인의 행동 뒤에 뭔가 ‘조직’과 ‘음모’의 냄새가 난다는 점을 강하게 부각하고 나섰다. ‘조직’과 ‘음모’와 관련 있는 듯한 내용이면 확인된 사실이든 일방적 주장이든 가리지 않고 대서특필하였다. 몇 가지 기사 제목을 살펴보자. 등의 기사를 쏟아냈다. 또한
21세기 기자의 혼을 찾아서
독재의 칼날은 소설 속 이미지를 뛰어 넘었다. 개발연대 ‘파쇼’라 일컬어지는 그것은 검은 장갑을 낀 공권력으로 다가왔다. 힘이 셌고 상식을 뒤엎어 버리는 권위를 지녔다. 한 가족의 생사여탈권을 맘껏 구사했던 독재 권력은 정보기관의 탐지력을 부리면서 가녀린 양심들을 마음껏 휘저었다. ‘빨갱이’는 내려오는 것보다 오히려 현장에서 만들어 졌다. 한번 찍힌 붉은 낙인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제대로 사람구실하기는 너무 힘들었다. 젊은 좌절은 깊은 한숨 토하면서 자꾸만 저 밑으로 가라앉아야만 했다. 1980년대 중반 어느 대학교 도서관 앞.…
기자의 기업체 이직
우리 경제가 잘 나가던 시절 언론사 입사 시험 경쟁률은 특이하게도 수백대일이 넘는 게 보통이어서 ‘언론고시’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였다. 과거엔 그처럼 기자가 된다는 것은 매우 어려웠고 많은 대학생들이 선망하는 직업이었다. 그런데 요즘엔 기자들이 감시와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던 기업과 정부부처로 일자리를 옮겨 제2의 삶을 시작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해 8월 한국기자협회 창립 41주년을 맞아 현직기자 3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이직을 고려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한 응답이 53.3%로 절반을 넘는 기자들
‘언론탄압 특별법’ 제정을 촉구한다
언론의 사전적 뜻은 ‘말이나 글로 자기의 사상을 발표하는 일’이다. 또 언론인의 사명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사실 그대로 국민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하지만 불행하게도 해방 이후 우리 언론은 눈이 있어도 못 본척 했고, 귀가 있어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입이 있어도 말할 수 없었고, 손이 있어도 쓰지 못했다. 두말 할 것 없이 언론에 대한 정권의 집요한 탄압 때문이다.언론은 본디 저항적이다. 더욱이 우리 언론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비판적인 속성과 내성이 강해졌다. 해방 이후 언론은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을 비판했고, 권력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