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8년 만에 햇빛을 보게 된 ‘안기부 X파일’이 2005년 여름 대한민국을 흔들어 놓고 있다.권력과 자본을 비판하고 감시해야 할 언론사를 대표하는 인물이 거꾸로 자본가의 하수인으로 전락해 자본가의 정치자금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는 사실에 언론인들은 할 말을 잃은 분위기다.우리를 더욱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부분은 한때 자본과 결별했다고 공언했던 중앙일보의 최근 보도 행태다.정치ㆍ경제ㆍ사회 권력의 감시를 통해 밝고 정의로운 사회의 실현에 동참했다는 중앙일보는 사설을 통해 참담한 심정으로 ‘국민과 독자 앞에 송구스럽다’고 고개를 숙였다.하
교열과 신문 신뢰도
우리말 지킴이의 보금자리인 교열부의 아웃소싱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영합리화란 미명아래 편집국에 소속된 교열부를 폐지하고 외부전문업체에 교열을 맡기는 폭거(?)의 부작용이 예상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교열부가 동네북의 신세가 된 것은 몇 년 전부터였다. 경영위기를 구멍가게보다 못한 경영방식 대신 비용절감에서 찾는 신문사 경영진들이 힘없는(?) 교열부를 희생양으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경영난이 심한 마이너 A신문은 교열부를 아예 없애고 취재기자에게 교열책임까지 맡겼다가 비난여론이 들끓자 슬쩍 부활시키는 해프닝을 벌였다. 경
기자는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나
‘인재경영’이 가장 요구되는 조직이 바로 언론사이다. 언론사는 보도기관으로서의 공익성과 사적 기업으로서의 이윤추구라는 이중적 논리를 지닌다. 그런 모순 속에서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기자들을 육성하고 평가하는 조직이다. 기자는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는가. 한때 시대의 감시자이자 파수꾼으로서 일하기 위해 많은 인재들이 경향각지에서 구름처럼 몰려들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신문사 방송사는 일반 민간기업조직처럼 철두철미하지 못했다. 기자들에 대한 인사제도가 세밀한 인사고과 평가방법 없이 관행과 재래적 방식으로 유지되었다. 이른바 사주에 의한 ‘
풍성했던 한국일보 ‘문학인의 밤’
요즘의 신문업계에선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세상의 변화에 맞서 스스로의 생존을 모색하기에도 벅차하던 한 신문사가 역시 퇴락의 뜰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이들을 격려하고 부축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달 말 한국일보가 창간 51주년을 맞아 ‘문학인의 밤’ 행사를 열었다. 혹자는 이 잔치가 후원업체를 업은 상업적 행사였을 것이라고 폄훼한다. 한국일보가 사업을 통한 자금 모으기에 적극 나서면서 요즘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문학 행사를 연 것은 사세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는 비뚜름한 시선도 있다. 그러나 이번 행사는 그 모든 질
일간스포츠를 살리는 길
일간스포츠 노동조합이 회사측의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며 지난 23일부터 파업을 벌이고 있다. 회사측은 지난 16일 편집국 기자 69명 가운데 3분의 1에 해당하는 23명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 일방적으로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회사측은 노조와의 협상이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느닷없이, 그것도 문자메시지라는 치졸한 방법으로 기자들의 밥줄을 끊고 말았다.기자들은 회사의 경영 악화로 지난해 말부터 지난달 4일까지 여섯 달 동안이나 월급 한 푼 받지 못했지만 일간스포츠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희생해왔다. 하지만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이들
전직하는 선후배·동료들을 보며
전, 현직 기자들의 전직이 화두가 되고 있다. 얼마 전 한 방송사의 전직 앵커가 삼성그룹의 임원으로 가는가 하면, 최근에는 신문사 부장과 전문기자들이 대거 정부 부처 홍보담당관으로 전직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 사회에서 언론인들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반증이다. 선후배·동료 기자들이 현실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해, 그들을 붙잡을 수 없는 우리들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기자를 전문직이라고 부르는 데 이견을 갖고 있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전문직이라고 부르려면,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추는 것은 물론 독립적인
퇴직자의 뒷모습을 아름답게 하라
후배와 가족들의 박수를 받으며 현장을 떠나가는 정년퇴임자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평생을 살아 온 개인사를 이야기하지 않아도 그의 삶이 사회와 가족 모두에게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는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평범하면서도 당연하기까지 한 이같은 모습이 최근 들어 우리주위에서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오히려 아무런 준비 없이 직장을 나서는 동료들의 모습을 아프게 지켜보는 일들을 자주 겪게 되고 알게 모르게 그들의 고통을 애써 외면하는 버릇까지 생기고 있다.더욱이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경제적인 비용이 가장 많이…
내실있는 남북 언론교류를 기대하며
조만간 평양에서 열리는 민족통일대축전(6.14~17일)을 계기로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남북한 언론교류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를 것이란 기대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같은 분단국가로서 독일 통일과정에서 언론이 수행했던 비중을 뒤돌아 볼 때 향후 남북통일은 물론 한반도 평화정착 과정에서 언론이 담당해야 할 의무와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주지하다시피 독일 통일과정을 지켜보며 남북한 언론교류 필요성이 제기된 뒤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은 615정상회담이 개최된 지 2개월만에 남한 언론사 사장단이 방북하면서부터다
뉴미디어와 신문
뉴미디어시대 언론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그 변화의 속도를 가늠 못해 문화지체마저 느낄 정도다. 뉴미디어의 하나인 인터넷신문도 어느 날 갑자기 구시대의 유물이란 핀잔을 들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인터넷강국의 국민들은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라는 광고카피처럼 늘 새로운 것을 목말라 하기 때문이다.뉴미디어는 198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새로운 정보수단을 말한다. 음성과 문자의 다중방송, 인공위성으로부터의 직접방송, 대화형의 방송매체, 가정용팩시밀리, 고도정보통신시스템 등으로 다양하게 발달해왔다. 뉴미디어의 총아로 떠오른 DMB는 방송
한결체 첫 발걸음을 주목한다
오늘도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의 양을 이루 다 헤아리기 어렵다. 정보 고속도로를 내달리는 속도는 두 눈으로 붙잡을 수 없을 만큼 거세다. 인터넷미디어의 질풍노도 속에서 저널리즘이 휘청거리고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보의 선별자' 신문이 고민하고 있다. 바야흐로 우리 사회의 의제를 독보적으로 규정하며 언론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신문이 새로운 변신을 할 때가 온 것이다. 신문 변혁의 당위성은 안팎에서 요청 받고 있다. 신문은 지식정보의 가공 생산품으로써 철저하게 산업과 신문 시장의 논리에 지배받으면서 동시에 시대담론의 증폭장치로 기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