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파인더 너머] (269) 먼저 손 내미는 마음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가을 초입, 제주 용눈이오름을 찾았습니다. 용이 누운 듯한 모습을 한 능선과 너른 들판을 보니 마음이 훤해지는 듯했습니다. 이마에 맺힌 땀을 식히는 바람을 맞으며 숨을 고르고, 오름이 주는 여유를 느꼈습니다. 이날 마주한 풍경은 여느 때보다 정겨웠습니다. 오름 중턱에서 말들은 자유롭게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엄마 손을 잡고 온 아이가 잠시 머뭇거리다 말에게 다가가 먼저 손을 내밀었습니다. 아이가 건넨 인사에 화답하듯 말은 아이의 손 위에 놓인 간식을 향해 코를 가까이 댔습니다. 아이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습니다.
[뷰파인더 너머] (268) 오로라 대신 무지개를 만난 여행
어때 요즘 좋아? 요즘 이 질문을 자주 듣는다. 질문을 받은 내 반응은 꽤 일정하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이 고된 하루와 지친 몸 내게 좋을 것이 무엇이 있지? 생각하다가 이내 질문의 의도를 깨닫고 눈을 빛내며 대답한다. 네! 너무 좋아요! 삶이 행복해요!언제나 신나는 퇴근이지만 요즘은 유독 더 그 시간이 기다려진다. 취재 현장에서 매몰차게 거절당해도, 억울한 일이 벌어져도 집에 갈 생각을 하면 힘이 난다. 집에는 이 모든 서러움을 토닥여줄 배우자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같이 뭘 먹을까 생각하며 폴짝폴짝 퇴근한다. 즐거운 신혼이다.
[뷰파인더 너머] (267) 전통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지난 주말 경북 청도군 청도 소싸움 경기장. 모래가 깔린 경기장 한가운데 두 마리의 싸움소가 머리를 맞대고 힘을 겨루자 관중석에 자리 잡은 시민들의 시선이 일제히 경기장으로 향한다.청도 소싸움은 오랜 지역 민속에서 출발해 상설 경기로 이어져 왔다. 2011년 정식 개장한 청도 소싸움 경기장은 주말마다 경기를 열며 지역의 대표적인 관광레저 시설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지난해 3월 전남 영암에서 구제역이 발생하자 가축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청도 소싸움 경기도 중단됐다. 백신 접종과 방역 조치가 이어지는 동안 주말 경기가 잇따라 취소
[뷰파인더 너머] (266) 계절의 착각인 줄… 그것은 죽음이었다
계절이 착각한 줄 알았다. 때아닌 눈이 내린 듯 산이 온통 회색으로 덮여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다 알았다. 계절이 바뀐 풍경이 아니라 소나무재선충병이 휩쓸고 지나간 죽음의 소나무 숲이었다. 들녘은 초록빛에서 황금빛으로 계절을 익혀가고 전원주택 앞 잔디는 여전히 생기를 품고 있다. 그러나 그 한가운데 자리한 소나무 숲은 시간이 멈춘 듯 회색빛으로 말라 죽어 있다. 소나무재선충병은 나무 한 그루의 병으로 끝나지 않는다. 재선충을 옮기는 매개충을 따라 숲 전체로 번지고 감염된 소나무는 몇 달 만에 생명을 잃는다. 울산과 경남, 경북은 이
[뷰파인더 너머] (265) 스며드는 가을
경남 의령군에 있는 호국의병의 숲 친수공원 상공에 드론을 띄웠다. 낙동강과 남강이 만나는 바로 옆에 조성된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크게 활약한 홍의장군 곽재우와 의병들을 기리기 위한 공간이다. 지금은 강변을 따라 산책하며 계절마다 달라지는 꽃과 식물을 감상할 수 있는 공원으로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진다.가을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한 이맘때 공원에는 댑싸리로 가득하다. 둥글고 복슬복슬한 모양의 댑싸리는 여름 동안 선명한 초록빛을 띠다가 가을이 깊어질수록 붉은빛으로 물든다. 일정한 간격으로 줄지어 심어진 댑싸리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작은 공들
[뷰파인더 너머] (264) 그라운드 위 마지막 인사
선선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돌아보니 지난여름은 야구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고교 선수들의 열기로 가득했던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를 취재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순간 중 예선전 취재 때 제주고 주홍찬 선수가 홈으로 달려오던 순간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그날 제주고 투수의 투구 동작을 좇던 중 유니폼 왼쪽 어깨에 달려 있던 검은색 근조(謹弔) 리본이 눈에 띄었습니다. 쿨링 브레이크 때 더그아웃을 찾아 연유를 물었습니다. 주홍찬 선수는 엊그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팀원 모두 리본을 달았다고 했습니다. 짧은 인사만 남긴 채 자리로 돌아왔
[뷰파인더 너머] (263)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서 있었다
사진기자 인생 팔 할은 운일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단순히 실력만으로 이 자리에 서게 됐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한 해에 많아야 열 명 남짓 사진기자를 뽑는다. 수많은 사람 가운데 내가 이 일을 하게 된 것부터가 여러 우연이 겹친 결과일지 모른다.지난해 경남 산청 수해 현장을 취재했다. 뒤늦게 도착한 현장은 앞서 다녀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좇는 일이다. 이미 보도된 사진과 기사를 찾아보며 목적지를 정했다. 그렇게 찾아간 곳 중 하나가 율량사였다.율량사에 도착했을 때 장화를 신은 스님 한 분이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뒤를 따라갔다. 무너진
[뷰파인더 너머] (262) 푸른 하늘의 날
푸른 하늘의 날을 아시나요?정식 명칭은 푸른 하늘을 위한 국제 맑은 공기의 날(International Day of Clean Air for blue skies). 대기오염의 심각성을 알리고 깨끗한 공기의 중요성을 되새기기 위해 유엔이 지정한 국제기념일이다. 매년 9월7일 세계 각국에서 대기질 개선과 맑은 공기를 위한 노력을 이어간다.이 기념일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그 시작에 대한민국이 있기 때문이다. 2019년 8월 국가기후환경회의 국민참여단이 푸른 하늘의 날 제정을 제안했고, 같은 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
[뷰파인더 너머] (261) 내리지 않는 비를 찍다
사진기자에게는 해마다 되풀이되는 계절의 숙제가 있다. 봄이면 꽃을 찾고, 장마가 시작되면 빗속으로 나간다. 빗줄기를 피해 뛰는 사람들, 우산 아래 몸을 숨긴 시민들, 물이 차오른 도로는 그해 여름을 기록하는 익숙한 장면들이다.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사진기자로 카메라를 든 지 30여년. 장마와 소나기를 제대로 찍지 못한 여름은 기억에 드물다. 8월에 접어들도록 경남에는 비다운 비가 좀처럼 내리지 않았다. 폭염 속에 논밭은 갈라지고 저수지는 바닥을 드러냈다.결국 하늘을 대신해 소방차가 움직였다. 11일 국가소방동원령이 내려지면서 전국의
[뷰파인더 너머] (260) 덥지 말아라 내 노트북
체감온도가 40도까지 치솟던 3일 오후 서울 경찰청 앞 인도에서 순환인사에 반대하는 경찰관들의 삭발식이 열렸다. 양쪽 어깨에 카메라를 멘 사진기자들은 다양한 구도를 위해 자리를 이리저리 옮겨 다닌 탓에 얼굴이 금세 땀범벅이 됐다. 크고 무거운 ENG 카메라를 삼각대에 받친 영상기자와 오디오맨은 삼각대에 끼워 놓은 우산 아래서 연신 손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취재원의 목소리를 담는 취재기자들은 뜨거운 바닥에 앉아 노트북 타자를 치고 있었다. 한 기자는 자신을 위해 준비한 양산을 노트북에 양보했다.가만히 있어도 더운 불볕더위 탓에 이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