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 저널리즘'에서 벗어나라

송년 제언-기자사회를 돌아본다 >1<

경호원 된 기자들…기자사회 큰 자괴감


언론계 “체면 버릴 정도로 사주 위력 커”




유달리 저 세상으로 떠나간 동료들이 많았던 한 해, 기자직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꾸린 선후배가 많았던 2005년의 끝자락에 섰다. 서둘러 送年하는 마음에는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이 문신처럼 배어있다. 아직 심장은 뜨거운데 팔 다리는 현실에 묶여 시간이 흐를수록 냉동되는 나신을 본다. 그대들 지금 어디에 있나? 영원한 저널리즘의 프로타고니스트들이여….





‘기자’가 우선이냐 ‘사원’이 우선이냐?



지난 12일은 `X파일’의 주인공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이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하던 날이었다. 이날 한 무리의 기자들은 홍 전 회장에게 가깝게 접근해 그의 귀국과 X파일 등에 관한 사항들을 취재하려 했다. 그의 귀국은 언론인은 물론 전 국민의 관심사였다.



이날 기자들의 취재노력을 몸으로 막은 두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중앙일보 기자였다. 왜 중앙일보 기자들은 타사 기자들의 취재를 방해했을까.



중앙일보의 또 다른 기자는 홍 전 회장의 입국 전 일본에 가서 그를 ‘영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홍 전 회장에게 무슨 `조언’을 했을까.



이런 행동은 기자가 아니라 비서실 직원들이나 경호원들이 해야 하는 게 아닌가. 만일 유사한 사건이 사주가 있는 다른 언론사에서 발생했다면 유사한 상황이 벌어졌을까. 시시비비를 가리는 임무를 부여받은 언론인은 언론사주에게 어떤 형태로 ‘충성’해야 하며, ‘언론사주’에 대한 충성이 ‘언론’에 대한 충성과 왜 달라야 하는가.



중앙일보 기자들의 이 같은 모습에 대해 1999년 대검찰청 앞에서 “사장님, 힘내세요”라고 외치던 모습을 연상하는 언론인들이 많다. 언론비평가 고승우는 이에 대해 “언론인들이 최소한의 체면조차 내버릴 정도로 족벌언론 사주의 위력이 대단하다”고 논평했다.



사주에 대한 ‘맹종적 충성’은 이 신문사에서만 볼 수 있는가. 한 때 ‘밤의 대통령’이란 표현이 나왔던 신문사는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또 사주가 있는 신문사나 방송사에서 일하는 기자들은 이런 맹종적 충성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사주가 없는 방송사, 통신사(국가가 주인인 경우)나 모든 사원이 주인인 이른바 독립신문들의 경우는 ‘맹종’의 대상이 없을까.



중앙일보의 사례는 언론인들이 사주에 대한 맹종적 충성에서 별로 자유롭지 않다는 ‘사주 저널리즘’의 어두운 측면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사주들이 절대적 권력을 갖고 리더십을 발휘해 언론사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가는 국내외 사례도 없지 않다.



해외에서는 뉴욕타임스의 사례를 들 수 있다. 1891년 뉴욕타임스를 사들인 아돌프 S. 옥스는 소유권의 중요성을 인식해 이 언론사의 주식을 분산시켜 투표권과 통제권이 설즈버거 가문에 남아 있도록 조치했다. 그 결과 이 신문은 외부 주주의 압력이나 합병의 기도에서 보호받고 있다. 나아가 주주들은 이 회사를 `팔거나 합병하거나 통제권을 넘기지 못하도록’ 하는 협정을 맺었다. 팔거나 합병하는 등의 조치는 “뉴욕타임스의 논평의 독립성과 보도의 진실성을 유지하고, 두려움 없고 외부영향에서 자유로우며 공공복리에 헌신하는 독립적인 신문을 계속할 수 있다고 주주들이 합의하는 경우에만” 취할 수 있도록 했다.



국내외 언론학자들은 언론사의 소유구조가 주로 보도내용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해외 언론학자들에 따르면 호주의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은 자신이 사들인 더 타임스(영국)나 뉴욕포스트(미국)에서 언론인들이 자신이 원하는 보수적 보도를 강요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의 ‘사주 저널리즘’은 사주의 이데올로기를 수용하는 정도를 훨씬 넘어선다. 한국 언론사의 기자들은 사주에 대한 맹종적 충성을 강요받는 (또는 자발적이든 타의에 의하든, 맹종적 충성을 해야 하는) 기업문화 속에서 회사생활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주를 향한 이 같은 맹종은 언론인의 행동뿐만 아니라 언론의 보도내용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기자협회는 언론인의 행동과 언론사의 조직문화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사주 저널리즘’의 명과 암을 주제로 제11회 콜로키엄을 23일 갖는다. 사주 저널리즘의 여러 측면을 분석하고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건설적 논의가 있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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