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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말부터 10여년째 운영…다양한 정보·치열한 토론의 장 ‘충실’
일례로 연초 집중아이템으로 기획됐던 ‘우리사회 점검’시리즈에 대해 게시판을 중심으로 지나치게 계몽적이란 비판이 일자 지도부가 이를 수용, 중단됐으며 김승연 회장 관련 보도에 대한 내부 비판도 게시판을 한 때 뜨겁게 달궜다.
최근에는 닉네임을 ‘신입’이라고 밝힌 한 수습기자가 “폭탄주 좀 그만 달라”는 글을 올려 선배들의 호응과 웃음을 동시에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게시판에 오른 모든 글에는 찬성과 반대에 대한 투표가 1회에 한해 가능하다.
KBS 보도본부 한 중견 기자는 “게시판을 사장 등 고위 간부들도 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뉴스에 대한 건전한 비판이 이뤄지는 거의 유일한 장이며 합리적인 수용이 이뤄지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게시판을 실명으로 전환하자는 목소리도 폐지론자들을 중심으로 몇 년째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익명을 담보로 한 부정확한 정보제공과 명예훼손에 이를 정도의 인신공격성 글들이 게시판 폐지의 주된 논거다. 또 소수의 의견이 보도본부 전체의 여론으로 변질돼 압박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보도정보게시판’의 관리자 역할을 하고 있는 기협 KBS지회 박상범 지회장은 “폐단은 분명히 있지만 익명게시판은 여전히 술자리에서 토로하던 울분을 표현하는 공간 제공의 기능 등 언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며 “비방이나 음해 등 인신공격성 글들은 관리자의 권한으로 삭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MBC ‘광장’
MBC 보도국의 소통창구는 2006년 초 완전히 차단됐다.
인신공격 등 익명게시판의 역기능에 대해 보도국 기자들의 견해차가 커지면서 생긴 결과다.
‘광장’이라고 불리던 MBC 보도국 익명게시판은 2004년 3월경 당시 10년차 이하 젊은 기자들의 끊임없는 문제제기의 산물로 탄생했다. ‘광장’은 MBC 뉴스 보도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 기능을 위한 충실한 역할을 수행하는 등 큰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그 해 말 이른 바 ‘구찌백 사건’이 발생한 뒤 게시판은 특정인에 대한 비방과 인신공격의 장으로 변모했다.
MBC 한 기자는 “당시 ‘광장’은 거친 표현과 인신공격이 주를 이뤘으며 음해성 글을 통해 선후배 기자들 간의 불신이 극에 달했다”고 술회했다.
‘구찌백’사건으로 특정인 비방 변질…2006년 1월 완전 폐지
이후 기자 지회장 직선제가 도입되고 후배기자들의 반발 등 일련의 사태를 거친 뒤 신임 기자회장의 공약에 따라 보도국 내 익명게시판은 2006년 1월 완전히 폐지됐다.
MBC는 자체뉴스시스템 내에 실명게시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게시판은 ‘베스트리포트’고지나 각종 경조사를 알리는 기능에 머물러 기자들의 언로를 대변해주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 대다수 MBC 기자들의 견해다.
MBC 보도국 모 기자는 “익명게시판 폐지 이후 게시판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금기시 되는 분위기”라며 “뉴스 시청률을 놓고 과도한 경쟁이 어어지면서 아이템 선정 등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지만 소통의 창구가 막혀있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익명게시판 부활에 대해선 고참급 기자들의 반대여론과 젊은 기자들의 찬성 의견이 명백히 대립하고 있다는 것이 보도국 관계자의 귀띔이다.
보도국 한 중견기자는 “익명의 역기능도 있지만 민주주의를 위해선 그에 맞는 비용을 치러야한다”면서 “MBC와 기자사회의 자정능력을 신뢰하고 게시판을 부활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SBS ‘기자실’
SBS는 ‘보도정보시스템’ 안에 ‘기자실’을 둬 언로의 역할을 맡겼다.
1998년에 만들어진 ‘기자실’은 KBS와 마찬가지로 보도국장 등 임원들도 열람이 가능하다. 실명과 익명으로 모두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운영은 전산팀에서 맡고 있으나 명예훼손, 욕설, 비방 등이 농후한 내용에 대해서는 기자협회 지회장이 집행부 논의를 거쳐 삭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기자실’에 올라가는 내용은 주로 모니터링 결과에 대한 갑론을박이다.
모니터링에 대한 취재기자의 반박을 통해 기자 자신의 취재 의도를 개진하며 잘못된 모니터링 결과에 항변하는 데 ‘기자실’은 중요한 창구가 된다.
여기에 야근 제도 개선, 주차 문제 해결 요구 등 취재 여건 개선을 위한 건의부터 특파원 선정 과정의 투명성, 논평에 대한 기자들의 느낌 등도 개진된다.
실명·익명 모두 가능, 공방위·편성위 실질적 반영 ‘밑거름’
기자들의 주요 업무 중 하나인 정보보고도 ‘기자실’을 통해 이뤄진다.
SBS ‘기자실’은 초창기 존폐의 기로에 서기도 했다.
상하관계가 엄격한 기자 조직의 특성에서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데스크 및 간부에 대한 불만이 익명으로 토로됐다.
때문에 초기 보도국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여러 차례 폐쇄를 요구했다.
SBS에서 10년 이상 근무하고 있는 한 기자는 “‘기자실’을 통해 어느 한 사람이 공격을 받으면 걷잡을 수 없는 파장이 일기도 했다”고 회상하며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 번 트인 언로를 막을 수 없다는 이유로 폐쇄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자실’에 오른 내용이 실질적으로 사내에 공론화되는 계기로 작용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 2월 ‘기자실’에는 유신헌법 시절 긴급조치 판사 명단 공개에 대해 SBS 논평이 ‘악법도 법’이라는 내용으로 발표되자 ‘SBS 기자인 것을 부끄럽지 않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글이 올랐다.
이는 곧장 공정보도위원회에 상정돼 사측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계기로 작용했다. ‘기자실’의 글이 공정방송위원회와 편성위원회에서 실질적으로 반영되는 밑거름 역할을 하는 것이다.
노조 공정방송위원회 및 편성위원회 간사인 윤영현 기자는 “‘기자실’에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도 많지만 그런 이야기들이 공정방송위원회와 편성위원회 등 노사가 공식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YTN ‘노조 자유게시판’
YTN의 소통창구는 2001년 10월부터 노조의 자유게시판이 맡고 있다.
익명으로 운영되는 노조 게시판은 YTN 보도국의 기사작성 프로그램과는 별도로 노조 홈페이지에 접속해야만 이용할 수 있다.
YTN은 1990년대 중반부터 자체 보도정보시스템인 ‘뉴시스’에 익명게시판을 두고 의사소통을 해왔다.
활발한 의견개진 등 순기능적 요인으로 기자들의 각광을 받던 게시판은 2001년 9월, 게시판 글의 외부유출문제와 내부공격성 글들이 다수 올라오면서 사측이 일방적으로 폐지했다.
당시 사측은 익명게시판이 ‘근거 없는 얘기, 정제되지 않은 정보’등이 산물이라며 폐지했다는 후문이다.
게시판 글 외부유출 문제로 2001년 9월 폐지…노조 자유게시판 이용
이에 노조가 반발, 2001년 10월 노조 홈페이지를 개설했고 익명게시판 기능을 노조사이트에 신설했다.
하지만 노조 익명게시판은 별도 접속해야 한다는 불편함으로 인해 보도국 기자들의 발길이 이전보다 뜸한 상태다.
YTN 보도국 한 기자는 “노조 게시판도 익명성은 보장되지만 예전보다 활발한 의견개진은 이뤄지지 않는다”며 “미심쩍은 기사나 부당 인사 등에 대한 최소한의 문제제기 기능은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 ‘뉴시스’의 게시판은 상시적인 접근이 가능해 열독률이 높고 흥미를 끄는 글들이 자주 올랐지만, 별도 접속을 해야하는 노조게시판은 그만큼의 기능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정호윤 기자 jhy@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