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기] 서태지를 잡기까지
'못찍으면 돌아오지 마라', 6명의 보디가드 제치고 잡아낸 3컷
김숙경/권병석 | 입력
2000.11.17 00:00:00
김숙경.권병석 스포츠서울 USA기자
4년 7개월간이나 잠적해 있던 가수 서태지가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다는 말을 들은 것은 8월 28일(LA시간) 오전 출근하자마자였다.
편집국장이 갑자기 “서울시간으로 29일 오후 6시쯤 김포공항에 도착하는 아시아나항공편의 LA 출발시간을 알아보라”고 했다.
“서태지가 그 비행기를 탈 거다. 확인해보고 나가서 사진 찍어라. 무조건 찍어라. 못찍으면 그 비행기 타고 한국으로 가버려. 돌아올 생각 말고.
입사 이후 처음으로 큰 일이 주어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국장은 LA공항의 아시아나 관계자에게 우리가 공항 탑승구까지 출입하도록 협조요청을 해 놓았다며 서태지를 따라붙을 수 있는 데까지 쫓아가 꼭 사진을 찍어오라고 지시했다.
공항 주변은 의외로 조용했다. 아시아나 관계자를 만나 탑승구 입구까지 들어갈 수 있는 패스를 받고 201번 탑승구이라는 귀띔을 들었다.
201번 탑승구 앞은 아시아나 승무원들과 탑승시간을 기다리는 승객들 그리고 우리처럼 한 컷을 노리고 나온 LA지역 한인방송 카메라맨 등 5명이 미리 와 있었다. 컴백 소식 만으로도 수천명의 팬들을 들뜨게 만드는 서태지가 나타날 곳이라는 분위기는 전혀 느낄 수 없을만큼 ‘현장’은 조용했다.
서태지가 지나가게 될 예상도를 그려봤다. 그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은 톰 브래들리 청사 2층에 있는 121번 탑승구로 가는 통로뿐이었다.
오후 1시43분. 드디어 201번 탑승구로 이르는 통로 입구에 설치된 몸 수색대 앞에 서태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서태지는 흑인 보디가드 5명과 그들을 리드하는 1명의 아시안, 그리고 매니저로 보이는 한국인과 함께 나타났다.
당황했지만 몸수색대를 1명씩 밖에 통과할 수 없다는 데 착안, 수색대 출구쪽에 카메라 초점을 맞추고 서태지가 통과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이게 웬일. 갑자기 LA공항 직원이 나타나 몸수색대에서는 사진촬영을 할 수 없다며 가로막는 것이 아닌가. 그 사이 서태지는 6명의 보디가드들과 2명의 아시아나 남자 직원에 둘러싸여 수색대를 지나 통로에 접어들어 버렸다. 좋은 기회를 놓친 셈이었다. 그래도 어쩌랴. 일단 닥치는 대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그러나 맨 앞에 서서 걸어 나오던 매니저로 보이는 한국인이 “서울에 도착하면 정식 인터뷰가 있을 것이다. 사진 찍지 말라”며 카메라를손으로가리더니 3명의 보디가드들에게 강하게 사진촬영을 막을 것을 지시했다.
집채만한 흑인 보디가드 3명의 손바닥은 그야말로 솥뚜껑같았다. 렌즈로 보일만한 틈이 한꺼번에 막혀버렸다.
거기서 탑승구까지의 거리는 50미터. 이런 식으로는 사진 1장도 건지지 못할 것 같았다. 우리는 소모적인 셔터전을 포기하고 마지막 승부수를 걸었다. 탑승구 10미터 앞에서 탑승객을 위한 대기석에 섞여들어가 의자에 앉아 있다가 서태지가 나가는 순간을 노려 재빨리 촬영한다는 계획이었다.
셔터를 멈추고 우리는 재빠르게 대기석으로 가서 서태지가 지나갈 길을 예측, 그곳에 앉아 있던 손님에게 양해를 구한뒤 카메라를 숨긴 채 마지막 셔터를 위해 서태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30초 후 서태지는 보디가드에 둘러싸여 바로 우리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순간 권병석 기자가 재빠르게 의자 위로 올라가서 셔터를 눌렀다. 한 번, 두 번, 세 번. 예상치 못했던 보디가드의 손이 카메라를 덮쳤지만 우리가 빨랐다.
공항 주차장으로 나오다가 공교롭게 흑인 보디가드들을 만났다. 호기심에서 “얼마 받았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가로 저었다. “원 싸우전?(1천 달러)”하고 어림잡아주니 그제서야 동의하는 고개짓을 하며 낄낄 거린다. 그들도 재미있었다는 몸짓이었다.
편집국에 돌아와 컴퓨터 모니터를 켜니 단발머리를 찰랑거리는 서태지의 옆모습이 비교적 깨끗하게 잡혀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