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어학·진학·연수…무엇이든 당장 시작하자
행복을 찾는 기자들 (2)자기계발
민왕기 기자 wanki@journalist.or.kr | 입력
2009.02.04 14:28:36
기자들은 피곤하다. 기사에 시달리고 야근, 당직에 몸이 축난다. 입사한 지 몇 년도 되지 않아 “총기가 흐려졌다”고 자조도 한다. 하지만 차근차근 미래를 준비하는 기자들도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새해에는 자기계발에 나서 보는 것은 어떨까.
자기계발, 마음은 굴뚝같지만…
누구보다 바쁘고 치열한 삶을 살고있는 기자들은 ‘마른 걸레 짜기’(CBS 3년차)라는 말로 자신을 비유했다. 그만큼 재충전과 재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기자는 계속 쏟아내는 직업이다. 뭔가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하다.”(충주MBC 4년차), “나도 미래를 위해 뭔가를 준비하고 싶은데 점점 닳아 없어지는 것만 같다.”(KBS 7년차)
많은 기자들이 ‘자기계발’이라는 화두를 꺼내자 답답함을 먼저 내비친 이유다. 피곤함과 위기감이 한껏 묻어났다.
“막연히 영어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한겨레 11년차), “시간이 모자란다며 환경 탓만 하는 내 모습에 미래는 항상 불투명하다.”(YTN 15년차), “막상 무엇을 해야 하나 생각하면 막막하다.”(대전일보 7년차)는 것.
타 직종과 비교해 자기계발을 할 시간적·정신적 여유가 없다는 토로였다. 하지만 반대로 욕구는 굉장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회만 된다면 독서, 어학, 진학, 연수 등 재교육·재충전을 하겠다는 게 기자들의 한결같은 바람이었다.
“늘 마음에 둔 채 바쁘다는 핑계로 못했던 공부를 올해에는 꼭 하겠다.”(SBS 기자), “언젠간 저널리즘에 대해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다.”(MBC 5년차), “중국어, 회계, 금융 자격증 등을 준비하려고 한다.”(이데일리 4년차), “영어와 중국어 공부를 통해 관심사인 이주여성들의 목소리를 더 가까이 듣고 싶다.”(중부매일 기자), “현실적으로 힘들지만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한국일보 기자)
이처럼 기자들은 자기계발에 대한 필요성과 욕구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문제는 실천에 나서느냐다.
공부든 무엇이든 당장 시작하라
인천일보 유광준(6년차) 기자는 고민 끝에 용단을 내렸다. 지난해 연세대 행정대학원에 입학해 자기계발에 나선 것. 당시 결정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유 기자는 이제 진학을 고민하는 기자들에게 “마음이 생기면 일단 저질러야 한다”며 “대학원에 들어와 보니 미루고 미루다 7~8년 만에 들어와 후회하는 분들이 많다”고 조언했다. 의지가 있다면 빨리 시작하라는 충고다.
그는 “정치부 기자를 하면서 당연히 한계를 느꼈고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정규 코스를 통해 기자로서의 전문성을 키우고 인적 네트워크를 늘릴 수 있어 실보다는 득이 많다”고 대학원 진학을 적극 추천했다.
힘든 기자생활을 극복하고 자기계발에 성공한 사례를 돌아볼 필요도 있다. 최근에는 신석호 동아일보 기자와 고수석 중앙일보 기자의 사례가 회자된다. 이들은 모두 지난해 2월 북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신 기자는 6년 동안 유일한 휴일인 토요일을 포기했고, 고 기자는 매일 새벽 2~3시까지 공부에 매진했다. 의지만 있다면 가능한 일이라는 게 그들의 설명이다.
정치, 사회, 경제, 문학, 산업, 여성, 외교, 미디어 등 현장을 직접 체험하며 경험을 쌓은 기자들이 학문을 통해 전문가로 거듭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대학원 진학을 추천하는 주요 이유들로 지적된다.
물론 회사의 기자 재교육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것은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지원하는 곳은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소수. 이들 신문은 휴직, 학자금 등을 일부 지원하고 있다.
반면 자비를 들여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까지 부정적으로 여기는 경영진도 있었다. 인식 개선이 필요한 이유다.
중앙일간지의 한 기자는 “회사 몰래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며 “지금 같은 경제 위기에 사실이 알려지면 좋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지역신문의 한 기자는 “회사에 대학원에 다니겠다는 말을 했다가 딴 생각 있느냐는 말을 들었다”며 “우리 회사의 경우 기자 재교육과 복지에 대한 인식 개선이 먼저 필요하다”고 말했다.
취재현장이 경쟁력, 책을 써보자
자기계발의 일환으로 전문서적을 출판하는 기자들의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집필을 통해 자신만의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사회적인 인정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 책 쓰는 기자들은 “책 출판만큼 기자의 자기계발을 위해 좋은 것도 없다”며 주위에 집필을 권하기도 한다.
실제 비무장지대(DMZ) 전문서적을 펴낸 연합뉴스 강원지사 이해용(14년차) 기자 역시 현장취재의 연장선에서 두 권의 책을 집필해 이제는 DMZ 전문가로 통한다.
취재 중 떠오른 생각들을 꼼꼼히 메모해 뒀다가 관련 사안을 만날 때마다 보충 취재한 것이 전부. 다른 기자와 달랐던 점은 현장에서 조금 더 깊이 취재하고 꼼꼼히 메모했다는 점이다.
이 기자는 “처음부터 책을 쓰겠다는 거창한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며 “취재 일상에서 한 메모에 살을 붙이는 식으로 처음엔 사소하게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문가와 일반인들보다 현장을 더 가까이 접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기자들의 경쟁력”이라며 “거창한 주제 말고 현실에서 부딪치는 문제를 쓴다면 기자 누구나 좋은 책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수많은 기자들이 전문서적을 펴내는 의미 있는 출판에 나서고 있다. 주목할 점은 ‘책 쓰는 기자들’ 대다수가 “책 출판을 통해 개개인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조언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일상생활에서 시도하고 실천하는 것.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전문영역도 개척할 수 있고, 자기계발과 명예는 덤으로 따라온다는 충고다. 외국 기자들의 경우 1인당 4년에 1권꼴로 책을 펴낸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밖에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아랍어 등 어학 공부를 통해 자기계발에 나서는 기자들도 상당했다. 경제지의 경우, 투자상담사 등 관련 자격증을 따는 기자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1997년 IMF 사태 이후 기자들의 전문성이 강조되는 한편 개인의 삶과 미래가 언론인들에게도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기사마감, 당직, 야근 등 업무에 쫓기는 기자들. 하지만 미래와 자기 자신을 위한 투자에도 눈을 돌려보자는 주위의 제안에 귀를 기울여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