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피의자 신상공개의 범위


   
 
  ▲ 지성우 단국대 법학과 교수  
 
최근 연쇄강간살인 피의자인 강모씨의 신상과 얼굴사진 등을 공개하는 문제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개진된 바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범죄인의 신상공개를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법은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에 의하면 19세 미만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매수 행위자의 신상을 종국판결 후에 엄격한 심사를 거쳐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인의 성매수 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이나 보안처분 등과 같은 전형적인 형사제재로는 불충분하며, 범죄인에게 제한되는 기본권보다 범죄 예방의 효과가 크고, 이미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도입되어 있는 제도이기 때문에 위헌이 아니라고 결정하였다. 오히려 공개범위를 얼굴이나 사진 등에까지 확대하여 국민들이 확실히 인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전문가들도 있다.

하지만 강모씨 사건에서와 같이 사법절차에서 유죄가 확정되지 않은 범죄의 피의자에 대한 신상공개는 유죄판결 후 행해지는 현행법상의 성매수자에 대한 신상공개와는 다른 헌법적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먼저 현행법상의 신상공개제도는 이미 사법절차가 완료되어 범죄인으로 판단 받은 이후에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신상을 공개하는 것이다. 반면 이 사건에서는 아직 사법절차가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에 헌법상의 ‘무죄추정의 원칙’과 배치될 가능성이 있다.

형법 제126조에 의하면 검찰, 경찰 등 사법당국이 재판확정 전에 피의자의 범죄사실을 미리 공표하면 형법상 ‘피의사실공표죄’에 해당된다. 그러나 언론기관이 피의자의 범죄사실과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처벌의 대상이 아니며, 언론기관 역시 피의자의 신상을 보호해야 할 법적인 의무는 없다. 이 문제는 사회적 통념과 합의의 문제인 것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 언론을 통해 피의자의 신상과 사진이 상세히 공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용인하는 것은 아마도 대다수가 범죄의 잔혹성과 예방의 필요성이 신상공개로 인한 개인의 불이익보다 크다고 보기 때문인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을 통한 신상공개가 자칫 이번 사건을 심리할 재판부의 예단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상공개는 극히 제한된 범위의 사건에 대해서만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범죄피의자의 신상공개는 헌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연좌죄 금지의 원칙’을 사실상 파기할 가능성이 있다.

헌법 제13조 제3항에서는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동양사회의 뿌리 깊은 연좌형을 헌법적으로 폐지한 것이다.

언론기관의 범죄피의자 신상공개를 극히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인정할 수도 있다는 원칙은 피의자 자신의 신상에 관해서뿐만 아니라 가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한다.

언론기관이 범죄인의 신상을 공개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범죄인 가족의 신상이 공개될 개연성이 크다. 이번 사건에서 언론은 피의자의 주변상황을 상세하게 묘사함으로써 주위사람들이 피의자 가족들이 누구인지에 대해 거의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피의자의 가족들은 법적으로는 아니라도 사실상 사회로부터 격리되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설사 언론기관이 흉악범죄를 저지른 범죄인에 대해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극히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사건의 전말과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가족과 친지들을 알 수 있는 내용에 대한 보도는 자제해야 할 것이다.

범죄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흉악범죄의 예방 등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반면 무시하지 못할 단점도 있다. 범죄사실의 공개금지는 언론기관이 준수해야 할 법률상의 의무는 아니지만 공개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면밀히 검토하여야 할 언론의 책무가 완전히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언론기관의 엄격한 자기성찰과 상세한 기준 정립이 필요한 대목이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