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 강요하는 생존논리 사라졌으면
방송인 김미화씨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09.03.11 14:57:44
|
|
|
|
|
▲ 방송인 김미화씨 |
|
|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나는 무턱대고 ‘개그콘서트’라는 코미디프로그램 기획서를 가지고 KBS 예능본부장실을 찾아갔었다.
당시 나는 코미디도 방청객들이 와서 열광하고 즐기면서 볼 수는 없는 걸까? 라는 의문점을 가지고 ‘이소라의 프로포즈’처럼 공개코미디를 만들어 보리라 생각하고 본부장님을 찾아가 온갖 말로 설득했다.
“연극식으로 조명만 가지고 세트 없이 전속 악단 한 팀과, 신인들만 데리고 하는 컨셉트라 출연료도 싸고, 저비용으로 고효율을 낼 수 있다. 부자는 망해도 삼년을 간다고, 코미디 프로그램 만들어서 광고 안 팔리는것 보셨느냐. 팔린다. 추석특집으로 한번만 파일럿으로 떠보고 만약 재미없으면 한회로 끝내자. 자신있다.”
결국 KBS는 손해 볼 것 없지 않느냐. 큰소리를 뻥뻥 쳐서 일단 특집으로 한번 떠보는 걸로 약속을 받아냈다.
실패할지, 성공할지 마음속은 얽힌 실타래처럼 복잡했지만 당시엔 없었던 공개코미디라는 내 아이디어와 뛰어난 감각의 코미디PD와 작가, 그리고 후배들과 열심히 만들면 된다는 마음으로 석달 동안 열심히 후배들을 모으고 준비했다.
내가 억세게 운이 좋은 건지 개그콘서트는 탄생 후 1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내가 갑자기 10년이 넘은 케케묵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꺼내는 것은 다채널 다매체 시대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 같아서 한마디 거들어 보려고 한다.
시청하는 사람이나 만드는 사람이나 모두 만족하는 품질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기까지는 프로정신으로 똘똘 뭉친 사명감과 피를 말리는 작업들이 동반된다.
벽돌 찍듯이 새로운 프로그램이 딱딱 나와서 장마다 대박이면 좋으련만 그렇게 되긴 정말 어렵다. 나 같은 코미디언들은 채널이 많아지면 좋다. 왜냐하면 여기저기서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으니까.
그런데 걱정되는 점은, 고속도로는 많이 만들어 놓고 지나다니는 자동차가 없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점이다. 길은 잘 닦아 놨는데, 자동차를 한 대 한 대 만들기가 쉽지 않은 일이라서, 콘텐츠가 없는데 채널만 많아지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물론 무슨 프로그램이든 채워 넣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질적으로 만족스러운 프로그램일까?
요즘 뚝길에는 민들레 뿌리를 캐는 아낙들이 부쩍 보인다.
민들레를 캐다 말려서 끓여 먹으면 위에 좋다고 해서 모두들 지친 남편을 위해 민들레를 캐고 있다. 우리 집은 단독주택이라 집 앞마당에 잔디가 있다.
그런데 이 민들레가 한번 잔디에 뿌리를 내리면 노란민들레 밭이 돼버린다. 동네분들은 이 민들레를 잡초라고 뽑아버리고 잔디를 가꾸는데, 나는 민들레 꽃이 예뻐서 그대로 놔뒀더니 서서히 잔디가 없어지고 온통 민들레 천지가 됐다.
민들레는 번식력이 강하다. 지난번에 민들레를 뿌리째 캐서 씻어 말렸더니, 꽃봉오리가 꽃이 되는 걸 생략한 채 홀씨를 뿌려대서 민들레바구니가 한바구니의 이불솜을 뒤집어쓴 것처럼 하얗게 변해 있어서 놀란 적이 있다. 그래서 그 뒤로는 적당히 민들레가 섞이도록 잘 솎아 주고 있다. 뭐든 과하면 부담스럽다.
신문에 관련된 사람들 얘길 들어보면 종이신문시장이 점점 좁아지고 있기 때문에 신문이 방송에 진출하는 길만이 살길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살길인지, 죽을 길인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그렇게 하면 일자리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질 거라고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의 단순한 계산법으론 이해가 안된다. 예를 들어 중앙일보와 문화방송이 결합한다면 MBC 기자들이 일단 반이 줄어들 것이고, 중앙일보 기자들 역시 반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인수합병하는 회사들을 지켜보건데 은행들도 전부 그랬고 어떤 기업들도 다 이쪽 반 저쪽 반으로 줄여서 합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 같으면 내가 잘려서 회사가 사는 그런 충성은 안할 것 같다. 누구든 자기가 중요하고 자기 인생은 한 번뿐이기 때문이다.
욕심이 지나치면 화를 부르는 법이다. 누구를 희생으로 하는 생존논리가 사라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