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방송정책' 바꾸는 미디어위원회 무용론
정용준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09.04.01 15: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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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용준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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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주도로 미디어국민위원회가 출범한 지 한달 가까이 되어 간다. 1백일이라는 활동시한을 감안하면 사회적 합의기구와 회의공개 여부, 운영소위 방식 등을 둘러싼 겉치레 논박이 답답하기만 하다. 여야의 정쟁 속에서 소수의 미디어전문가와 일부 시민단체출신들이 신방겸영과 대기업허용 여부 등 30년 가까이 지속되어 온 방송규제의 패러다임을 바꾸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촉박하다고 말한다.
애초 미디어위원회는 메이저신문에 보은(?)을 해야 하는 다수여당의 밀어붙이기와 무능력한 소수야당의 고육지책이라고 할 수 있다. KBS와 YTN 등 주요 매체에 자기네 사람들을 무더기로 앉히고 노조가 이에 끈질기게 저항하는 판국에, 미디어법까지 힘으로 밀어붙이기에는 부담이 되는 여당과 공익성과 여론독과점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다 지친 야당이 ‘사회적 논의’라는 명분을 내세워 타협한 것이다.
이미 미디어법을 둘러싼 논쟁은 여당이 대기업 참여금지와 사회적 논의기구를 수용함으로써 미디어위원회까지 갈 것도 없이 어느 정도 결판이 난 것이나 다름없다. 야당이 더 이상 재벌방송이나 독재적 미디어법이라는 비판을 할 명분이 없어진 것이다. 오히려 야당이 대기업을 허용하고, 여론독과점의 본질인 신문방송겸영을 금지하거나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2~3년간의 사회적 합의기구 제안을 하지 못하였던 것이 실책이라고 하겠다.
처음부터 미디어위원회는 여당의 미디어법 통과를 위한 액세서리에 불과하다. 명분으로 내세운 사회적 합의는 고사하고 사회적 논의도 미흡한 여야의 대리전에 불과하다. 30년간 유지되어 온 여론독과점 규제를 바꾸기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라면, 적어도 2~3년 정도의 충분한 기간과 사회적 대표성을 갖춘 기구여야 한다. 영국의 피코크 위원회나 미국의 공익성자문위원회는 수년에 걸쳐 수십권의 보고서와 청문회, 현지여론조사, 수만건에 이르는 의견청취를 거쳐서 나왔다. 더욱더 중요한 것은 정치적 입장에 휘둘리지 않고, 중립성과 전문성에 입각하여 방송패러다임의 전환을 결정하였다는 것이다. 시장주의의 마거릿 대처 수상이 임명한 피코크 위원회는 정권의 요구와는 달리 공영방송 BBC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과연 미디어위원회에 참여한 방송학자와 시민단체 출신들이 전문성과 중립성에 입각하여 추천 정당의 입장에 반대되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히려 개인적인 입신양명을 위하여 정당의 충실한 거수기 노릇이나 하지 않았으면 한다.
방송학자들이 전문적이고 합리적인 소신을 펼치기에는 미디어위원회가 담고 있는 그릇이 적당하지 않다. 또한 여당과 야당은 문방위에서 직접 논쟁하고 결론을 내리지 않고 방송학자와 시민단체를 끌어들였다. 그동안 신방겸영과 대기업 참여논의는 수많은 세미나와 방송토론을 거쳤기 때문에 여야국회의원들에게도 이미 학습이 이루어진 전문분야가 되었다. 미디어위원회의 논의가 여야의 논쟁보다 심도가 깊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며, 논쟁을 되풀이하는 수준에 그칠 것으로 짐작된다.
미디어법의 주무부처는 방송통신위원회이다. 진정 미디어법의 개정이 필요하다면 방송통신위원장과 위원들이 직접 2~3년에 걸쳐 전국순회공청회를 하고 각계의 의견을 청취하면서 실명으로 정책판단과 그 이유를 밝혀야 한다. 미국의 FCC는 위원장이 청중들로부터 계란세례를 받으면서까지 수차례 전국순회공청회를 하면서 신방겸영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진정한 사회적 합의는 정책의 수장이 오랫동안 국민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신방겸영과 대기업 참여 여부는 30년 방송정책의 근본을 바꾸는 중차대한 정책결정이다.
글로벌 미디어그룹과 일자리창출이 시급한 것이 사실이지만 사회적 공공재인 방송이 특정 기업이나 신문에 휘둘리는 것을 방지하는 것은 더욱더 중요한 시대적 과제이다. 조금 늦더라도 평범한 국민들의 의견부터 정치엘리트까지 골고루 의견을 수렴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