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그 마음 변치 않길 바랍니다"
조승호 해직 기자 아내 탁영희씨
민왕기 기자 wanki@journalist.or.kr | 입력
2009.07.22 14:5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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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영희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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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픈 기억은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소중한 사람의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YTN 조승호 기자의 아내 탁영희씨(39·초등학교 교사)에게 남편의 해직이 그랬다.
18일 오후 서울 노원구의 한 찻집. 조금 전까지 그는 분명히 활짝 웃고 있었는데 어느새 굵은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세 아이에겐 자상한 아빠, 자신보다 언제나 남을 먼저 위했던 우직하기만 했던 사람…. 그런 남편 이야기가 나오자 다시 눈물이 고이고 말았다.
“해직되던 날, MBC 뉴스데스크에서 YTN 기자들이 해고됐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범이 아빠라고 짐작은 했었죠. 다음날 아침 남편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렇다고 하더군요. 그러곤 아무렇지 않은 듯 학교에 가는데 아이들이 교문 앞에서 “선생님!” 하고 달려드는 거예요. 사랑스런 아이들을 보니 그때 그만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군요. “미안해. 얘들아, 너무 미안해”라고 말하고는 아이들을 들여보내고 한참을 울었어요.”
IMF 외환위기 때 6개월간 월급 한 푼 받지 않고도 한 마디 불평 없이 회사를 살리려고 애썼던 사람. 아내에게 담배 값을 타온다는 선후배들이 안타까워 어쩔 줄 몰라했던 사람. 탁 선생님이 아는 남편은 회사와 선후배들을 무던히도 아끼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회사가 내쳤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회사인데…. 남편이 그렇게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의 심경은 블로그(http://blog.daum.net/teachermom)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자꾸자꾸 눈물이 난다. 억울해서 눈물이 나고 사람들의 위로에 눈물이 나고 바보 같은 내 남편을 생각하면 더 눈물이 난다. 이것이 정의로운 일을 택한 것에 대한 대가라면 나와 그리고 우리 세 아이들은 꿋꿋이 버텨 나갈 것이다.”
그래서 무거워진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강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섯 살 난 막내딸이 “엄마, 왜 아빠는 회사에서 쫓겨났어요?”라고 물을 때도 웃었고, 아이들 학교 통신문의 부모 직업난에 ‘기자’ 대신 점(·)을 찍을 때도 슬픔을 삼켰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예요. 사람들은 쉽게 얘기하지만 가족들이 얼마나 힘겨워 하는지. 저희는 맞벌이였지만, 외벌이인 가족들은 지금 얼마나 힘들지…”
탁 선생님은 그래서 다른 해직기자 가족들에게 “괜찮다고 하면서도 마음 속 깊은 곳에 큰 바위덩이가 놓여 있지 않기를,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당당하고 의연한 아버지와 남편을 닮은 그의 가족들에게 아버지의 빈자리를, 그리고 남편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시간이 빨리 오기를… 기원한다”고 전했다.
탁 선생님은 이런 이야기들을 하며 활짝 웃었고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아마도 그건 모두의 바람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심지어 남편을 해직시킨 사람들도. 대신 응원하고 위로해 준 가족들, 동료들, 시민들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당당하게 YTN으로 꼭 돌아가세요.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할 수 있는 소박한 소원이 다시 이루어지면… 돌아가서 다시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온다면, 자리 때문에 초심이 변하지 말았으면 해요. 지금 당신이 겪었던 일을 생각하며 욕심내지 말고 똑바로 살아가요. 그렇지 않으면 먼 훗날 당신도 후배들에게 ‘2008년 공정방송을 외치며 해고되었던 선배가 이러실 수 있습니까?’ 라는 말을 되돌려 받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