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소수 명망 경제학자 풀에서 벗어나라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09.09.22 17: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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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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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총리 후보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이 청문회는 어느 모로 보더라도 9·3 개각에 따른 인사청문회의 대미(大尾)였다.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경제학자다. 그것도 정치적 무게가 여느 학자와는 다른 경제학자다. 현실참여적 학자에서 어느 샌가 대선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인물이다. 게다가 많은 국민들의 예상과 달리 야가 아니라 여권을 선택했다. 청문회에서 여야가 날을 세운 것은 당연했다.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것도 너무나 당연했다.
동시에 이번 인사청문회는 국내 경제학자들의 삶과 행로에 대해 면밀히 들여다볼 기회이기도 했다. 경제학자들은 경제 저널리즘의 핵심이다. 경제부 기자들은 그들의 말을 경청하며 의견을 전한다. 경제학자의 발언은 시장에 영향을 미친다. 동시에 정부의 정책을 좌우한다. 그런데도 그간 경제학자들을 꼼꼼하게 검증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국내의 대표적 경제학자에 대한 이번 청문회는 경제학자 전반에 대한 인증 과정이기도 했다.
이번 청문회를 보며 한편으로는 크게 놀랐다. 반면 안도하기도 했다. 우선 청문회가 다른 후보와 전혀 다르지 않아서 놀랐다. 이번 청문회에서는 병역 면제, 논문 중복게재 등이 쟁점이 됐다. 하나 같이 인사청문회의 단골 이슈다. 물론 경제학자라고 도덕성이 더 높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여느 직종보다 더 강한 직업윤리가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청문회에서는 기업인으로부터 금품 수수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애당초 위장 전입, 소득 탈루, 공무원법 위반 논란 등도 있었다. 정 후보는 이런 경제 분야의 주요 쟁점들을 속 시원하게 해명하지 못했다. 이 의혹의 일부가 사실이라면, 그간 경제 현안에 대한 자신의 주장에 이해가 개입됐을 수도 있다. 적어도 어떤 경제 사안에 대해서나 자유롭게 발언할 처지는 아니었다.
그가 정작 여권, 그것도 총리직을 선택한 것으로 놀라지는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 판단을 두고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국내에서 학자 이상의 영향력을 획득한 경제학자가 선택할 대안은 그리 많지 않다. 그들은 별 수 없이 권력을 향해 나아간다. 아예 신출내기 교수 시절부터 거침없이 권력을 지향하는 경우도 있다. 교수라는 직함을 유지하면서 유력 대선후보의 비공식 자문팀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많다. 그것은 온전히 경제학계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 정치권은 끊임없이 편 가르기를 시도한다. 경제학계라고 예외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온전히 직분에 충실한 경제학자로 남아있기란 쉽지 않다.
문제는 경제학자를 인용하는 우리 언론의 경제 저널리즘이다. 언론은 주요 경제 현안에 대해 이해가 상충하거나 정치적 입장이 분명한 경제학자들의 주장을 여과 없이 전한다. 그리고 그것을 여론이라고 치장한다. 그리고 그 대상은 지나치게 소수에 집중돼 있다. 예를 들어 정 후보는 20여 년째 언론의 각광을 받아왔다. 그 소수가 해당 사안에 대해 통달했는지, 이해관계는 없는지를 사전에 따져보는 절차가 너무 부족하다. 심지어 경제부 기자들이 경제학자의 입장이나 처지를 잘 아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도 그들의 말을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또 전한다. 경제학자와 경제부 기자는 필요에 따라 같이 움직이는 공생관계다.
정 후보는 이번 청문회에서 주요 현안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결정적으로 바꾸지는 않았다. 그 점에 대해서는 안도했다. 세종시와 감세정책과 같은 현안에 대한 입장이다. 물론 임명권자에 대한 노골적인 불충(不忠)이란 인상을 피하기 위해 애매모호한 답변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입장을 1백80도 바꾸었던 학자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에 비하면 그의 원칙 고수는 참신해보이기까지 했다.
경제부 기자 시절 취재를 위해 미국의 한 이름난 경제학자에게 연락을 했다. 어렵게 수소문해서 알아낸 연락처로 전화를 건 것까지는 좋았다. 마침 그는 출장 중이었다. 자동응답기의 메시지를 듣는 순간 맥이 탁 풀렸다. 하지만 메시지를 다 듣고 나서는 놀라기도 했고 안도하기도 했다. 그는 해당 사안과 관련한 자신의 이해관계가 어떻고, 또 자신의 입장은 어떤지도 간략하게 설명해놓았다. 친절하게도 응답기 녹음분을 ‘인용할 수 있다(Quotable)’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해당 경제학자가 전문적이라고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경제부 기자들이라면 으레 그런 엄격한 질문을 했을 것이란 전제 하에 녹음된 답변이었다.
정운찬 후보가 총리가 될지, 더 나아가서는 좋은 총리가 될지는 그의 운명과 그릇에 달려 있다. 우리 언론이 더 나은 경제 저널리즘을 위해 할 일은 따로 있다. 소수에 국한된 취재 대상 인력을 가능한 한 젊고 참신한 경제학자들에게까지 확대하라. 그리고 사안별로 그들의 이해와 주장을 더욱 분명히 하고, 그들의 말을 전하라. 오로지 언론사나 언론인의 이해 때문에 소수의 명망있는 경제학자가 경제 저널리즘을 독점하지는 못하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