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욕적 캐리커처로 기자 인신공격한 작가, 손배 확정

대법, 4월초 원심 확정… 기자 20명에 300만원씩 배상 책임
2022년 9월 소 제기 3년여만… 형사재판도 1심 유죄

기자들을 희화화한 캐리커처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고 외모를 비난하는 댓글을 남긴 작가에게 “기자 1인당 3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최근 확정됐다. 2022년 9월 소송을 제기한 지 3년 7개월만이다.

대법원 2부(주심 박영재 대법관)는 기자 20명이 작가 박모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박씨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원심 판결을 4월2일 확정했다. 박씨가 2심 결정에 불복, 지난해 12월 상고했지만 심리 없이 이를 기각한 것이다. 대법원은 하급심 결정에 문제가 없으면 사건 접수 4개월 이내에 추가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할 수 있다.

구글 '나노 바나나 프로'로 만든 이미지. /강아영 기자

앞서 2심은 지난해 11월 박씨가 기자들에게 각 3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게시물에 드러난 인신공격과 초상권 침해의 정도, 게시기간 등을 고려하면 인신공격으로 인한 위자료는 200만원, 초상권 침해로 인한 위자료는 100만원이 적정하다고 본 것이다. 또 기자들의 외모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은 공공의 이해와 관련이 없다며 관련 게시물 역시 삭제하라고 판결했다.

박씨는 2020년 4월부터 2021년 11월까지 자신의 SNS에 기자들을 희화화한 캐리커처를 그려 게시했다. 게시물엔 기자 실물 사진 및 실명과 소속 언론사를 함께 기재했고, 캐리커처 아래 ‘ㄱㄷㄱㅌㅊㅍㄹㅈㅌ(기더기퇴치프로젝트)’라는 초성을 적은 뒤 기자들의 외모를 조롱, 비난하는 댓글을 달았다.

캐리커처의 대상이 된 기자들은 박씨의 캐리커처와 게시물이 초상권 침해, 모욕, 명예훼손 등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며 2022년 9월 1인당 1000만원씩의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기자들을 매우 기괴하고 무섭게 표현한 캐리커처를 게시해 초상권 등 인격권을 침해했다”는 이유에서다.

1심 재판부는 2024년 6월 박씨에게 서울민족예술단체총연합과 공동해 기자들에게 각 100만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서울민예총은 2022년 6월 ‘굿바이 시즌2-언론개혁을 위한 예술가들의 행동’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기레기 십계명’이라는 제목 아래 박씨가 그린 전·현직 기자와 방송인 등 100여명에 대한 캐리커처를 전시한 곳이다.

재판부는 명예훼손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박씨의 캐리커처와 게시물이 초상권을 침해하고 기자들을 모욕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캐리커처가 인중, 주름, 수염 자국, 턱 등 각종 부위를 지나치게 과장한 데다 그림 전체를 분홍색으로 색칠해 매우 기괴하고 혐오스럽게 묘사했다”며 “게시물의 전체적인 내용 역시 구체적인 근거를 든 비평이 아닌 외모 비하, 인신공격이 주를 이루고 있으므로 위와 같은 표현이 자유에 의해 보호받는다거나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형사재판 2건은 진행 중… 1심선 모두 200만원 벌금형 선고

2심 재판부 역시 초상권 침해와 모욕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게시물의 일부 형식과 내용이 기자들의 외모에 대한 비하와 조롱을 표현한 것이어서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에 해당한다”며 “대법원이 2024년 ‘기레기’라는 표현에 대해 지나치게 모욕적이거나 악의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지만, 박씨가 기자 얼굴을 그린 캐리커처의 형상, 색상, 비중 등 표현의 흐름과 맥락 등을 고려하면 캐리커처 아래에 적은 ‘기레기’, ‘기더기’는 외모에 대한 멸시나 조롱을 위해 사용한 표현이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서울민예총이 2022년 광주광역시 메이홀에서 개최한 ‘굿 바이 시즌2’ 전시회 포스터. 박씨 캐리커처를 활용한 왼쪽 이미지로 최초 공개했다가 논란이 되자 오른쪽 이미지로 교체했다.

다만 1심과 달리 2심 재판부는 서울민예총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전시회가 기자 집단 일부에 대한 부정적·비판적 의견을 드러내고 있지만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의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긴 어렵다”며 “기자들의 얼굴이나 그 밖의 신체적 특징이 촬영·묘사·공표되어 있지 않으므로 초상권 침해도 인정할 수 없다. 결국 박씨가 전시회와 관련해 어떠한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볼 수 없는 이상 서울민예총이 불법행위를 공모했거나 방조했다는 원고들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기자들을 대리한 법률사무소 익선의 진한수 변호사는 일단 승소에 의의를 뒀다. 진 변호사는 “피고 쪽에서 표현의 자유를 계속 주장했지만 이번 사안은 예술이란 이름 아래 기사도 아닌 기자를 인신공격한 것이 본질”이라며 “기자, 또 그 가족 분들이 겪은 고초에 비하면 300만원이라는 위자료 액수는 턱없이 적다. 다만 법원이 위자료 부분에 대해선 굉장히 보수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승소한 데 의의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와 관련한 민사재판은 일단락 됐지만 형사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현재 모욕 혐의로 박씨에 대한 두 건의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며, 모두 1심에서 200만원의 벌금형이 선고됐고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그중 한 건은 19일 선고가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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