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김대중 칼럼의 수수께끼
금태섭 변호사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09.09.28 09:5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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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태섭 변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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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에 근무하던 시절, 사법개혁을 주제로 열린 TV 토론 프로그램에 선배 검사가 참석한 일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검찰은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조직이라고 하기 어렵고 그날 토론에서도 법학교수, 변호사 등으로부터 협공을 받았지만 그 선배는 나름 선방을 하고 돌아왔다. 매일같이 얼굴을 보며 일하던 사이라서 후한 점수를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논리적으로만 따지면 판정승 정도는 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까지 들었다. 우리는 고생하고 돌아온 선배를 따뜻이 맞았다.
그런데 얼마 후에 만난 그 선배는 몹시 위축된 모습이었다. 출연했던 TV 프로그램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댓글의 내용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자기가 한 말에 반박을 한 댓글에도 기분이 상했지만, “생긴 것부터 검새스럽게 생겼다”는 등의 인신공격에 특히 화가 나더라고 말했다. 인터넷에 달린 댓글 중에는 초등학생들이 재미로 쓴 것도 많고 대부분 별 내용이 없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당사자는 가볍지 않은 상처를 입은 것 같았다. 언론에 노출된 이상 댓글을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위로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때만 해도 여기에 예외가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얼마 전 우연히 자료를 찾기 위해 웹서핑을 하다가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을 읽게 되었는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댓글을 달 수 없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다. 처음 댓글이 없는 것을 보았을 때는 컴퓨터나 통신망에 문제가 있어서 웹페이지가 제대로 뜨지 않는 줄 알았다. 그러나 몇 번이나 새로 고침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인터넷 조선일보를 검색해 보았다. 조선닷컴에는 40개 내지 42개의 칼럼란이 있다(웹사이트에서 ‘사설·칼럼’란을 클릭하면 우측에 42개의 칼럼란이 뜨고 ‘김대중 칼럼’, ‘강석천 칼럼’ 등 개별 칼럼을 클릭하면 위쪽에 40개의 칼럼란이 뜬다). 단 하나만 제외하면 모든 칼럼에 댓글을 달 수 있게 되어 있다. 댓글을 달 수 없는 유일한 칼럼, 그것은 가장 앞에 배치된 대표 칼럼격인 ‘김대중 칼럼’이다.
현재 조선일보 웹사이트에는 모두 1백18개의 ‘김대중 칼럼’이 실려 있다. 2006년 1월2일자 “‘웰빙’의 뒤안길”부터 가장 최근인 2009년 9월13일자 “오바마의 ‘김정일 구하기’”까지, 김대중 칼럼에는 예외 없이 댓글을 달 수 없다. 기명이 아닌 사설, 필자의 유고로 더 이상 이어질 수 없는 ‘이규태 칼럼’, 심지어 ‘독자의견’란에도 댓글을 달 수 있는데 유독 김대중 칼럼에는 댓글 기능 자체가 없는 것이다.
언론 기사에, 특히 칼럼에 꼭 댓글을 달 수 있게 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체계적으로 조사해본 것은 아니지만 뉴욕타임스, 더타임스, 르몽드 등 몇몇 해외 언론매체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모든 기사에 댓글을 달 수 있게 해 놓은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많다. 댓글 문화도 우리와는 다른지 논쟁적인 기사라고 해서 수백 개의 댓글이 달린 기사는 드물다. 하지만 특정한 필자의 칼럼에만 댓글을 못 달게 해 놓은 웹사이트는 찾아보기 어렵다.
김대중 칼럼에 댓글을 달 수 없게 해 놓은 것에 대해서 소통을 하지 않겠다는 태도라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2009년 6월21일자 김대중 칼럼의 제목이 “누구도 누구의 말을 듣지 않는다”라는 것을 보면서 자가당착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주장이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자란 가수가 몇 년 전에 개인적으로 쓴 글의 내용 때문에 결국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태를 볼 때는 과연 우리가 댓글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누릴 자격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만일 조선일보에서 이 점을 지적하면서 자사 사이트에 댓글 기능을 없애겠다고 한다면 한번쯤 진지하게 그 주장을 경청할 용의도 있다. 그러나 역시 유독 단 한 사람의 칼럼에만 댓글을 달지 못하도록 해 놓은 것에 대해서는 그 이유가 궁금하면서 조금 웃긴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어찌 되었든 할 생각이 전혀 없던 일이라도 금지가 되면 괜히 해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 법. 지금까지 언론 기사에 댓글을 한 번도 달아 본 적이 없지만, 댓글 달기가 안되는 김대중 칼럼에 여기서나마 한번 댓글을 달아본다.
“글이 너무 훈계조예요. 재미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