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에 약한 자, 그대 이름은 경제부 기자


   
 
  ▲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멀리 갈 것도 없다. 지금 논란이 되는 효성그룹 의혹만 해도 그렇다. 검찰의 범죄첩보보고서를 정치권이 공개하면서 공론화됐다. 미국 내 한인 블로거가 효성그룹 오너 자녀의 미국 내 부동산 구입 사실을 폭로하면서, 검찰마저 다시 수사에 나서게 만들고 있다. 우리 언론이 한 역할이라고는 없다. 그저 관련 당사자들의 주장만 지상중계 하고 있다. 경제부 기자는 아예 꿀 먹은 벙어리처럼 수수방관한다. 누구보다도 해당 그룹의 속내를 가장 잘 알고 있을 그들이다. 효성그룹 의혹이 아니어도 그렇다. 삼성그룹 편법 승계 의혹에서부터 SK와 현대차그룹의 비리 사건에 이르기까지, 우리 재벌 역사에 선연한 굴곡을 경제부 기자가 주도한 경우는 거의 없다.

이유야 많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이유는 경제부 기자가 재벌을 상대하기는 역부족이어서일 것이다. 우선 재벌은 신문의 최대 광고 수입원이다. 일단 찍히면 광고 수입 감소를 감수해야 한다. 게다가 재벌은 우리나라에서 막강한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재벌과 관련해 부정적인 기사를 써본 경제부 기자는 알겠지만, 기사화할 때까지 숱한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여기에 해당 재벌 담당 기자가 느끼는 유무언의 압력도 상당하다. 스스로 자기 검열의 벽을 높이 세우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늘 당사자들의 주장만 전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이 정도라도 하면 다행이다. 아예 해당 재벌과 관련된 의혹 자체에 침묵할 때가 많다.

경제부 기자들의 침묵보다 더 나쁜 것도 있다. 침묵의 이유를 기능적인 이유에서 찾는다는 사실이다. 공식으로건, 비공식으로건, 그들은 재벌이 강해서 입을 다문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재벌 관련 의혹을 다루는 것이 자신의 업무영역이 아니라고 한다. 그건 사회부나 정치부의 몫이라고 주장한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진실을 다루는 데 무슨 영역 구분이 필요할까만, 당장 현재 우리 언론사의 영역 구분에 따르더라도 경제부 기자가 외면할 일은 아니다. 관련 의혹은 해당 재벌의 주가와 여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사안이 아닌가?

한 발 더 나아간 경제부 기자들도 있다. 재벌을 때리는 기사가 반경제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이른바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friendly)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런 자기 합리화는 더욱 공고해졌다. 그러나 기업에 좋은 것이 무조건 시장에 좋은 것은 아니다. 시장경제에서는 공정한 게임의 룰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대기업 편향적인 것(Pro-business)과 시장 친화적인 것(Pro-market)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재벌에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재벌을 일방적으로 호도하는 것이 아니다. 재벌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것이 반시장적이거나 반자본주의적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재벌을 공정한 게임의 룰이라는 시장경제의 틀에 맞추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경제적인 태도다.

재벌이라는 이름만 해도 그렇다. 경제부 기자들은 어느 순간부터 이 용어를 쓰지 않는다. 자이바쓰(財閥)라는 일본 용어에서 왔다는 반감도 있었겠지만 지나치게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긴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신 대기업 혹은 대기업집단이라는 가치중립적인 표현을 쓴다. 정부가 재벌의 대체어로 만든 용어다. 그러나 대기업이라는 말은 현재 우리 재벌이 갖는 특수성을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 우리 재벌은 크다는 특징만 갖고 있는 기업집단은 아니다. 오너 혹은 오너 일가(一家)가 완벽하게 지배하며, 계열사끼리 공동 경영을 한다는 점이 최대의 특징이다. 만일 재벌이라는 말이 왜색이라면 대체안을 만들면 될 일이지, 우리 재벌의 특성을 모른 척 할 일은 아니다.

선진 사회와 시장경제에서 기성 세력에 대한 대항마(Counterveiling Power)의 필요성을 역설한 이는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존 K 갤브레이스(1908~2006)였다. 정부와 정치권력의 대항마는 좋은 언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기업 역시 막강한 기성 권력이다. 우리 언론, 경제부 기자가 좋은 대항마가 될 수 없다면 우리 체제의 미래를 낙관할 수 없다.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KBS 1라디오 ‘성공예감, 김방희입니다’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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