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제퍼슨이 한국 언론을 본다면

[언론다시보기]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미국 독립선언문을 기초하고 초대 국무장관과 제3대 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은 법률가일 뿐더러 자신의 저택 몬티첼로를 설계한 건축가이며, 버지니아 대학을 세운 교육자였다. 당대의 지식인이었던 제퍼슨은 언론의 자유가 모든 자유의 기초라고 생각한 자유주의자였다.

그는 또한 ‘견제와 균형’의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제한된 정부’만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 입헌주의자였고, 강력한 중앙정부는 국민을 불행하게 만들 것이라고 확신했던 주권(州權)주의자였다. 그는 자신이 미국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기보다는 버지니아 주지사를 지냈으며 버지니아 대학을 건립한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했고, 실제로 그의 묘비에는 그가 미국 대통령을 지냈다는 구절이 없다.

제퍼슨은 언론의 자유를 제약하고 정치적 반대자들을 탄압했던 연방주의자들에게 반기(反旗)를 든 공화주의자들을 규합해서 1800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일찍이 언론 자유가 중요함을 깨달은 제퍼슨은 신문의 중요성을 강조한 유명한 구절을 남겼다. “신문이 없는 정부와 정부가 없는 신문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후자를 선택하겠다”는 것인데, 이 명구(名句)는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미로 많이 인용된다.

그러나 대통령을 지낼 당시 제퍼슨은 신문과 관계가 좋지 않았다. 필라델피아, 뉴욕, 보스턴에서 발행되는 신문들은 제퍼슨을 신랄하게 비판했는데, 이런 신문들은 사실을 왜곡해서 제퍼슨을 비난하곤 했다. 제퍼슨은 자신에게 사사건건 비난을 퍼붓는 필라델피아의 한 신문에 대해 “도무지 이 신문에서 진실이라곤 광고뿐이야”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제퍼슨은 언론 자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읽지 않는 사람이 오직 신문만 읽는 사람보다 더 잘 교육되어 있다”고 말할 정도로 신문에 대하여 회의적이고 비판적이었다.

이상(理想)으로서의 언론 자유와 현실로서의 신문에 대해 제퍼슨은 심한 갈등을 보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당시 신문이 공공사(公共事)를 보도하기보다는 정치적 선전을 하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반대파의 공격에 노출된 제퍼슨은 언론의 비난을 가장 심하게 받은 미국 대통령으로 평가되는데, 그럼에도 제퍼슨은 언론의 자유와 신문이 민주주의에 있어 필수 요소라고 생각했다.

오늘날 같이 미국 신문이 사실을 보도하고 공익에 봉사하는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중반에 들어서면서다. 제퍼슨이 대통령을 지낼 당시의 신문은 지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정치적 의견을 전파하는 팸플릿이나 블로그 같은 것이었다. 우리는 미국 신문이라면 베트남 전쟁 문서를 보도한 뉴욕타임스와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친 워싱턴포스트를 연상하지만, 그것은 비교적 최근인 1970년대 현상이었다.

이렇게 장황하게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 시대의 미국 신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나라 신문과 방송이 사실보도와 공익보호에 충실한가에 대해 생각해 보기 위함이다. 우리의 신문과 방송은 1970년대의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까지는 못 가더라도 제퍼슨 대통령에 대해 온갖 근거 없는 비난을 퍼붓던 19세기 초의 미국 신문과 같아서는 곤란하지 않은가 하는 말이다.

신문과 방송은 편집방향이란 것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떤 사건을 보는 관점은 신문사와 방송사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신문과 방송에는 사실을 전하는 기사와 보도 프로그램 외에 의견을 전달하는 사설과 칼럼, 그리고 논평이 있다. 사설과 칼럼, 그리고 논평은 신문사와 방송사의 견해를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신문사와 방송사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또한 사실을 전달하는 기사와 보도 프로도 신문사와 방송사의 편집방향에 따라 약간씩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자사의 취향과 이익에 맞지 않는 사실은 그것이 갖고 있는 중요성에 관계없이 아예 보도를 하지 않고, 자사에 불리한 사실은 진실을 왜곡해서 기사와 보도로 가공한다면 그것은 이미 언론이라고 할 수 없다.

제퍼슨이 오늘날의 미국 신문과 방송을 본다면 자신이 생각했던 이상(理想)이 이루어졌다면서 만족해할 것이다. 하지만 만일에 제퍼슨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신문과 방송을 본다면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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