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의 동기를 꺾는 기사
[언론다시보기]제윤경 에듀머니 대표
한국기자협회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0.05.04 08:5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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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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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은행들이 수신금리를 크게 내리고 있다. 금융 관련 뉴스에는 은행의 수신금리가 4%대 진입을 했다는 등 3%대까지 크게 떨어졌다는 등 반갑지 않은 소식들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가뜩이나 반갑지 않은 소식에 더불어 따라붙는 기사로 수신금리는 적극적으로 내리면서 대출금리 인하는 소폭에 그쳐 은행들의 예대마진은 오히려 늘어났다는 이야기다. 한쪽에서는 이상기후로 농산물의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고 하고, 또 다른 기사에서는 저축이 아닌 투자로 돈 벌라는 선동을 접한다. 때맞춰 금리는 낮은 수준을 계속 유지하는 데 반해 주식시장은 연일 강세장이다. 이러한 뉴스에 많은 사람들은 소위 ‘겁’도 나고 ‘화’도 난다.
돈에 대해 도대체 어찌해야 할지 모를 무력감에 휩싸인다. 열심히 벌어봐야 물가 상승으로 손해 보고 번 돈을 저축해서 쓰려고 하니 붙는 이자는 없는데 은행들만 열심히 좋은 일 시켜 주는 것 같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자니 자신이 없다. 2007년 펀드 열풍 때 뒤늦게 투자했다가 이듬해 미국의 금융위기로 펀드 반토막 악몽을 접했기 때문이다.
반토막 펀드에 화들짝 놀라 환매했던 기억에 다시는 투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그렇다고 저축할 수도 없는 분위기다. 결국 얼마를 버는지, 얼마를 쓰고 사는지, 저축을 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펀드 공부에 매달리며 투자를 재개해야 하는지 판단을 할 수 없다.
상대적 박탈감과 저축 무력증영국의 정신건강학자 로저 핸더슨(Roger Henderson) 박사는 사람들의 돈에 대한 이러한 스트레스가 ‘돈 걱정 증후군’으로 발전한다고 지적한다. 돈 걱정 증후군에 대한 지적은 경제위기 이후에 생긴 것이 아니다. 경제위기 이전에 전 세계 경제가 고공행진을 하던 때에 돈에 대한 스트레스가 오히려 증가했다고 한다. 특히 실물경제가 고공행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물경제는 제자리인데 자산가치만 상승하는 경제환경에서 경제적 스트레스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당장 소득은 제자리인데 부동산시장과 주식시장이 상승하면서 누군가는 쉽게 돈을 벌 것이란 위기감을 경험한다. 나 빼고 모두 부자가 되는 것만 같은 세상이다.
저축하느니 빈병 모으는 게 낫다는 식의 극단적인 저축 무용론까지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저축 무용론은 거슬러 올라가면 2005년 금융사들의 펀드 마케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시점에 언론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동북아 금융허브라는 정부의 야심찬 정책 비전과 더불어 시작된 금융사들의 펀드 마케팅 열풍은 사람들의 적금통장을 탐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열심히 일해서 돈 벌고 절약해서 소비하면서 성실히 저축하는 경제생활은 순식간에 낙후된 금융생활로 치부되었다. 연일 선진국의 중산층 재무구조에서 펀드 가입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를 소개하면서 저축만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금융생활을 뒤처지고 손해보는 것으로 평가 절하했다. 이렇게 집요한 저축 무용론과 저축을 투자로 대체하라는 주문은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 상황에서 잠시 주춤하면서 반성이 고개를 드는가 싶었다. 그러나 위기가 지나고 지속되는 저금리와 주가 회복은 가계 부채가 7백조원을 넘어선 상황에서도 저축의 동기를 꺾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은 저축에 대한 동기가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그 결과 저축률이 바닥을 치고 글로벌 꼴찌 신세가 되어 버렸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저축에 대한 동기 저하는 저축 대신 투자를 늘리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부동산 투자로 이어지긴 했으나 실거주 목적의 부동산 투자가 많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또한 금융사에서 이야기하는 저축 대신 투자를 통한 재정 안정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내 집에 대한 과도한 레버리지(부채 부담)로 위험한 소비가 증가했다고 봐야 한다. 저축에 대한 동기 저하가 가계부채 7백조원 시대를 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론을 통해 자주 접하는 금융권의 저축에 대한 부정적인 마케팅은 사람들에게 저축에 대한 동기를 꺾어 비상금 하나 없는 아슬아슬한 재무상황을 만들고 있다.
저축 없는 투자는 도박경제학적으로 저축의 본래 의미는 투자 성과, 즉 이자율이나 수익률의 크기와 관계없이 현재의 소비를 미래의 소비로 지연시키는 행위이다. 미래 목돈을 써야 할 일에 대비하기 위해서 현재의 소득을 미래 시점까지 고려해서 재분배하는 경제적 의사결정이다. 이자율이 낮다고 해서 미래에 돈이 필요한 재무사건에 대비하는 것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저축이 없으면 목돈이 필요한 재무사건 앞에서 빚을 내게 된다. 결국 금융비용을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물가가 올라버리면 원금이 확정적으로 보장된다고 해도 구매력이 감소하기 때문에 손해를 보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이유로 금융사 종사자들은 저축을 대신해 투자할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투자수익은 불확실하며 미래의 시점에서 실현된다. 즉 투자 수익이 플러스가 될 수도 있고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 저축을 대신한 투자란 플러스 투자 성과가 발생할 때만 유효하다. 마이너스가 되어버리면 확실히 써야 할 미래 소비를 포기해야 한다. 2008년 펀드 반토막 현실은 결혼자금을 펀드로 준비하고 전세금 인상을 펀드에 몰빵한 사람들에게 펀드 하나에 인생항로를 변경하게 만들기도 했다.
투자의 미래 수익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투자는 확실히 써야 할 미래 소비에 대비한 저축 재원으로 해서는 안된다. 그보다는 미래 소비에 대비한 저축까지 하고 난 후의 잉여소득으로 하는 것이 투자이다.
한마디로 저축할 돈으로 투자하는 것은 그만큼 인생을 건 도박이 되어버릴 수 있다. 저축과 투자는 확실히 다른 경제적 행위이다. 저축을 투자로 하라는 금융사들의 마케팅 수사를 언론을 통해 전문가의 변으로 접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