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의 진실

[언론다시보기] 박상건 성균관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 박상건 성균관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여행은 버리고 비우기 위한 아름다운 여정이다. 각지고 힘들수록 여행은 청량제 역할을 한다. 여행자는 자연과 수평을 이룰 때 하나가 된다.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 했다. 자연은 인위가 아닌 원초적 제도와 공간을 말한다. 환경은 인간의 사고를 지배한다. 사고는 마음과 행동을 지배한다.

이번 주말여행은 33㎞ 세계 최장 새만금방조제로 떠났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 토목공사, 바다의 만리장성, 명품 방조제라는 새만금방조제 완공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2030년 예정된 1단계 계획을 10년 앞당겨 끝내겠다면서 대한민국 최초 종합적·계획적 녹색도시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방조제 입구에 이르자 부분개통임으로 통행시간을 제한한다는 플래카드가 나붙었다. 도로 높임공사 등 새만금방조제는 공사 중이었다. 방조제가 끝난 지점에서 1차로로 좁아지고 부안, 군산 쪽서 진입한 차량과 교통체증에 짜증난 운전자가 방조제를 빠져나가려 하면서 뒤엉켰다. 1차로 감소라는 안내 표지판은 없었다. 대신에 “완공된 도로가 아니므로 사고를 책임지지 않는다”라는 표지판이 세워졌다. 주차장과 임시화장실도 변변치 못했다. 현재 새만금방조제는 정식 도로 고시가 안 됐다. 부안, 김제, 군산 자치단체 간에 행정구역, 해상경계선의 마무리도 안 됐다. 도로의 미아, 관리주체도 없는 바닷길에 그 무엇이 급해서 국민들을 불러 모았을까.

자치단체 지원을 받은 여행사는 새만금 인원 동원의 일등공신. 프로그램은 새만금방조제~변산반도~곰소항 일정으로 상품가격은 9천9백원. 서울에서 부안까지 편도 버스요금 1만2천2백원보다 저렴하다. 차량은 서울에서 오전 7시30분 출발하지만 바로 새만금으로 향하지 않았다. 금산, 예산 사슴목장과 제약회사에서 건강식품을 사게 했다. 모두가 덤핑, 과장광고 여행사는 아니겠지만 그렇게 완공식 후 축제를 열며 9일까지 끌어 모은 방문객은 77만여 명.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는 완공식 다음날 “4대강 사업 논란은 과거 새만금 논란과 유사하다. 새만금 사업 19년 대역사에 마침표를 찍었다. 국토의 지도가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방조제도, 새만금도 마침표와는 거리가 멀게 곳곳에 포크레인 공사와 공사자재가 어지럽게 쌓였다. 19년 동안 갑론을박을 거친 것처럼 4대강도 장기적이고 진중하게 논의해보라는 게 민심이다. 국토가 넓어진 만큼 환경과 어장의 보고인 갯벌이 사라진다는 것을 되새김질할 일이다.

새만금은 1987년 정부의 서해안간척사업 당시 노태우 대통령후보 공약으로 발표됐다. 1996년 시화호 오염문제로 수질오염문제가 도마에 오르면서 논쟁의 중심이 됐다. 수질은 관광객 유치나 어민에게도 중요한 문제이다. 전북지역 언론이 이 문제를 누누이 강조한 이유다.

한때 ‘호남고속철은 선거철’, ‘호남고속철은 저속철’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선거 때만 거론하고 유세 때마다 중간역 추가를 약속하는 바람에 정작 호남고속철 의미는 무색해졌다는 것이다.

이 와중에 ‘새만금’ 단어가 외국인이 발음하기 어렵고 간척지, 갯벌 파괴 이미지를 연상한다며 글로벌 네임으로 아리울(Ariul, 물 울타리)이라 부를 방침이란다. 배고픈 자의 희망은 빵이다. 전북도민은 네 번의 정권을 거치며 탁월한 학습효과를 익혔다. 다섯 번째 정권에서는 진저리나는 말보다 명료한 예산과 실현 가능한 것부터 당장 투자해달라는 것이다.

민심과 거리가 멀기는 언론도 마찬가지. 보도자료 받아쓰기가 도를 넘었다. 관광인프라 구축도 없는 바닷가에 사람들을 불러 모은 것은 19년간 애간장만 태운 전북도민을 두 번 울리는 일이다.

제2 새만금 논란 재연으로 지역이미지를 악화시킬 우려도 있다. 2004년 KTX 개통 때 언론은 일제히 ‘꿈의 속도’, ‘고속철 이상무’, ‘항공기 안 부럽다’며 보도자료를 받아썼다. 잦은 고장과 역방향 좌석문제를 승객들이 제기하자 정반대 논조로 ‘고속철은 고장철’, ‘고속철 고통철’, ‘고속철 지연철’, ‘더위먹은 KTX’, ‘고속철 안전운행 삐거덕’, ‘무지안고 달리는 고속철’로 철도청을 복날 개 패듯 후려쳤다.

새삼 새만금을 여행한 뒤 느낀 것은 ‘검증 저널리즘’이다. 언론은 팩트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모든 글이 그렇지만 여행기사는 발로 뛰는 기사가 감동적이다. 정부, 관광공사, 자치단체 등 자료를 받아쓰던 시절은 지났다. 인터넷대중화 시대요, 스마트폰시대이다. 독자가 전문가용 카메라를 메고 전국을 돌며 사실을 전달한다.

이제 기자들은 아직도 무인도를 유인도로, 철 지난 도로나 맛 집을, 여행 전문가가 인터뷰한 내용을 마치 자신이 만난 것처럼 인용해 글쓰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 가보지도 않고 쓰는 ‘탁상머리 기사’에 돌아가는 건 누리꾼들의 몰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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