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종이 신문을 구독할 것인가

[언론다시보기]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나는 아직은 신문을 집에서 구독한다. 한 개도 아니고 두 개를 보고 있으니 종이 신문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편이다. 아무리 인터넷이 빠르고 신속하게 뉴스를 전한다고 해도 종이 신문이 갖고 있는 나름대로의 매력과 종이 신문을 봐왔던 습관 때문에 적어도 내 생애에는 종이 신문을 계속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 들어서 그런 생각이 바뀌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나도 집으로 배달되는 종이 신문을 머지않아 끊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10여 년 전과 달리 집에서 신문을 보지 않는 가구가 부쩍 늘었음은 재활용쓰레기를 버리는 날이면 잘 알 수 있다. 아파트 단지 내에 재활용품 종이를 버리는 곳에는 신문 뭉치 대신 택배 박스 등 포장지만 수북할 뿐이다. 대학에서는 이제 신문을 보는 학생을 보기가 어렵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에 걸쳐 대학생들은 한겨레신문을 많이 봤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캠퍼스에선 신문 가판대가 사라져버렸다. 자연히 대학의 쓰레기통에도 신문지가 자취를 감춰버렸다. 대학이 캠퍼스 내에 컴퓨터실을 설치하고 무선 인터넷을 보급한 것도 종이 신문을 퇴출시키는 데 기여했다. 인터넷이 없었던 시대를 기억하지 못하는 요즘 대학생에게 종이 신문이란 ‘낯선 존재’가 되어 버렸다. 종이 신문이란 지하철 경로석에 앉아 있는 저무는 세대에나 어울리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내가 종이 신문을 그만 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또 있다. 신문마다 전하는 뉴스 자체가 너무나 달라서 ‘신문’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 회의감이 들기 때문이다. 신문마다 중요하게 다루는 뉴스 자체가 다른 현상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에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현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도 신문에 따라 그 같은 차이는 분명히 있었고, 신문에 따라 그러한 차이가 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신문마다 ‘편집방향’이라고 부르는 ‘성향’이 있는 것이고, 그것이 신문마다 다르기 때문에 사설과 칼럼의 취향이 다르고 같은 뉴스를 보도하더라도 거기에 부여하는 비중이 각기 다른 것이다. 그러한 차이는 정상이고, 또 그 정도 차이는 있어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정권에 불편한 사실은 그것이 아무리 큰 문제라고 하더라도 아예 뉴스로서 다루지 않는 경향이 나타났다. ‘4대강’을 아예 보도하지 않는, 이른바 보수신문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4대강’에 대해 종교계와 시민사회가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4대강’이 지방선거의 최대 안건이 되어도 아예 보도를 하지 않거나 뒤늦게 정부측과 반대측의 주장을 다 들어 본다는 식으로 보도하는 것이 고작이다. 이런 현상은 편집방향 등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되기가 어려운 것이며, 이로 인해 우리나라의 신문 자체의 권위가 회복할 수 없게 훼손되지 않았나 한다.

신문 산업이 어려움에 처하기는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신문의 왕국이던 미국의 경우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오래된 신문이 아예 문을 닫거나 인터넷 신문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미국에서 신문이 문을 닫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은 부수 감소와 광고수입 감소에 따라 경영이 어려워진 탓이다. 역설적으로 말한다면 미국 신문들이 경영을 정직하게 해왔기 때문에 문을 닫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이 신문의 종말을 아쉬워한다.

미국에선 종이 신문이 사라질 경우에 생길 수 있는 부작용으로 정부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특종보도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을 꼽는다. 워터게이트 사건 같은 특종 탐사보도가 어려워진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클린턴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은 ‘드러지 리포트’라는 작은 인터넷 신문이 처음 터뜨렸고, 뉴욕타임스 등 거대한 종이 신문도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전쟁에 대해 경종을 올리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기자들의 연봉이 높다는 우리나라 종이 신문들이 ‘4대강’을 묵살하고 있는 사이 한 인터넷 신문은 남한강 공사현장을 공중촬영사진을 생생하게 실었다. 어떻게 비싼 돈을 들여 항공기를 빌려서 그런 사진을 찍었나 하고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시민단체 행동가가 모는 행글라이더에 인터넷 신문기자가 동승해서 촬영을 했다는 것이다. 종이 신문 같으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발상을 한 것이다. 이런 사진도 오직 인터넷 신문에서나 볼 수 있으니 ‘사실’을 외면하고 있는 종이 신문을 구태여 돈 주고 볼 이유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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