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들 머리에 이고 싸우면 굽히지 않을 권력 없다
[언론다시보기] 박상건 성균관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박상건 성균관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0.06.08 09:4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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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건 성균관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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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억울해도 억울하다는 호소도 할 수 없는 사람들. 그러나 산처럼 높고 무거운 존재 또한 백성이다. 그래서 백성들만 머리에 이고 싸우면 굽히지 않을 권력은 없다고 했다. 목민심서에 나온 말이다. 6·2 지방선거 투표혁명은 그랬다. 민심은 천심이라는 준엄한 메시지를 던졌다. 보수언론이 도배질하며 동참한 천안함 북풍선거는 잉크로 쓴 거짓이 피로 쓴 진실을 덮을 수 없다는 노신의 언설만 방증했다.
요즈음 대학생을 일컬어 머리는 진보, 행동은 보수라고 지적하곤 한다. 치솟는 등록금, 높아지는 취업 장벽에 버거운 서민가정이 선택할 마지막 카드는 휴학과 군 입대이다. 그런데 천안함 장기화, 대통령 전쟁발언, 황장엽 암살조, 간첩단 사건 등이 줄기차게 쏟아지면서 제대와 입대를 앞둔 부모형제의 마지막 카드마저 퇴로가 막히고 두려움마저 들었다. 그러면서 천안함 침몰 희생 장병 얼굴이 내 자식과 오버랩된다. 결국 대학생들은 머리도, 행동도 진보로 진화하여 투표장으로 향했다.
5월에 여권의 여론몰이는 전쟁위기로까지 치달았다. 선거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정몽준 전 대표는 5·18민주화운동 30주년에 조화 대신 화환을 보내 빈축을 샀다. 그의 아버지는 DJ정권 때 소떼 몰고 북한으로 갔는데 민주당에 북한과 똑같은 소리를 한다고 북풍몰이에 여념이 없었다. 취임 초 국민을 섬기겠다던 대통령은 느닷없이 촛불은 반성하란다. 5·18 30주년에 2년째 불참한 대통령은 기념식에 불참하고 기념식장에서 부르던 ‘임을 위한 행진곡’ 식순에서 빠졌다. 지난 정부 대통령은 5·18을 ‘독재에 대한 시민저항’ “시민의 힘을 보여준 승리의 역사”라고 의미를 부여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뿐인가. 김제동 방송 불가, 회피연아 동영상, YTN과 MBC인사 논란, 스님을 좌파라고 부르고, 전교자 명단을 공개한 후 법원 결정마저 집단 저항하고, 스폰서 검사, 누리꾼을 마귀쯤으로 보는 디지털문화에 대한 편견은 불만을 차곡차곡 쌓게 하여 투표장으로 가는 도화선이 됐다. ‘한나라스럽다’는 누리꾼 여론을 무시한 사이에 트위터 블로그 카페는 투표 동참 릴레이로 이어졌다. 이런 급속한 물결에 보수화 경향을 보이던 40대의 정서적 대변화도 선거판 판갈이의 강력한 추동세력이었다.
선거는 끝났다. 그러나 보수언론은 여전히 야당이 미덥지 못하다는 반응이다. 야당이 싹쓸이해서 정책혼란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선거 전처럼 자치단체와 의회가 한 정당으로 싹쓸이되어야 한다는 것인지 논리가 궁색하다. 정부와 진보 교육감들이 교육정책을 놓고 사사건건 충돌할 공산이 크단다. 교육에는 진보와 보수가 있을 수 없단다. 애당초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는 교육감 선거를 보수와 진보로 구분해 보도한 것은 보수언론이다. 이제 와서 딴소리다. 참 천박하다.
그 다음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후보가 선거사무실을 한국프레스센터 1층에 차렸다는 점이다. 선거법은 입주사무실에 대형 플래카드를 내걸 수 있도록 돼 있다. 시청광장은 막으면서 유권자와 소통이 수월한 언론메카를 선택한 발상이 너무 이기적이다. 더 정신 나간 쪽은 서울신문이다. 불편부당해야 할 언론사와 언론연구기관, 언론중재기관, 언론단체가 입주한 프레스센터에 특정 정당후보의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 1층 로비는 선거대책본부 앞마당이다. 서울신문 사시는 공공의 이익과 민족의 화합이다. 사시에 부합한지 반문한다.
언론도 유권자들이 꿈꾸는 깨끗하고 감동 있는 정치 지형도를 모색해야 한다. 기자는 그날 그날 역사를 기록하는 역사가여야 한다. 이번 선거결과는 언론에도 그런 진정성 있는 영혼의 독립성을 요구한다.
‘패거리저널리즘’에 함몰되지 않고 우리 정치의 대안을 제시해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정치보도 패러다임의 변화를 기대한다. 국민 수준에 걸맞은 정치 신상품을 발굴, 제시해야 한다. 이제 국민들은 권력이든, 언론이든 어떤 인위적인 바람몰이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투표로 분명하게 보여줬다. 김수영 시인의 시처럼 우리 국민들은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