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등급에 대한 왜곡된 기사
[언론다시보기]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0.06.29 09:4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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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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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 기사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 신용등급을 관리하라는 것이다. 신용등급을 우수하게 유지해야만 빚을 일으킬 때 우대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고 부채한도도 늘릴 수 있다는 기사를 자주 접한다. 당장 빚을 내야 할 급한 상황이 아님에도 이런 정보를 접하고 있으면, 신용등급 관리를 소홀하게 되면 손해 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람에게는 손실을 피하고자 하는 심리가 있다. 같은 크기의 이익과 손실 앞에서 이익에 둔감한 반면 손실에는 민감하다. 손실을 회피하기 위해 적극적인 행동을 선택하게 만든다.
결국 손해를 볼 것 같은 기분에 들게 만드는 것은 대단히 유용한 마케팅 수단이 된다. 금융회사는 언론을 이용해 이런 마케팅을 효과적으로 전개한다. 신용등급 관리를 소홀히 하면 대출을 일으킬 때 금리에서 다른 사람에 비해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정보를 흘리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주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언론은 이런 정보에 민감할 수 있다.
문제는 신용등급 관리에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언론이 신중한 입장이 아니라 그저 사람들의 손실회피 심리만 자극해 왜곡된 신용관리 지침을 홍보해 버릴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신용등급 체계는 신용정보를 다루는 전문기관에 의해 만들어진다. 전문기관이란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과 신용정보회사를 말한다. 신용정보 회사의 ‘신용평점모형’을 통해 계량화된 평가점수를 신용등급으로 나타내는데 1등급부터 10등급까지 총 10개의 등급으로 구분된다. 1등급은 신용 우수자, 10등급으로 갈수록 저신용자에 해당된다.
문제는 이렇게 등급을 구분하는 신용평가 기준 자체가 소비자들에게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언론을 통해 자주 거론되는 신용등급 관리 요령만이 평가기준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그런데 그 내용이 주로 신용카드를 써라, 주거래 은행을 이용하라, 연체하지 마라, 등의 내용이다. 요는 신용등급에서 우수 등급자가 되기 위해서는 한 군데 은행에 거래실적을 보여주고 그 은행에서 빚을 내서 잘 갚으라는 이야기로 종합된다.
빚은 없고 예금 자산이 많은 사람과 예금은 거의 없으나 빚이 많은 사람 중 누가 더 신용등급이 높을까. 상식의 범주에서는 전자가 더 높아야 한다. 예금이 많으니 빚을 내더라도 잘 갚을 수밖에 없다고 여기지 않겠는가.
하지만 현행 신용등급 체계에서는 후자의 신용등급이 더 높다. 간혹 어느 기사에서는 그러니 현금을 쓰지 말고 신용카드 쓰라는 이야기와 적절한 빚도 필요하다는 식의 왜곡된 정보를 접하기도 한다. 신용을 사용한 실적이 없기 때문에 신용을 평가할 수 없어 기본적인 등급밖에는 줄 수 없다는 것이 금융회사와 신용정보회사의 설명이다. 일면 타당성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그 이야기는 위험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예금보다는 모든 소비 지출에 앞서 빚을 일으키고 부채 상환을 우선으로 하는 충성심이 평가의 기준이라는 것이지 않은가. 여러 해 동안 이렇게 열심히 신용카드 쓰고 마이너스 통장을 사용하며 꼬박꼬박 연체 없이 신용 결제를 해온 실적으로 좋은 신용등급을 받았다고 가정해보자. 그 사람의 신용등급의 금융비용으로 금융회사의 실적에 상당한 기여를 했음을 짐작할 수 있고 좋은 신용등급을 받기 위해 그 기간의 금융회사에 대한 기여 실적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문제는 회사의 중요 업무로 그가 잠시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한달 이상 소요된 출장이어서 결제일을 꼼꼼히 챙길 수 없었다. 카드 결제금보다 공과금이나 보험료와 같은 것들이 먼저 결제되고 그만 잔액이 부족해 소액이 연체된 것이다.
실제 상담 중에는 이런 작은 실수로 순식간에 신용등급이 4등급으로 강등되는 불쾌한 일을 겪었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물론 언론에서도 신용등급이 올라가는 데는 수개월의 평가를 기본으로 하면서 강등시킬 때는 순식간이라는 점에 대해 지적하는 기사도 있다.
이렇게 불친절하고 이중적인 얼굴을 하는 신용등급 시스템에 대해 그 정도 지적은 너무 순진하거나 과도한 욕심일 수 있다. 애초 신용정보 회사에서 이야기 하는 ‘신용사용 실적이 없으면 점수를 줄 수 없다’는 비상식적인 주장을 넓은 아량으로 이해했다면 이러한 불친절도 충분히 이해하고 남아야 한다.
상당히 많은 금융회사 전문가들 혹은 언론을 통해 접해본 신용등급 관리요령은 마치 매월 생활비와 카드 결제금에 허덕이는 중산층 서민들에게도 그런 신용등급의 친절한 등급 판정이 가능한 것처럼 들린다. 물론 좋은 등급이 가능하기는 하다. 그 전제는 결과적으로 신용사용과 결제를 일상의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한 일로 우선시하는 충성심을 요하는 것이다. 그것도 굳이 지금 당장 대출을 일으킬 뚜렷한 일이 없음에도 언젠가 이용하게 될 대출에 대비해 미리 관리하라는 것이다. 소비자들에게 좋은 정보를 준다는 것은 이용에 따른 혜택을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위험성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환기시켜주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근본적인 문제지적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현재 신용등급 시장은 신용 정보회사들의 지독한 정보불균형 속에서 실질적 정보주체인 소비자들의 참여기회는 원천적으로 봉쇄된 채 일방적으로 등급을 부여 받는 상황에 방치되어 있다. 즉 소비자들은 무슨 근거로 등급이 오르고 내리는지 정확한 기준과 원칙을 모른다. 그저 현금을 사용하면서 늘 비상금을 유지하는 ‘착한’소비자에 비해 카드 결제금이 높고 대출도 많으며 그럼에도 빚을 갚지 않고 예금 통장에 일정 이상의 돈을 남기는 비합리적인 소비자에게 우수 등급을 주는 비상식적인 결과를 수용해야 한다고 강요받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신용등급 제도는 상식적인 수준으로 개정되어야 하고 그 기준과 원칙도 누구나 알 수 있으며 연체 정보들을 중심으로 한 부정적인 잣대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신용을 사용하지 않고 적절한 현금 소비 관리와 예금 잔액 관리를 하는 소비자에게 우수한 등급이 주어져야 한다. 그래야 부채를 일으키게 될 만약의 사태를 위해 불필요한 신용사용을 하는 비상식적인 일들은 벌어지지 않을 수 있지 않겠는가.
언론에서는 더 이상 신용사용을 부추기는 왜곡된 신용등급 기사를 마치 고급정보인양 다루는 태도는 지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