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출신 국회의원과 대변인을 보면서

[언론다시보기]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경제적으로 크게 안정된 직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기자는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괜찮은 직업이다. 기자는 격동하는 현실세계 속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제 등 다양한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다른 직업보다 현실감각이 뛰어나기 마련이다.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표현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도 기자라는 직업이 갖고 있는 장점이다.

전문지식은 있더라도 현실감각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교수 보다 기자가 정치에서 성공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기자를 하다가 어떤 계기로 국회의원이 되어 정치를 하게 되는 경우가 과거에도 많았고 현재도 그러하다. 대통령이나 정당의 대변인도 언론을 상대로 일을 하는 것이라서 기자 출신이 하기에 무리가 없다. 기자 출신으로 정부 대변인을 지내다가 아예 정치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나라 정치에서 그런대로 족적을 남긴 정치인 중에는 기자 출신이 적지 않았다. 지금 민주당과 그 전신인 전통 야당은 물론이고 한나라당의 뿌리인 전통 여당의 경우도 합리적이었다고 평가받았던 정치인 중에 기자 출신이 많았다. 고(故) 조세형, 그리고 남재희 같은 분이 그런 경우일 것이다.

과거에는 기자 출신 정치인은 여당을 하든, 야당을 하든 간에 기자 출신이라는 공통분모와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여야 대치로 경직된 정국을 푸는 데 기자 출신 정치인들이 모이면 그런대로 대화의 실마리가 풀렸다고 한다. 여야의 정치인이기에 앞서 사실을 사실대로 알려야 하는 기자 출신이라는 자긍심이 그런 것을 가능케 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기자 출신 정치인이 대화와 타협으로 정국을 푸는 데 역할을 했던 시대는 지나간 것 같다. 현 국회 들어서는 기자 출신 국회의원들이 자기가 속했던 언론사의 입장과 이해를 의식하는 정도가 지나치다는 느낌마저 갖게 되니, 이들이 정파를 초월한다는 것은 당초부터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에 대해서 기자 출신 국회의원이 나름대로 합리적인 대안을 냈다는 소식도 들어 보지 못했다. 미디어법, 세종시 수정, 4대강 등 중요한 정국 사안에서 언론인 출신 국회의원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낸 경우도 없었다. 그러니 요즘의 기자 출신 정치인들을 두고 “파당(派當) 정치를 하기 위해 기자 생활을 했다”는 비아냥이 나올 만도 하다.

청와대 대변인이나 홍보수석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기자가 청와대 대변인이나 홍보수석을 맡게 되면 지금까지 자기가 해 왔던 일을 거꾸로 하게 된다.

그래도 기자 출신 홍보수석이나 대변인이라면 사실을 존중하고 진실을 추구하는 기자로서의 본질은 지킬 것으로 기대되며, 또 그래야만 한다. 이들이 곧 드러나게 될 사실을 왜곡하는 성명이나 발표한다면 기자라는 직업 자체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

또한 이들이 일방적으로 정부 발표문이나 읽고, 그나마 그것도 ‘마사지’를 했느니 어떠느니 하는 논란을 일으킨다면 “저 사람들은 기자할 때도 정부 발표나 받아쓰고 그것을 윤색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한때 언론계에 종사했던 국회의원이나 청와대 홍보관계자들이 툭하면 언론을 상대로 명예훼손 고소나 한다면 그것도 한심한 일이다. 이들은 자기들이 기사를 써 보았기 때문에 기자가 기사를 쓰다보면 사실의 경계를 약간은 넘나들 수 있음을 잘 알 것이다. 또한 공적 인물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말과 행동이 취재대상이라는 사실도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들이 취재대상이 되는 것이 싫다면 국회의원이나 홍보수석을 하지 말고 기자로 남아서 취재를 했어야 한다. 이들은 그가 속한 정당이나 정부에 대한 보도이든, 자기 자신에 관한 보도이든 간에 그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반박성명을 낼 수 있다. 그런 장치가 있음에도 툭하면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고 형사고소를 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관행이다.

기자 출신 국회의원은 자기가 갖고 있는 말솜씨와 글솜씨를 갖고 파당 정치에 앞장서고, 기자 출신 홍보수석은 비판언론을 상대로 전쟁을 하는 것이 본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실이라면, 그것은 우리 언론 자체의 문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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