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가 '보수정권'이라고요?

[언론다시보기] 이상돈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이상돈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과 도덕은 엄연히 구별되어야 함에도 우리 언론은 그것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1997년 경제위기를 전후해서 자주 들을 수 있었던 ‘도덕적 해이’란 용어도 그러하다. 은행이 대출손실이 생겨도 정부가 보전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여신관리를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도덕적 해이다. 하지만 당시 한보나 기아에 대한 은행권의 대출은 도덕적 해이로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금융범죄라고 부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도덕적 해이라는 용어가 그럴듯하다고 생각해서인지 언론은 엉뚱한 사건을 도덕적 해이로 표현하기도 했다. 은행원이 고객이 맡긴 돈을 수억 원이나 해먹고 도망가자 이를 두고 “은행원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고 보도한 신문 방송도 있었다. 고객이 맡긴 돈을 은행원이 횡령하는 것은 심각한 범죄인데, 언론은 이를 도덕의 문제로 치부했으니 한심한 일이다.

2007년 여름에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을 보도할 때도 그랬다. 당시 이명박 후보 측은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이 후보의 위장전입, 위장취업 등 여러 가지 스캔들에 대응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박근혜 전 대표 측은 이를 두고 이 후보의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고 몰아붙였다. 그러자 논객이니 목사니 하는 사람들이 나서서 “도덕성은 좌파가 파 놓은 함정”이니 “대통령 선거는 윤리 선생을 뽑는 것이 아니다”고 하면서 이 후보를 두둔했다. 심지어 “윤리는 쪼다나 지키는 것”라는 황당한 말까지 나왔다.

“도덕성은 좌파가 파놓은 함정”이라는 말은 모르겠으나, “대통령 선거는 윤리 선생을 뽑는 것이 아니다”는 말은 맞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위장전입과 위장취업은 엄연한 위법이고 탈법이라는 사실이다. 대통령은 취임선서를 할 때 “본인은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을 수호한다”고 약속한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언론은 “과거에 위법과 탈법을 많이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나” 하고 문제를 제기했어야 했다. 하지만 2007년 대선 때는 그런 면이 부각되지 못했다. 의도적이었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언론이 위장전입과 위장취업을 도덕성 문제로 물 타기하는 데 일조(一助)한 셈이다. 만일 당시에 언론이 그 점을 위법과 탈법의 문제로 심각하게 다루었다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한다.

최근에 각료로 임명된 이들이 위장전입한 경우가 많았음이 밝혀지자 “보수정권의 도덕성 문제가 심각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데, 나는 같은 이유에서 이런 표현이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이명박 정권을 ‘보수정권’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 이명박 정권을 보수정권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보수’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 보수정권이라면 영국의 대처 정권과 미국의 레이건 정권을 들어야지 이명박 정권을 보수정권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이명박 정권은 법치주의 무시, 방만한 정부 지출, 무리한 공공토목사업 강행 등 보수주의 철학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대처 전 영국 총리와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주창했지만 본인들은 주식투자도 모를 정도로 고지식하고 또 도덕적으로 올바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성실하게 일하고 자유롭게 경쟁하는 사회가 보다 도덕적이고 공정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들이 총리와 대통령으로 있을 때 정권에 공직비리 문제가 별로 없었던 것은 이들의 성품과도 관련이 있다. 레이건 정권 당시 각료들 중에는 2차 대전 참전용사들이 많아서 의혹의 병역면제자가 많은 이명박 정권과 큰 대조를 이룬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임명된 고위공직자들 중에 납득하기 어려운 사유로 병역을 면제받은 경우가 많은 것과 이런저런 사유로 위장전입했던 범법 경력자들이 많은 것은 정권 자체가 공적인 것보다는 개인적인 이익을 앞세우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보더라도 이명박 정권은 결코 보수정권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위장전입을 ‘도덕성 문제’로 부르고, 이명박 정권을 보수정권으로 부르는 것 자체가 사안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