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돈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
미국 유학 중이던 1979~83년에 내가 즐겨 보았던 뉴스는 NBC ‘나이틀리 뉴스’였다. 주중에는 존 챈슬러가, 주말에는 제시카 새비치가 진행을 했다. 당시는 CBS의 월터 크롱카이트가 저녁 뉴스의 왕좌를 지키고 있었지만 나는 NBC를 주로 보았다. 학자풍의 챈슬러와 매력적인 새비치가 마음에 들어서 그랬을 것이다. 챈슬러가 뉴스를 마칠 때 시청자들을 상대로 이따금 하던 말이 있었다. “당신들은 알 권리가 있고, 우리는 진실을 말할 의무가 있다”(“You have right to know, we have duty to tell the truth”)는 말이었다. 간단하지만 언론이 무엇이며 언론인의 자세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구절이 아닐 수 없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서 대학에 자리 잡은 것이 5공화국 시절인 1983년이었는데, 당시 우리의 뉴스는 온통 ‘땡전’이었다. 그래서 나는 정시보다 5분 늦게 TV를 켜고는 했다. 당시엔 미군 방송(AFKN)이 피터 제닝스가 진행하던 ABC ‘월드뉴스’를 보내주었는데, 그것을 보면서 느끼던 시원한 기분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피터 제닝스는 제시카 새비치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소식도 전해 주어서 나를 안타깝게 했다.
‘땡전 뉴스’ 현상은 TV에 국한되지 않았다. 신문도 낯 뜨거운 정부 홍보기사로 덥혀 있기 일쑤였다. 그때 세종로 지하도에서 아주머니들이 신문을 팔았는데, 신기한 현상이 있었다. 붉은 색연필로 중요한 기사를 표시해서 그날의 중요한 뉴스를 전했던 것이다. 붉은 색연필로 칠해진 기사는 대개 구석에 박혀 있는 작은 기사였지만, TV 뉴스에선 절대로 볼 수 없었던 중요한 기사였다. 그런 세태를 꼬집은 유명한 조선일보 칼럼이 ‘거리의 편집자’이다. 칼럼은 이들 거리의 편집자들은 그날의 진짜 뉴스를 용케도 알아내서 붉은 색연필로 칠해 낸다고 했다. 진실을 자유롭게 전달하지 못했던 언론인의 자조(自嘲)와 자괴(自愧)가 배어났던 명칼럼이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언론의 자유가 활짝 열렸다. 한겨레신문이 창간되어 기성신문의 독과점이 깨졌다. 90년대 들어서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인터넷 신문이 많이 생겨났고, 포털과 개인 블로그가 유사 언론의 역할을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래서 온국민이 언론의 자유를 만끽하는가 했더니 현 정권 들어서 오히려 언론 자유가 위협받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인터넷 뉴스 등 뉴미디어로 인해 정부가 언론을 장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뉴미디어는 수요자가 적극적으로 접하고자 해야 볼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반면 TV와 종이신문 같은 ‘올드 미디어’는 타성적으로 접하게 되는 특성이 있다. 현 정권은 뉴미디어를 통해 스스로 뉴스를 섭취하는 ‘적극적 뉴스 수요층’을 자신들이 설득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지 않은 계층, 즉 ‘피동적으로 뉴스를 접하는 계층’을 공략하여 집권의 기반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실제로 정권이 설득하고 회유하고 겁박할 수 있는 대상은 자기 주관이 없거나 확실치 않은 사람들인데, 이런 계층은 주로 공중파 방송과 종이신문 같은 전통적 매체를 수동적으로 접한다. 현 정권이 KBS 같은 공중파 방송을 장악하고 전통적 종이신문을 회유하는 데 나선 것은 이런 계층이나마 붙잡아 매지 않으면 정권을 유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현 정권과 방송의 상황은 그렇다 하더라도 5공화국 시절에도 작은 구석기사로 진실을 전달하고자 했던 메이저 신문의 현실은 착잡하다. 최근에 있었던 안상수 대표의 경우는 그런 사정을 잘 보여준다. 메이저 신문은 그들이 바로 서있을 때엔 중진 정치인이나 장관 정도는 사설이나 칼럼으로 날릴 수 있었다. 노태우 정권 시절의 실세였던 박철언씨의 세(勢)가 꺾인 계기는 조선일보의 사내칼럼이었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는 손숙 환경부장관이, 노무현 정부 들어서는 최낙정 해양부장관이 조선일보의 사설 한방으로 낙마했다. 그런데 안상수 대표의 경우는 달랐다. 정권이 안 대표의 사퇴를 요구한 조선일보의 사설을 우습게 본 것이다. 신문은 정권과 대립각을 세울 때 신뢰와 영향력을 갖게 됨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공중파 방송과 메이저 신문으로 대표되는 ‘올드 미디어’는 신뢰 추락과 영향력 상실이란 이중의 위기에 처해 있는 셈이다. 뉴미디어의 급속한 대두와 ‘올드 미디어’의 자충수가 빚어낼 ‘미디어 빅뱅’이 머지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