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대형마트 전단지인가?

[언론다시보기]제윤경 에듀머니 대표


   
 
  ▲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  
 
대형마트들의 염가 제품 논란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미 대형마트로 인해 지역 상권은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먹을거리에까지 진출하면서 자영업자들을 모두 퇴출시키려고 작정한 것이냐는 사회적 비판을 듣고 있는 실정이다. 피자에서 시작한 염가 제품은 치킨과 커피, 한우까지 그 대상을 넓히고 있다. 그리고 그 사회적 논란을 이용해 마케팅을 강화하는 모습도 보인다. 마케팅에서는 이렇게 논란을 활용해 오히려 주목받고 그로 인해 매출이 증가하는 것을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부른다. 대형마트들의 염가 제품 논란은 바로 상당히 계산된 노이즈 마케팅을 노렸거나 아니면 우연히 그 성과를 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지난해 초부터 지속적으로 가격 파괴 전략을 통한 대형마트간의 과당경쟁이 화제가 되어 왔다. 그리고 그렇게 화제의 중심에 설때마다 대형마트들의 매출은 증가했다. 몇 개 품목의 가격 파괴 전략에서 소비자들은 당장 마트에 가야 할 일이 없어도 지금 아니면 싸게 살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는 심정으로 마트에 달려간 것이 분명하다. 결과적으로 가격 파괴가 진행되는 몇 가지 품목을 건지러 불필요한 제품까지도 충동구매해 버렸다.

염가 제품이 미끼 노릇을 톡톡히 한 셈이다. 염가 제품은 소비자들의 손실 회피 심리를 자극해 구매욕구를 키우는 경향이 있다. 나중에 제값 주고 사게 될지도 모른다는 손실 회피 심리가 소비의 양을 늘려 버린다. 문제는 몇 가지 가격 파괴 제품에 한해서 소비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형마트에는 이미 온갖 종류의 과학적인 마케팅이 집결해 있다. 진열의 방식과 조명을 통해, 각종 이벤트와 기획 할인전을 통해 소비자들의 지갑을 쉽게 열 수 있는 장치들이 가득하다. 가격 파괴 제품을 비싸게 살 것에 대한 우려는 다른 제품까지도 당장 필요하지 않아도 구매하게 된다. 즉 대형마트의 마케팅은 노이즈 마케팅을 통한 유인과 손실 회피 심리를 자극한 충동구매, 염가 제품을 미끼로 활용한 전체 매출 신장의 과정으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대형 유통업체들의 마케팅을 극대화시켜 주는 것이 언론이라는 점이다. 최근의 모 대형업체의 ‘통큰 시리즈’ 관련 기사들을 접하고 있노라면 해당 업체의 전단지를 보고 있는 기분이 들 정도이다. 언뜻 보면 사회적 논란을 중심으로 기사를 작성한 것으로 보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해당 업체의 마케팅 전략을 자세히 소개해주고 기업 입장에서의 조작된 의도까지 친절하게 포장해 주고 있다.

가령 제목으로는 기업을 비판할 것처럼 보여 기사를 자세히 읽게 된다. 그러나 속내용은 언제부터 어느 정도의 양으로 해당 제품의 가격 파괴 행사를 하게 될 것인지 행사일정을 자세히 안내한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해당 기업의 관계자 말을 인용하면서 행사의 취지와 의도를 보여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웬만한 소비자들이라면 기사를 읽으면서 마음이 조급해질 것이 뻔하다. 그 기간 안에 당장 가서 그 저렴한 제품을 남들이 사가기 전에 확보해야 할 것 같다. 지역 상권에 민폐를 끼친다는 사회적 논란은 다른 논란의 관점을 제시해 주는 언론을 통해 희석된다. 언론들은 염가 제품이 지역 상권을 무너뜨린다는 지적도 있지만 반대로 소비자들의 싸게 살 권리도 보호해야 한다는 시장논리도 존재한다고 소개한다.

어느 순간 논란은 기업의 도덕적 책임이 아닌 이념과 시장으로 옮겨가 버린다. 그 사이 염가 제품이 미끼 노릇을 하면서 소비자들의 지갑을 털어가고 있는 마케팅 효과의 위력은 교묘하게 숨겨진다. 언론은 대형마트들의 노이즈 마케팅 대리인을 자처해서는 안된다. 도대체 싸게 팔든, 말든 그것이 왜 주요 기삿거리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

사회적 가치를 논하고 싶다면 그 가치판단의 근거를 논해야 한다. 즉 지역 상권이 어느 정도 무너지고 있는지, 해외에서는 대형 유통업체의 독점을 어떻게 규제하고 있는지, 그것이 왜 사회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일인지를 집요하게 문제제기를 하면서 기업의 지나친 탐욕을 제한하는 책임있는 언론의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금의 언론은 탈 가치로 그저 팩트만을 제시하면서 논란에 뛰어든다. 할인 행사 내용을 보도하는 것이 소비자들의 알권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러한 기사들로 인해 언론이 대형 유통업체의 전단지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자문해 봐야 할 것이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