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주간지의 건투를 빈다

[언론다시보기]이상돈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이상돈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젊은 시절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신문이나 잡지를 들자면 <타임> (TIME)이라고 하겠다. 중학교에 입학해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할 때 동네 서점 판매대에 꽂혀 있던 <타임>과 <라이프>를 보고 나도 언젠가는 저런 잡지를 읽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신입생 장기할인 구독으로 <타임>을 보기 시작했으니 이제 40년 넘게 정기구독을 한 셈이다. 처음 1년 동안은 영한사전의 도움이 필요했으나 1년이 지나니 저절로 읽을 수 있게 됐다. 베트남 전쟁, 워터게이트 등 많은 역사적 사건을 <타임>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사설을 쓰지 않던 <타임>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사임을 촉구한 사설을 이례적으로 내보낸 적이 있었는데, 그 사설은 몇 번을 읽어도 명문이었다. 그만큼 <타임>은 객관적이며 또 공정했다. 이사를 하면서 묵은 책과 잡지를 정리했지만 <타임>은 버리지 않고 쌓아두고 있으니 내가 생각해도 바보 같은 짓이다.

요즘 <타임>은 전과 달라서 내 취향에 맞지 않는 칼럼이 많다. 특히 시종일관 공화당을 씹어대는 조 클라인의 칼럼은 정말 싫다. 하지만 오랫동안 보아온 잡지이고, 아직은 읽을 만한 기사와 칼럼이 있어 계속 보고 있다.

지난 1989년 <타임>은 워너사(社)와 합병했고, 이제는 구독자가 급속히 줄어들어 경영에 압박을 받고 있다. <타임>에 이어 시사 주간지 2위를 지켜오던 <뉴스위크>는 적자 수렁에 깊이 빠지더니, 소유주인 <워싱턴포스트>가 오디오 메이커 창업자 하만에게 단돈 1달러를 받고 매각하고 말았다.

<뉴스위크>는 구독자가 줄어드는 현상에 대처한다고 오피니언 위주의 편집을 하다가 오히려 독자를 더 많이 잃어 버려서 그런 신세가 되고 말았다. 다소 보수적인 편집성향을 견지해 오던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는 발간 주기를 주간에서 월간으로, 그리고 또 계간으로 바꾸더니 이제는 온라인으로만 발행하기로 했다.

<타임>으로 대표되던 시사 주간지의 시대가 조만간 막을 내릴 것임을 예고하는 것 같다. 어쩌면 나는 <타임>이 고별사를 하고 문을 닫는 순간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마저 든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시사 주간지가 굳건하게 버텨내고 있다. 전철을 타는 날이면 역 구내의 판매대에 시사 주간지가 저마다 자기를 사달라고 호소하듯이 꽂혀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뉴스위크>가 적자로 주인에게 버림을 받는 상황인데 어떻게 해서 우리나라엔 시사 주간지가 그리 많은지 신기하기만 하다. 하기야 우리나라에는 신문도 열 개가 넘으니 시사 주간지라고 한두 개만 있으라는 법은 없다.

우리나라 시사 주간지는 기자 인력이 제한되어 있어 취재기사보다는 오피니언을 가미한 기획성 기사가 많다. 인터넷 매체에 비해 속보성에서 뒤지는 주간지는 그런 핸디캡을 심층보도로 ‘커버’해야 하는 데, 그런 취재를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경우는 거의 없다고 생각된다.

오히려 소수 인력으로 그 정도 주간지를 만들어내는 것도 다행이라고 할 만하다. 몇몇 주간지는 공영방송과 메이저 신문이 4대강 등 현 정권에 ‘불편한 진실’에 침묵하고 있을 때 사실을 전하고 그러한 공영방송과 메이저 신문을 비판하기도 했으니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시사 주간지의 미래도 40대 이하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인터넷을 통해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보는 데 익숙한 세대가 지갑을 열고 사서 볼 만한 콘텐츠를 제공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인데, 그것은 쉽지 않은 도전이다.

과다하게 오피니언화(化)된 기사로 콘텐츠를 메우다 보면 독자층을 지나치게 국한시키는 자충수를 둘 수도 있고, 그렇다고 보편적인 뉴스로 지면을 메우다간 돈을 주고 사서 볼 이유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시사 주간지가 쉽지 않은 난관을 극복해서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또 다양한 오피니언을 반영하는 매체로 번창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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