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씨에 '너나 잘하세요'할 수 있나
[언론다시보기] 신경민 MBC 논설위원
신경민 MBC 논설위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1.04.04 09: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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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민 MBC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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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씨의 책을 두고 말이 많다. 책에 적은 사실이 진실인지, 책이 많이 팔리는 이유는 뭔지, 후속폭로가 있을지 등이 초점이다. 그의 설명에 진실과 자기변명이 뒤섞여 분간하기 어렵다고 여기는 나로서는 이 논란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 그러나 항간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중요한 대목을 짚을 필요를 느낀다.
책 뒷부분에 있는 신정아 사건에 대한 기술은 세상에서 오직 그만이 알 수 있는 직접경험이며 무시할 수 없는 중대관찰에 해당한다. 그래서 그의 말이 모두 진실이거나 사실의 전부라고 할 수 없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경청할 필요가 있다. 이 관찰에는 법조와 함께 사건을 보도한 언론의 현재 모습이 포함된다.
신씨는 대부분의 변호사들에 대해 이간질을 하는 인상을 받았고 배신감을 느꼈다고 적었다. 이 인상과 평가는 끝까지 유지된다. 실명으로 등장하는 변호사들은 오래된 우정을 쉽게 저버리고 언제나 돈을 챙겼으며 검찰수사에서 누구를 대리하는지 모를 정도로 납득할 수 없는 결정과 행동을 했다고 평가돼 있다.
검찰수사에 대해 적은 사실과 평가는 상상과 예상을 뛰어넘는다. 검사의 윽박지르기에 신씨는 검사실에 앉은 채로 오줌을 쌌다고 적었다. 그의 평가로는 검사들이 시나리오에 맞지 않는 진술을 조서에 올리지 않았고 거짓으로 조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검사는 미술관 인쇄도급을 맡은 참고인이 말을 듣지 않으면 세무조사로 협박했다고 적었다. 검찰조사에 대해 진실과 거짓을 밝힌다기보다는 각본에 빨리 동의하도록 만드는 작업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검찰조사 중 자살하는 피의자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썼다. 구치소의 첫날 수치스러운 몸검사 절차와 토악질 나는 시설, 검찰조사를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힘든 구치소 현실 등에 대해 리얼한 묘사를 했다.
괜찮은 변호사, 검사가 언뜻 보였다가 공판정에서 다시 실망스러운 법조가 나타난다. 검사가 피고인을 얽어매기 위해 다른 피의자의 대리인과 수상한 거래를 한 사실이 법정에서 밝혀졌다고 적고 있다. 돈을 챙긴 변호인은 준비 없이 재판에 나왔으며 법정에서는 ‘쓰러지라’는 연극지시 메모를 그에게 보내더라는 사실을 폭로했다. 피고인이 다른 사람의 진술을 볼 수 있다는 형사법의 기본을 알려준 법조인이 한 사람밖에 없었다는 대목은 놀라울 정도이다.
책에 드러난 법조의 모습은 신씨의 다른 증언에 대한 신뢰성 평가와는 별도로 대부분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법조의 오늘 모습은 유쾌하지 못할 뿐 아니라 법이라는 장막의 뒤에서 아무렇지 않게 탈법, 불법을 하는 집단에 해당한다. 사회의 주목을 받고 언론의 추적을 받는 특급사건에서 이렇다면 일반사건의 수준을 짐작하게 한다. 또 그동안 개선해서 좋아졌다는 정부약속은 공염불이라는 참담함을 담고 있다.
만약 검찰이 이렇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언론만 선정적인 것이 아니라 인신과 재산을 다루는 국가조직조차 그렇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런 검찰에 권력으로부터 독립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수준을 지나치게 높게 보는 것이다. 검찰에는 헌법과 형사법의 기초부터 다시 학습을 시작하도록 해야 할 판이다.
신씨는 미술을 취재하는 언론과 자신의 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행태에 쓴소리를 했다. 그의 언론평가에는 불리한 기사를 쓴 기자와 언론에 대한 사감이 섞인 데다가 경험의 한계로 다 옳아 보이지는 않는다. 언론이 지독하게 폄훼해온 비리주역이 언론에 대해 고언을 보내는 데 대해서 고깝지 않다. 똑바른 언론과 언론인이라면 싫거나 밉상인 취재원이 부분적으로 적절하고 옳은 소리를 할 때 이런 사실의 평가를 놓고 보도의 원칙을 고민하는 편이 정도일 것이다.
신씨는 언론의 근본적인 화두 몇 가지를 던져주고 있다. 언론은 홍보와 광고적 요소가 뒤섞인 보도에서 어떤 기준을 적용했는지,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는지, 보도 특히 사건속보에서 사실과 진실에 접근하려 노력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언론이 정부의 약속을 보도하면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 언론이 선정성에 몰두하는 동안에 선정적인 모습의 법조를 조장해온 건 아닌지도 생각해 볼 일이다.
언론과 검찰을 평가하면서 ‘선데이서울’이 따로 없을 정도라고 낮추는 신씨의 말에 대해 ‘너나 잘 하세요’나 ‘노’라고 답하기 쉽지 않다. 언론은 물론 사회와 개인, 그리고 정치와 국가마저 모두 선정성이라는 난치성 고질병에 노출 내지 감염돼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