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을 위한 사회
[언론다시보기] 김보라미 변호사
한국기자협회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1.04.19 09:4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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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보라미 변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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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왔다. 이제 낮이면 광합성을 하기에 즐거운 시간이며, 밤이면 창문을 열고 살살 불어오는 바람을 느낄 수도 있다. 자연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서서히 찾아오는 변화의 즐거움을 보여주고 있지만, 미래에 대한 걱정들은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짓누른다.
어른들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문제투성이의 현실 속에서 대학생들이 유서도 없이 목숨을 버리는 모습을 보니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곤란한 느낌이 소용돌이친다.
이 경쟁과 스트레스를 둘러싼 곤란한 기분은, 또다시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은 몇 가지 일들을 잇달아 떠올려준다. 먹고사는 문제가 주관심사인 독거 노인들, 한 달 월급이 최저임금보다 살짝 높은 청소부들, 믿을 수 없는 정부의 연금제도들, 그리고 20대 후반의 과열되어 있는 취직경쟁들. 그동안 수없이 반복되었지만 특별한 결론도 없이 흐지부지 없어져 버린 그런저런 이야기들.
되돌아 생각해보니, 요 몇 년 동안 이런 종류의 문제와 관련하여 대학 내에서의 문제는 심각할 정도로 자주 언급되어 온 것 같다. 비정규직 강사직에 대한 비인간적 처우, 대학 내 비정규직 청소부들의 파업들, 한 예체능계 교수의 학생에 대한 부당한 처우, 경제능력이 없는 학생들에게도 과도한 교육비를 요구하는 현상들, 그리고 그 와중에 아예 대학을 거부한다고 선언한 한 대학생.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가는 일이 일반화되면서 대학생 입장에서 그 서열화 경쟁의 단면과 모습을 언급한 책들도 사회의 관심을 끌면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였다.
헌법상 학문의 자유의 주체로서 다른 집단에 비하여 좀 더 자유롭고 광범위한 자율권을 누리고 있는 대학이 스스로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채 왜 이렇게 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이는 대학의 이상한 위계질서가 일반 사회의 경쟁과 결합되어 더욱 눈에 보이는 문제들을 양산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평균보다는 높은 수준의 인간적인 가치가 실현되기를 원하는 일반 사회의 기대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반 어른들은 더 저열한 상태의 삶을 누리고 있지만 아이들만은 인간적으로 살기를 원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근심과 저연령화되는 극심한 경쟁은 어른의 그것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오늘 하루의 즐거움과 행복함을 느끼지 못하고 일상을 보내는, 사회와 소외되어 정신병적 고민에 시달리는 어른들 세계의 구조적인 문제를 돌이켜보면 과연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한 정책을 제대로 논할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1997년 작품인 영화 ‘트레인스포팅’에서 주인공 렌튼(이완 맥그리거 역)이 20대의 방황을 끝내고 남들처럼 대형 티브이, 세탁기, 자동차, CD 플레이어, 운동복, 가장 비싼 옷, 쇼프로 등을 갖겠다고 중얼거리며 영화가 끝나는 것을 보면 철든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이 참 슬픈 일 같다. 소비주의로 점철된 이 시대는 더 이상 인간의 자연스러운 즐거움과 연대를 누리지 못하는 것일까. 어른이 되더라도 진화하는 미래를 꿈꾸며 많은 사람들과 하루의 즐거움을 새록새록 되새기면 안 되는 것일까.
일본의 인기 애니메이션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의 오프닝 노래 중 가사처럼 “내일이면 과거가 될 지금 이 순간이 기적”임을 느끼며 어른들의 수 많은 우울들이 날아가 버릴 수 있기를, 그리고 뭔가 부당함으로 가득찬 일상을 사는 어른들을 위한 건배와 행복과 연대의 커뮤니케이션을 빈다.
어른들의 우울과 힘듦은 당신만의 것이 아니라 모두가 알아야 하는 것이며, 어른도 아이들도 변화되길 원하는 그것이다. 우선 어른들이 행복한 세상이 되어야 아이들도 행복한 세상이 될 수 있다.